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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Jan 02. 2020

비행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중



최근에는 구일역 굴다리 옆 갈대밭에 서서 비행기가 날아가는 걸 열 대도 넘게 봤어. 공항이 가까워서 그런지 항공사 로고가 또렷하게 보일 만큼 비행기가 머리 바로 위로 낮게 날아가더라고. 오후 네 시쯤이었는데, 햇빛이 금색 윤곽선처럼 기체를 따라서 스며가면서 흐르는 게 정말 잘 보였어. 몸이 덜덜 떨리고 눈이 시리게 추웠는데도 비행기가 점처럼 작아질 때까지 눈을 뗄 수가 없더라. 그리고 그 장면을 같이 보여 주고 싶은 사람들이 바로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어.

나는 비행기가 참 좋아. 포토그래피 수업 같이 들을 때를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새벽 공항에 찾아가서 어슴푸레한 하늘로 이륙하는 비행기를 찍어왔던 적이 있어. 해가 가고 내가 30대 40대 50대가 되어도 비행기가 날아가는 하늘은 목을 뒤로 꺾고 하염없이 보고 싶을 만큼 좋아할 것 같아.

예전에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걸 볼때마다 눈물이 난다는 친구가 있었어. 그 친구한테 왜 우냐고 물어보니까, 비행기에 있는 사람은 땅에 있는 자기를 볼 수가 없지만 자기는 그 사람이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그 관계가 너무 벅차고 아름답고 슬퍼서 눈물이 난다고 했었어. 같이 얘기를 듣던 다른 친구들은 유난이다 얘 하면서 웃어넘기는데 나는 그 마음이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더라고.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마음을 아리도록 행복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그런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같아. 반짝이는 뭔가를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 햇빛에 보석같이 부서지는 강물을 보면서 눈물샘이 따뜻해지는 것도, 저 높은 무대 위 연예인에게 온 힘 다해서 환호를 보내면서 뼛속까지 벅차하는 것도, 스타디움을 채우는 조명 중 하나가 되어 사람들과 같이 입을 모아 노래하는 순간을 공유하는 것도. 형태도 실체도 없는 그런 뜨거운 느낌들이 가장 견고한 뼈대가 되어서, 제일 힘든 순간이 다가왔을 때 마음 안쪽부터 이겨낼 수 있는 버팀이 돼 준다고 생각해.


- 2020년 1월 2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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