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회의라고 소집해서 기탄없이 의견을 말하라 해놓곤, 혼자 일방적으로 장광설을 쏟아낸다. 대학생 수준에서도 충분히 제시할 법한 뻔한 의견을 마치 자신 만의 특별한 통찰이 담겨있는 생각인 것 마냥 포장해서 가르치듯 훈계한다. 그런데 사실 구체적인 방향이나 방법은 제시하지 못한다.
결국 긴 시간 그 리더가 쏟아냈던 피로한 말들은 위 한 문장으로 귀결될 수 있다. 굳이 그의 숨겨진 본의를 벗겨보자면, '나는 귀찮으니 너가 알아서 좀'이거나 '나도 사실 잘 모르겠으니 너가 알아서 좀' 정도려나.
아, '책임'을 운운하는 것도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다.
'이 일의 책임자는 당신이니까',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져야'도 세트로 자주 엮이는 단골 멘트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게 성과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면피를 위해서 밑자락을 깔아두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전형적으로 무능한데다 정(情)도 떨어지는 리더의 모습이다.
무능한 리더가 보이는 여러 모습들 중 특징적인 것은 우선, '관념어'로 말한다는 것이다.
말이 대체로 두루뭉술하다.
가령 어떤 회사에서 핵심인재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하자.
그럼 가장 먼저 그 회사의 경영철학·비전에 정렬된 핵심인재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핵심인재를 정의해야 거기에 맞는 선발 기준을 세우고 후보군을 선발할 수 있는 도구, 검증하고 육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대개 규모가 있는 회사는 역량 모델링을 통해 일관된 기준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선발과 육성 계획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규모가 그에 미치지 못하거나,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과거의 모델링이 더이상 적합하지 않게 된 경우에는 경영진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특히나 HR 조직의 수장이 회사의 철학과 경영진의 비전에 정렬된 '우리 회사의 핵심인재의 정의'를 명확히 인지하고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우리 회사의 핵심인재는, 그 사람이 빠지면 조직의 일이 마비되는 정도의 사람'이라고만 대답하면 곤란하다. 그 정도 멘트는 HR 부서가 아니어도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관념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HR 수장이 그 정도면 HR 조직의 일이 마비될지도 모른다. 본인도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나도 잘 모르겠으니 우리 빨리 의논하여 정의를 내려보자'고 말해주는 편이 빈약한 논리를 내세우는 것보다 낫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보면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 조정은 청나라 팔기군의 신속한 남하에 미처 한양 서쪽 강화도로 피난하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남하했다. 워낙 급박하게 도망쳐오는 바람에 물자를 충분히 챙기지 못했고, 하필 때도 혹독한 겨울이라 양식이 넉넉하지 못했다.
임금이 주관하는 조회에서 군량 배급을 담당하던 관량관이 남은 군량이 한 달치 정도가 될 것이라 보고한다. 다만, 관량관도 성안에 갇혀 농성하는 것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니 더욱 아껴서 배급하겠노라 보고한다. 이에 임금이었던 인조가 대답하는게 걸작이다.
"아껴서 배급하되, 너무 아껴서 배급하진 말라."
애매하기 그지 없는 임금의 하명에 관량관이 다시 묻는다.
"그러하면 얼마나 배급하라는 말씀이시온지..."
관량관 입장에서는 전쟁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니, 조정이 얼마나 농성할 계획인지 알 길이 없다. 차라리 기간이나마 일러줬다면 그는 그에 맞춰서 배급량을 추산했으리라. 그로서는 계획을 물어볼 법도 하다. 꼭 인조가 아니어도 군 전체를 관장하는 도체찰사(당시 영의정 김류가 맡았음)라도 답을 줄 수 있었겠지만 모두가 묵묵부답이고 인조는 짜증스럽게 대답한다.
"내가 너에게 그런 것까지 알려주랴?"
비록 영화에서 묘사한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 조직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상황일 것이다.
무능한 리더의 또다른 특징은 결단하지 못하고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기도 하고, 결정의 시기를 미루기도 한다.
남한산성의 인조 역시 빠른 항복이든, 결사의 항전이든 확실히 방향을 정해 움직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애초 광해군의 패륜을 뒤집어 엎겠다는 명분으로 일어선 정권이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 중 가장 우선했던 것이 청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를 섬기겠다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는 열흘 만에 한양을 함락시킨 청나라에 항복하는게 맞는 것 같은데, 자신이 뱉어둔 말이 있으니 그걸 다시 주워담는게 두렵고 민망했을 것이다. 그러니 조정이 산성에 틀어박혀 포위된 와중에도 주화파(청나라에 항복하자는 쪽)와 척화파(청나라에 저항하자는 쪽)로 갈려 정쟁을 벌이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사실 임금 인조 뿐 아니라 척화파들도 내심 항복해야 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러운 항복'을 말하는데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지 않아 미뤘을 뿐이다. 그래서 청나라와의 협상에 선뜻 나서지도 않고, 항복을 말하는 글짓기도 거부했다. 현실주의자인 이조판서 최명길이 나서 항복을 주장하고 글도 쓰겠노라 했지만 그마저도 '청나라 부역배'라거나 '항복을 말하는 역적'이라는 둥 대책없는 명분 만을 내세우는 반대편에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런 개차반 같은 상황을 수습하는 것은 임금 밖에 할 수 없다.
