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곤이 Oct 16. 2024

심판의 날, 그리고 The Last of Us

흑사병의 무덤 아래에서도 꽃은 피어 올랐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자못 자극적인 표현이지만, 아무래도 대한민국이 끝장 나려나보다. 


  2024년 현재 출산율은 0.72명으로 곤두박질쳤고, 곧바로 내년이면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돌입한다. 고령사회(전체 인구의 15%가 65세 이상인 사회)에 진입한지 불과 8년 만이다. 이 정도 속도면 단연 세계 최고다.

  더 쉽게 말해 지금 추세가 계속되면 약 50년 뒤에 우리나라 인구는 1/3로 줄어들고, 300년 내에 '한국인' 자체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미 지난 2006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이른바 '코리아 신드롬'이란 용어를 만들어내며 유엔 인구 포럼에서 '한국이 지구상 첫 번째 인구소멸국가가 될 것'이라 경고한 바 있다.


  인구 고령화는 선진국 거의 모두가 겪는 현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출산까지 겹쳐 인구소멸이 가장 뚜렷하게 현실화되는 국가다. 그래서 이 분야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세계 최초를 써내려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인구 문제를 사례로 삼아 자국이 향후 겪을 문제와 그 과정들을 시뮬레이션 삼고 있을 정도란다.


  2004년부터 작년까지 약 20년 간, 저출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380조 원을 지출했다는데 그 결과가 이렇다. 과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가뜩이나 좁은 나라에서 더 좁은 수도권에 몰려 살아야 할 수 밖에 없다니...ㅠ (출처 <대한민국 국가지도집> 사이트)




  석학들의 두뇌와 미칠듯한 예산이 투입되고도 해결하지 못한 저출산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국가 소멸도 수 세기 뒤에 정말 일어날지 어쩔지 모를 일이니 잊는다 치자.  

  당장 인구 감소의 현실을 대차게 얻어 맞는 것이 소비 시장이다. 아무리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지만, 어느 정도 내수는 받쳐줘야 기업 경영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새로이 창업하는 영세한 기업 입장에서는 내수에서 걸음마부터 잘 떼고 나서야 비로소 해외 시장을 개척할만한 여력이 생긴다. 그런데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소비 침체가 고착화되면 기업들도 긴축 경영에 돌입하게 된다. 그럼 소비는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노동 가능한 인구가 감소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심지어 대한민국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제조업 의존도가 28%로 높은 편이다. 그에 반해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이라는 독일과 일본의 제조업 비중은 20% 초반에 불과하다. 비슷한 수준으로 인구가 감소한다 가정해도, 우리의 노동력 상실이 훨씬 더 뼈아플 수 밖에 없다. 


  장기적인 소비 침체 하에서 노동력 부족으로 물가까지 오르면, 그것이 곧 경제학자들이 제일 두려워한다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다. 만약 여기까지 가면, 건국 이래 경제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IMF 시절을 뛰어넘는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그럼 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흑사병이 강타했던 14세기 유럽도 인간 세상에 강림한 지옥에 다름 없었다. 


  역사가 씌어진 이래 최초로, 가장 짧은 기간동안 가장 많은 인구가 감소한 것이 바로 1348~1350년 사이 3년 간일 것이다. 이 시기 흑사병이 도래한 유럽에서만 30~50%에 달하는 인구가 사라졌다. 바로 전까지 세계 인구가 4.5억 명을 헤아렸다는데 15세기에 이르러 3.5억 명까지 줄어들었다니 말 다 했다.


  본래 흑사병은 중국 서북부에서 유래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유독 중세 유럽에서 심화된 것은 전 세계 어느 지역보다 도시화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우선은 유럽 대륙 자체가 드넓은 아시아에 비해 협소한 편이다. 그 협소한 지역에 로마제국 멸망 이후 수 많은 게르만계 부족 국가들이 난립했다. 고만고만한 세력 뿐이어서 감히 통일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성을 쌓고 틀어박혀 수 세기를 버텼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성을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났고 그 마을들이 곧 도시로 성장했다. 


  또 중세 유럽도시는 봉건제와 장원제로 돌아갔다. 소위 농노라는, 자주권을 가진 농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확연히 주인에게 예속된 노예도 아닌 중간자들이 대부분의 노동력을 제공했다. 본격적인 화폐가 도입되기 전까지 유럽의 도시들은 농노의 노동력에 기댄 농업 경제가 기본이었고, 그렇게 장원에서 축적된 부를 통해 영주와 성직자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베네치아나 제노바와 같은 이탈리아의 해안 도시들은 상공업을 주류로 삼아 영화를 누리기도 했지만, 유럽 전체적인 판도를 볼 때 근본적인 '생산력'은 곧 농노의 노동력과 직결돼 있었다.


