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1
H는 종종 글을 쓴다. H는 사랑스러운 면이 참 많지만, 정리하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특히 H를 러블리하게 만들어주는 것 중 하나다. H와 근교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글을 하나 남겼는데, 그 내용은 ‘새로움’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행지에서 낯선 모습을 보고 설렘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단다. 길가의 풀들도,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도 우리 주변엔 없는 것들이라 더 귀여워 보였단다. 한편으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까치나 은행나무들처럼 그곳에서는 우리에겐 낯선 것들이 외지인에겐 익숙한 것일 수 있겠단다. 반대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어떤 이에겐 귀여워 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서 새로움을 찾아보려 하는 편이란다.
나는 이 생각을 읽고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첫째는 행복에 대한 깨달음.
둘째는 사랑에 대한 깨달음.
둘의 원리는 비슷하다. 주변의 작은 것들을 인식하고, 새로움이나 귀여움, 사랑스러움을 찾아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지려 노력한다. 노력하면 더 가질 수 있지만, 소유에서 오는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H도 글에서 그렇게 표현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소비에서 오는 만족감이다. 새로운 물건을 사며 누군가에게 과시한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고, 그곳에서 자존감을 채우기도 한다. 비단 소비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영역에서 새로운 자극들을 추구한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본능에 의해 더 많은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소유뿐만 아니라 게임을 하거나, 달콤한 음식을 먹거나, 술이나 담배를 피우거나, 투자를 하거나 사랑에 빠질 때에도 도파민이 분비된다. 모든 영역에서 그 기준은 점점 둔감해지고 역치가 올라간다. 더 좋은 물건을 가져야 만족하고, 더 재밌는 게임을 하거나, 더 좋은 술을 찾는다. 이러한 자극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면, 다음의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극단적인 예로, 사람이 마약을 하게 되면 한 순간에 역치가 높아져서 더 이상 이러한 일상적인 영역에서의 흥미를 잃어버린다고 한다. 더 큰 자극인 마약 없이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편하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누리는 것은 좋다. 하지만 더 강렬한 자극을 위해서 자신의 무언가를 희생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떠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섭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만족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한 가지가 주변의 작은 것들에서 사랑스러움, 귀여움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흘러가는 것들을 유심히 보고, 거기에서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것.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고,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여기에서도 만족을 느낄 수 있다. 큰 자극은 아니지만, 작은 만족감을 꾸준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작은 만족감들이 꾸준히 채워지다 보면 큰 자극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도 들지 않게 된다. 사람에게 외로움이나 공허함이 클수록 더 큰 자극으로 그 공허를 채우려고 할 수 있지만, 그러한 공허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면 큰 자극도 필요 없지 않을까. 작은, 그리고 빈도 높은 만족감들은 공허함이 생길 자리가 없도록 내면을 꽉 채워준다.
일상에서의 만족을 행복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작은 만족을 꾸준하게 채워나가는 게 행복이라는 깨달음을 H의 글을 보고 얻었다. 본인이 스스로 행복한 지를 알려면 지금 이 순간 ’나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
행복도 그렇지만, 사랑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서로 사랑하는 것 또한 연인 사이의 만족도에 의해 결정된다. 극단적으로 어떤 연인이 헤어지거나 바람을 피운다면, 그 연인의 관계에 있어 무언가 만족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 추정한다. 그 부분은 정서적인 것일 수도, 소통에 관한 것일 수도, 육체적인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쉽게 이별을 생각하거나, 외도를 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아야지.
이러한 이유로 많은 연인들은 상대방이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H도 가끔 그런 말을 하곤 한다.
“다른 어떤 여자가 오빠한테 좋다고 하면 어떡해?”
ㅋㅋ 그럴 리가 없다. 근데 이런 말을 들으면 내심 기분은 좋다. H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나는 지금 개뿔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과분하게도 H는 나를 좋아해 주고 있다. 남자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는 능력과 비슷해서, (그럴 리가 없겠지만) 내가 크게 성공하고 나면 (감히) 나에게 임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접근하고자 하는 여성이 있을 수도 있(을리가 없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한번 해보)겠다. H는 그런 상황에서 내가 넘어갈 것인지 궁금한 것이다. 넘어갈 리 없다. 그렇지만 H의 걱정을 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나도 H를 내가 없는 곳에 가만히 두면 낯선 남자에게 번호를 따일까봐 안절부절못하기 때문.
여기에서 넘어갈지 아닐지에 대한 여부는 ‘우리의 관계에서 만족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반려자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에게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모든 면을 다 마음에 들어 할 순 없다. 내가 보는 H의 모든 성향은 관점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H는 세심한 성향을 지녀서 꼼꼼하고 신중하며 조심스럽다. 이렇게 생각하면 장점이지만 누군가는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말과 행동에서 매번 좋은 점을 찾고 상기하는 것이다. 상대의 성향이 어떻다는 것은 알고 있어도 그 성향이 여러 가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장점으로 발현하는지 발견하는 것. 그것은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찾는 태도이다.
H의 성향도 그렇지만, 외적인 부분에서도 매번 장점을 찾게 된다. 매번 같은 얼굴이지만 어떤 날은 눈이 더 예쁠 수도, 어떤 날은 귀가 더 귀여울 수도 있다. 화장을 안 한 날에는 수수한 매력이 좋고, 화장한 날에는 세련된 매력이 좋다. 아픈 날에는 가녀리고 연약한 매력에 지켜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름답지 않은 날은 없다. 이 또한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귀여움을, 사랑스러움을 찾는 태도다. 내가 주는 밥을 먹고 살이 많이 쪄도, 나이가 들어 주름이 지더라도 그 부분에서 아름다운 매력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러한 태도가 없다면 어떻게 90살까지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만 본다면 90살 노인보다 20살의 젊은이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랑은 객관이 아니라 주관이다. 그래서 20살의 젊은이보다 90살의 노인이 더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어쩌면 나도 H의 모든 것이 만족스럽진 못할 수도 있다. H의 단점이나 약점, 아쉬운 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H의 그러한 점들까지도 좋아해 본다. 이러한 태도는 어떠한 상황이 와도, 어떠한 다툼이 있어도 서로에게 만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로에 대한 만족이 일정 시간 지속되고, 그로 인해 강한 신뢰와 유대가 생기면 관계에 흔들림이 없다. 이러한 만족감과 신뢰, 유대의 근간에는 익숙하고도 작은 것들에서 새로움과 귀여움, 사랑스러움을 찾는 태도가 있다. 국밥을 먹는 오늘의 H는, 따뜻한 국물에 든 작은 밥알을 우물우물거리는 작은 입이 귀엽다. 전체적으론 세련되었지만 수수한 무드를 지니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자연스러운 갈색의 잔머리가 귀엽기도, 힘 없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가녀린 손가락이 아름다울 때도 있다. 모든 날, 모든 순간에 H는 소소하게도 아름답다.
정리하자면,
행복은 ’나‘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지의 여부이다.
사랑은 ‘우리‘ 관계에 만족하고 있는 지의 여부이다.
어쩌면 행복이란 소소한 것에 만족하는 삶의 태도에 있다.
어쩌면 사랑이란 소소한 상호작용에 만족하는 삶의 태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