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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Sep 18. 2022

글리치

7월 13일의 일기 중

초저녁, 오랜만에 자전거를 빌려서 강가로 나갔다.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초입에는 버드나무들이 양옆으로 늘어져 있는데 그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쌩 지나갈 때마다 나는 이것이 비현실적인 자유, 라는 생각을 한다. 기이할 만큼 누구도 무엇도 어떤 고민도 나를 붙잡지 않는 자유 말이다. 처음 서울에서 혼자 살게 되며 자전거를 끌고 한강으로 나갔을 때 나는 이 비현실적인 자유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마음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추를 누가 떼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이제는 처음의 그 순간처럼 감동하지 않지만 강을 따라 자전거로 페달을 밟으며 달릴 때의 자유는 여전히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은 유독 비현실적인 장면들을 덤으로 많이 목격했는데 말하자면 누군가 세상을 프로그래밍하던 중에 생긴 오류 같은 것들이었다. 청바지를 입고 조깅을 하는 사람, 굴다리를 지날 때 실제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들려온 뒷사람의 지나가겠습니다, 하는 소리, 그리고 첫 매미 우는 소리를 듣기도 전인데 이미 죽어있는 매미 같은 것들… 여름이 너무 더워서 세상도 조금 고장 나버린 것이다. 물가의 식생은 쏟아질 것처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곧 사방천지를 덮을 것이다.


여름에는 무엇 하나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없다. 하늘이 시시각각 변한다. 바깥에 내놓은 복숭아가 무르고 터진다. 보도블록은 수면으로 올라온 물고기 떼처럼 찢어질 듯이 밝게 일렁인다. 그러다 비가 오면 움푹 파인 곳마다 우산 속빛이 담기고, 비가 그치면 그 위로 무겁게 노을이 진다. 뜨겁게 달궈졌다가 다시 식는 도로의 간판. 우르릉거리는 버스 엔진 소리와 어스름이 내린 주택가 골목의 적막. 매미가 미친 듯이 번식을 외치며 울다가 제풀에 나무에서 떨어져 빙글빙글 돌다가 죽는다. 도시는 여름의 꿈을 꾼다. 혹은 여름은 도시가 눈을 감고 꾸는 하나의 긴 꿈이다. 매년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꿈. 눈꺼풀 아래로 정신없이 필름이 돌아간다. 뇌파를 측정하는 기계가 사각거리며 비밀을 기록한다. 어둠 속에서. 가끔은 과거에 두고 온 사람들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5년, 10년을 거슬러 다시 그 자리에 가 보면 여느 때와 같은 표정과 서늘한 실루엣으로 멈춰서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다시 말을 걸어보아야 하나. 손을 내밀거나 또는 등 뒤로 숨겨야 하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상자를 계속 끌러 본다. 그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부끄러워 눈을 돌린다. 치기 어린 계절으로부터 온 것들을 손가락으로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켜켜이 지난해, 또 그 지난해 여름의 훈기가 전해져 올 것이다. 상자를 닫는다. 처음 열었을 때처럼 곱게 담지는 않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넣고 뚜껑을 닫는다. 다시 열리게 되면 그 안의 것들이 쌀벌레처럼 쏟아져 나올까봐, 자물쇠를 걸어 옷장 속 어둠에 넣고 문을 닫는다. 여름에 일어난 일들은 여름에 머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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