  그 와중에 흑사병이 강타해 인구의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당연히 인구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귀족이나 성직자에 비해 생활수준이 열악했을 농노들이 무수히 죽어나갔다. 시체를 묻을 사람조차 부족한데, 농사를 짓거나 성을 쌓는 등 공역은 택도 없었다. 그런 노동은 간신히 살아남은 소수만이 가능했다.




  당시 사람들이 신의 징벌, 종말이라고 서슴없이 표현할 정도로 암울했던 그 시기는 역설적으로 르네상스를 낳았다.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는 세상이 끝없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중세를 찢어버리는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극단적인 인구 감소, 그로인한 노동력 부족이 되려 혁신과 성장을 부추겼다.


  우선, 농업 생산력이 크게 감소했음에도 인구가 워낙 줄어 생존한 이들이 먹는데 부족함은 없었다. 게다가 노동자들에게는 비싼 인건비가 주어졌다. 이들은 축적된 자본을 통해 점점 농노에서 자영농화 되어갔다. 흑사병을 제대로 막지 못한 영주와 성직자들의 권위 상실도 농노들의 자주권을 촉진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며 남긴 유산들이 소수의 생존자들에게 다중으로 상속됐다. 그로인해 신흥 부유층이 생겨났고, 이들이 예술과 건축, 공산품 소비에 열을 올려 전반적인 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부의 재분배가 수요와 공급의 선순환을 이끌었다.


  그렇게 흑사병이 가장 극심하게 휩쓸고 갔던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르네상스가 꽃을 틔웠다. 그 시기 건축된, 그 유명한 피렌체 대성당(속칭 피렌체 두오모)의 정식 명칭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즉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니 왠지 더 의미가 깊게 새겨온다.


피렌체 도시 이름 자체가 이미 '꽃의 도시'란 뜻이 있지만. 아무튼 언제보아도 질리지 않는 최애 도시, 최애 성당.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감소를 르네상스로 승화시킨 유럽의 사례를 현재 우리나라의 그것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그리고 르네상스가 일어난 배경은 인구 감소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다만 우리는 이미 위기를 직면하고 있고 이것을 기회로 삼지 않으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접근해야할 출산율 제고 이슈는 잠시 내려놓더라도, 노동력 부족 문제는 당장 속도를 높여야 한다.


  우선 현재 논의가 본격화된 정년 연장부터 매듭지어야 한다. 세계가 예의주시하는 초고령사회이면서, 동시에 선진국 중에서도 노년층의 빈곤율이 높은 대한민국으로서는 정년 연장이 필연이라 생각한다. 현재는 65세 연장이 논의되고 있으나, 적어도 십 수년 내에 그 이상 연장해야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물론, 정년 연장과 더불어 사실상 연공 서열제나 다름없는 현재의 임금 구조 역시 손봐야 할 것이다.


  또, 제조업 기반의 산업 구조를 단기간 내 변화할 수 없다면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혁신을 가속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못지 않게 빠른 속도로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중국에서도, 인건비는 점차 높아지면서 출산율도 감소하는 동남아시아 다른 국가에서도 노동력을 끌어오기는 힘들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비숙련 노동자를 투입하고서도 생산성은 높일 수 있는 혁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를 실현하기 위해 R&D 투자 뿐 아니라, 기업 내에서 학습 조직 활성화와 더불어 암묵지를 명문화·매뉴얼화 하는데 HR 부서의 역할이 커져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Chat 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이 반갑다. ICT 조직과 HR 부서가 적극 협력하여 AI 리터러시를 높이고,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사례를 발굴하는데 이미 많은 기업들이 힘쓰고 있다.



  근거없는 낙관이나, 인디언 기우제 지내는 것 마냥 요행을 바라는 것도 좋지 않지만 우리의 미래에 대해 지나친 비관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나라의 사례, 혹은 다른 시대의 사례를 들춰보고 상황을 타개할 비책을 찾아야 한다. 심판의 날은 피해야 하니까.

  그게 쉽지 않다면, 하다못해 희망이라도 갖자. 흑사병의 무덤 아래에서도 꽃은 피어 올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