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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Oct 17. 2022

품절도서를 소장하는 법

도서관 있음에 감사한다. 읽고 싶은 책을 전부 사려면 라면만 먹고살아야 하고, 누울 자리도 없을 만큼 집이 종이뭉치로 가득 찰 테니까.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주변에는 걸어서 한 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구립도서관이 아홉 곳이나 있어서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여행 관광지를 돌듯이 도서관을 골라가며 책을 빌려올 수 있다. 그야말로 서울 속의 지상 낙원! 그러나 가끔은 빌린 책을 읽다가 너무너무 반해 버려서, 이분만큼은 집에 모셔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지난달 우연히 담아 온 로베르토 볼라뇨의 "안트베르펜"이 그랬다. 페이지를 넘기며 펼쳐지는 스산하고 머나먼 고속도로의 풍경, 해변을 지나는 종업원, 섬광처럼 지나가는 감정들에 반해 나는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책을 담기 위해 자판을 두드렸다. 

[절판]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하는 수 없이 한쪽 한쪽을 아껴 읽고 집 앞 도서관의 자동반납 창구 속으로 "안트베르펜"을 밀어 넣으며 어딘가 슬픈 기분이 들었다. "안트베르펜"은 앞으로도 아홉 곳의 도서관에서 상호대차 시스템을 통해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이고 나는 지금처럼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그곳들을 돌며 무한한 횟수로 책을 빌려오면 된다. 그러나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을 소장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특히 오늘날 같은 생산의 시대, 돈만 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시대에 가질 수 없는 게 있다는 사실은 - 게다가 그것이 책이라는 사실은 - 어딘가 조금 놀랍다. 나는 노트를 펼치고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이 품절 또는 절판인 경우 취할 수 있는 일곱 가지 행동 목록

1.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가 책을 산다.

2.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재출간된 책을 산다.

3. 품절도서를 도서관에서 빌린다. 약품과 핀셋을 이용해 표지에서 색인 바코드를 빈틈없이 분리해내고 도서 분실 신청을 한다.

4. 품절도서를 도서관에서 빌린다. 책의 내용을 빠짐없이 새 노트에 필사한다.

5. 품절도서를 도서관에서 빌린다. 책 속 페이지를 한 장씩 뜯어내 크기와 무게가 같은 페이지들로 하나씩 교체한다.

6. 품절도서의 작가에게 연락해 집에 쌓여 굴러다니고 있을 책 초판본을 받는다.

7. 품절도서를 도서관에서 빌린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책을 베고 잠이 든다. 꿈속에서 품절도서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어딘가 닮아있는 이야기의 사본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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