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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생 Dec 30. 2024

목이 아픈 날. 굳이 굳이 날 위해.

12/30

목이 왜인지 모르게 칼칼하고 아픈 날.

죽을 만큼 아픈 건 아니지만 그래도 쉬는 게 나을 정도로 아픈 날 위해.. H가 죽을 들고 온다고 한다. 그것도 삼계죽을.


2024년의 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배달앱에서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원하는 음식을 문 앞에서 받아볼 수 있다. 물론 삼계죽도 배달앱에서 버튼을 누르면 30분 뒤에 문 앞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는 중이다. H가 가져다주는 죽을 먹기 위해서 그렇다.


H가 직접 쑤어준 것이 아니다. 그저 맛집에 가서 나를 위해 포장을 해다 주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H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따스하다. 왜냐하면 정성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을 직접 만들어 줄 필요는 없다. 물론, 닭을 직접 잡을 필요도 없다. 옛날에는 직접 도시락을 싸주거나, 직접 죽을 쑤어주는 것, 기르던 닭을 잡아 삶아주던 것이 정성과 사랑의 증표, 미덕처럼 여겨온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표면적인 것보다는, 진심이 담긴 마음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H의 진심이 담긴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나는 마침 쉬는 날이어서 하루 종일 콜록거리며 방 안에 누워있는데 하루 종일 나의 안위를 걱정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참 고맙다. 그런데 끝나고 죽을 사다 주고 가겠다니... 본인 일하느라 정말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도 굳이 굳이 죽을 갖다 주러 온다는 것이 참 고맙다.


'죽'은 그 마음을 전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다. 그래서 얼어붙은 마음과 감기를 빠르게 녹여낼 것이다. 다른 표현 방법들도 많이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진심이 담긴 마음들이 닿을 때면 누구나 소중한 사람이 된다. 누군가가 나의 안위를 걱정해 준다는 것은 참 든든하고 분에 넘칠 만큼 행복한 일이다. 인간은 결국 혼자 남는 순간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은 결국 혼자’라고. 하지만, 이 말이 혼자인 순간에 느낄 외로움과 고독을 줄여주진 못한다. 나의 안위를 진심으로 살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잠시 혼자가 되는 순간에도 그를 떠올리며 되짚어볼 수 있다. 나의 삶은 그래도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음을.


맞다. 서로를 신경 쓰고 진심으로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죽을 직접 전해주지 않아도 된다. 배가 너무 고파서 일단 저녁을 먹고 죽을 사다 줄지 말지를 고민해 보겠다던 H가, 너무 힘들어서 집에 가려한단다. 미안하니 배달로 보내준다나. 나는 속으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H는 평소에 일이 고되어 퇴근하면 녹초가 되는 편이다. 그래서 데려다줄 때에도 짐이나 가방을 들어주며 달래주곤 한다. 그런 H가 우리 집까지 죽을 가져다준다니, 미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죽을 가져다주고 집까지 가면 거의 12시가 넘을 것이다. 배달을 하는 김에 맛있는 음식이 오길 바랐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먹고 나면 많이 늦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럴 거면 미리 퇴근할 때 시켰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H에게 표현은 안 했지만 말이다.


배달을 시킨다던 H가 얼마 안 돼서 배달이 잡혔다고 말했다. 라면을 끓여도 이보다 빠를 순 없었다. 미리 준비된 음식이 배달되는 줄로만 알았다. 잠시 뒤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더니, 문을 여니 삼계탕과 노티드를 든 H가 서있었다.


개인적으로 서프라이즈에 감동을 받기보다 당황스러워하는 편이다. 무언가 선물을 받는 데에도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H의 깜짝 방문에 있어서 리액션이 서툴렀다. 나의 당황스러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내가 H에게 감동을 받은 포인트는 다른 곳에 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될 때 감동받는 편이다. H가 나를 얼마나 생각해 주었는지, 나에게 얼마나 마음을 쏟았는지, 이것을 준비하려고 얼마나 애썼을지 느껴지는데에서 감동을 받는다. 지난번 H에게 노티드 케이크를 사 오며 다른 도넛도 사 오고 싶었는데 못 사 와서 아쉽다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을 기억하고, H가 노티드를 사 온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삼계탕을 사다 줄지, 삼계죽을 사다 줄지 고민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처음엔 삼계탕을 더 먹고 싶다고 했는데, H는 죽을 사다 주고 싶어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때부터 오히려 죽이 더 먹고 싶어졌다. 진심으로 죽이 먹고 싶다고 계속 얘기했는데, H는 아마 사기 직전까지 죽이냐 탕이냐를 고민했을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처음에 먹고 싶다던 삼계탕을 진심이라 여기게 되어 삼계탕을 사다 주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알기에, 삼계탕을 남길 수 없었다. 노티드 도넛도 꼭 하나는 맛봐야겠더라. H에게 추천을 받아 우유크림 소금빵을 먹었다. 함께 받은 매머드 음료와 함께 먹으니 세상 어떤 빵보다도 스윗한 맛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굳이 멀리까지 와주어서 따스한 마음을 전해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H가 나를 위해 고민을 해준 것. 나를 위해 에너지를 써준 것. 나를 위해 시간을 써준 것.

H의 일상에 내가 들어가 자리 잡고 있다는 감각. 이 감각이 나를 설레게 하고 감동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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