인조가 먼저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데 대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 빠르게 교통 정리를 해줬어야 했다. 그러나 신하들 앞에서 내내 울기만 하고, 항복과 항거 중 어느 쪽도 결정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남한산성에서 47일을 허비한 후에 청나라가 홍이포(서양식 대포)를 끌고와 성벽을 박살내기 시작하자 뒤늦게 떠밀듯이 항복 절차를 밟도록 했다.
삼전도(지금의 석촌동)에서 왕의 곤룡포도 벗은 채 청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청나라에 볼모로 보냈다.
여담이지만, 자신을 대신해 청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9년이나 한 소현세자를 훗날 자신의 정적으로 인식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소현세자가 유능하고 인품이 훌륭해 청나라와 조선 내에서 모두 '인조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를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지병이 있었다고도 하고, 야사에는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 앓다 죽었다고도 한다), 소현세자의 아내와 아들들은 직접 죽이거나 유배를 보냈다. 즉, 자신의 며느리와 손자들을 죽인 것이다. 지존인 본인이 굴욕적으로 머리가 찧도록 조아린 청나라에게 아들이 더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리더는 쉽사리 자신의 과오를 인정해선 안된다고 한다. 실수는 언젠가 만회할 수 있지만, 한 번 권위가 떨어지면 다스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란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한다.
그런데 오히려 과오를 인정함으로써 인정받는 경우는 없을까?
스타벅스의 종신 명예회장 하워드 슐츠는 알다시피 세 번이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적이 있다. 다른 전문 경영인에게 뒤를 물려줬다가도 스타벅스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다시 돌아와 반전을 이뤄내곤 했다. 그런 그가 과거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과 인터뷰 했을 때 한 말이 있다.
"기업에 위기에 빠지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환경을 탓하는 CEO들을 보면서 직원들은 더 큰 위기감을 느낀다. (중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말 뿐 아니라 실제로 슐츠는 스타벅스의 당면한 위기와 문제를 인정하고 2008년 미국 전역의 7천여개 매장을 일시에 닫았다. 그리곤 직원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바리스타로서의 마인드셋을 새로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 스타벅스의 위기가 직원 탓이라 생각했거나, 당장 눈 앞의 매출 만을 염두에 뒀다면 내릴 수 없는 결단이었다.
또 슐츠 본인이 반대했었던 새로운 음료를 몰래 개발한 프로젝트 팀을 탓하지 않고 매장에 실제 출시까지 하도록 했었다. 자신의 뜻을 거역한 그들에게 치사하게 '어디 한 번 해봐, 대신 책임져'라고 말하기보다 의욕을 칭찬해주고 기회를 부여했다.
현재도 많은 논란과 위기 속에서 부침하고 있으나, 어찌됐든 슐츠가 경영 실권을 갖고 있던 시기의 스타벅스는 그로인해 잘 나갔었다.
이 정도 되는 사람의 언행이 계산되지 않았을리 없지만, 그래도 본인의 성장 배경 탓인지 인간애가 있는 리더로 보인다.
바꿔서 말해보고 싶다. 리더는 인정(人情)도 있고, 인정(認定)도 있어야 한다.
경영을 하는데 원칙과 기준이 무너질 정도의 객관성을 잃은 인정(人情)은 곤란하지만, 적어도 구성원 개개인의 인간성 존중하고 그들의 고충을 이해할만한 아량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을 따르게 하고 부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또, 과오에 대해 인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권위를 지키는데 급급해 희생양을 만들거나, 책임을 전가하면 누가 믿고 따를까. 솔직하게 인정하고 신속하게 만회할 방법을 찾는 편이 합리적이고 구성원들의 신뢰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고, 구체적인 지시를 할 만한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나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자신의 무능함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관념과 명분만 쥐고 있으면 일이 마비된다.
그 분야에 유능한 사람을 본인이 인정해주고 밀어주면 될 일이다.
인조(仁祖)라는 묘호는, 사실 유교 제도권 국가의 군주에게 바쳐지는 최고의 존호 중에 하나다.그 글자의 뜻만 보면 '세종(世宗)'이나 '성종(成宗)'보다도 더 높게 칠 수 있는 이름이다. 생전 아들에게조차 인정이 없었고 자신의 과오도, 자신의 무능함도 인정할 줄 몰랐던 임금이다. 그런 그에게 죽은 뒤에 '인(仁)'자가 더해졌다는 사실이 자못 작위적으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