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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Nov 01. 2022

환절기 일기

곧 창문을 열어두기 추운 계절이 올 것이다.

겨울은 여름보다 조금 더 서러운 느낌이 일지만 나는 겨울을 훨씬 더 좋아한다. 모든 것이 조금 더 명확하게 뼈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과 흰 눈밭이 펼쳐진 곳으로 가고 싶다. 건물들은 잿빛이어도 좋다. 길을 따라 오래오래 걸으며 볼은 점점 차가워지고 경량 패딩 속으로는 점점 체온이 차오르는, 긴 산책을 하고 싶다. 올겨울엔 아마 도서관을 자주 걸어서 찾아갈 것이다. 생활 반경 내에 도서관이 여러 곳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곳으로 이사오고서야 알게 되었다. 작년 겨울엔 한 시간 정도 걸어야 나오는 알라딘 중고서점 수유점을 자주 찾았다. 처음에는 네이버 지도를 켜고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따라 걷느라 애를 먹었는데 이윽고 모든 골목을 외우게 되었다. 걸으며 까치와 전봇대를, 나무둥치마다 쌓인 눈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작은 눈사람들을 보았다. 피자집 앞 눈사람은 올리브 눈을 달고 있었고 배스킨라빈스 앞 눈사람은 분홍색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팔 대신 달고 있었다. 이것들이 2021년의 겨울을 아우르는 이미지로 남았다는 점이 다행이다. 그해 겨울엔 분명히 괴롭고 아프고 힘든 일들도 많았을 텐데 말이다. 불명확했기에 힘들었는데 역설적으로 명확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사진처럼 찍히지 않았고 기억에도 남지 않았다. 올리브 눈을 단 눈사람은 웃고 있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입 모양은 붙어있지조차 않았는데 아마 눈으로 웃고 있던 것일 테다. 작년 겨울에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눈사람을 만들었을 그 직원도 올해 겨울을 무사하고 따뜻하게 나기를 바란다. 그가 눈사람을 만들 수 있도록 올해에도 잘 뭉쳐지는 눈이 오길 바라고 함께 눈사람을 만들 여유와 웃음이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기를 바란다.

겨울은 마음만 먹으면, 아니 잠깐 방심하기라도 하면 한없이 청승 떨 수 있는 계절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사람의 기분이란 너무 쉽게 기온에 좌지우지된다. 11월 말에는 혼자 길게 여행을 떠날 것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 동안 때로는 생산성 넘치는 일을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우울에 잠길지도 모른다. 오래 잠겨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된다. 간만에 떠나는 여행이기에 많은 것들을 기록해오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되도록이면 글을 많이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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