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저녁, H와 함께 한강을 걷고 있다. H가 말하길, 세빛섬 근처에 스타벅스가 만든 빛나면서도 커다란 프라푸치노가 있다고 했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본다.
"오빠, 저기 있잖아~ 저거 안 보여?"
연신 두리번거리던 나는 간신히 거대하고 빛나는 프라푸치노의 옆면을 찾아내곤 안도의 한숨을 쉰다. H는 내가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곤 곧이어 말한다.
"나는 저런 쓸모없는데 커다란 뭔가들이 좋아. 그 쓰임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잖아."
거대한 프라푸치노는 스타벅스 홍보라는 쓰임이 있긴 하지만, 그 형태나 존재가 기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자동차나 휴대폰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는 것.
"예술 쪽이 저런 것들과 결이 맞닿아 있는 듯 해. 예술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잖아."
"맞아. 모든 사람도 그러하다고 생각해.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지."
"그렇지. 하지만 슬프게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그렇게 가만두진 않는 듯 해. 쓰임에 의해서 굴러가는 슬픈 세상이야."
모든 것을 효율로 판단하고,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버리는 것. 본인에게 유쾌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것이 이익이 된다면 참고 견디는 것.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자 서글픈 면이라 본다.
하지만, 우리 삶의 모든 면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잘 살펴보면, 존재 자체로 힘이 되는 것들이 있다. 옆에 있는 그 자체로, 귀엽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들. 그런 것들을 주위에 많이 두고 잘 살피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