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연생 Dec 16. 2024

중고 서점에서 만난 다정함

9/10

가로수가 유명하다는 그 길에서 H와 저녁을 먹은 후, 약간 습하고 눅눅한 책의 향기를 지닌 서점으로 들어왔다. H가 사고 싶어 하는 책이 있다.


'다정함의 과학'


이 책은 다정함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큰 힘이 되는지, 그리고 다정함이 우리의 생존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책이다. 나는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진 못했다. 나중에 H에게 책을 빌려달라고 해서 읽어봐야지.


다정함이란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의미일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마다 생존을 하기 위해 기르는 능력들이 다양하다. 그만큼 직업이 다양하고 세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큰 범주로 나누어보면, 경쟁을 위한 능력과 협력을 위한 능력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경쟁을 위한 능력으로, 상대와의 힘의 격차를 만들고 상대방이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방식이 있다.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트럼프, 푸틴, 일론 머스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주변인들을 리드하거나 관철시킨다. 이들은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을 이겨내고 물리치는 데에 익숙하다. 이처럼 자신의 아이디어 또는 선택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관철시키는 것을 성취로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미 많은 성취를 이루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도 한다. 물론 존경 어린 시선을 받는 만큼 그 반대의 시선도 받겠지만 말이다. 힘의 우위를 가진 사람은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이 익숙하다. 경쟁을 부추기고, 권위로 조직을 통솔한다. 그렇게 조직의 능률을 높이고 더 나아가 사회 안에서의 생존 확률을 높인다.


반대로 협력을 위한 능력을 기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표되는 능력이 바로 다정함이다. 역설적으로, 이 다정함 또한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다정함은 상대방을 향한 여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간이든, 에너지이든, 마음이든 타인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법 한 상황이어야만 다정함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내의 힘든 하루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다정함이 나오려면 일단 그녀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만큼의 마음속 공간을 만들어두어야 가능하다. 자신 스스로의 삶조차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우면 그 공간을 만들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나도 다정함과 친절함이 주는 힘을 본 적이 있다. 모든 인간은 감정을 갖고 있는데, 이 감정이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것은 결국 감정이 하는 일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일 수 있는 그 본질은 감정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이 이성만으로 이뤄져 있었다면 세계는 이권 다툼으로 인한 양보 없는 전쟁터가 되었을지도.


믿는다는 것도 결국 최종 결정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 아닐까? 아무리 많은 명분과 법리 근거를 가지고 있어도 결국 어떤 사람을 믿으려면 감정에 의한 결정이 필요하다. 다정함은 이 결정이 쉽게 이루어지도록 부추긴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그 분야의 일을 잘하는 전문가에게 맡기게 되고 의지한다. 믿고 맡기려면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면 물론 과정에서 상대방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렇지만 절차와 태도에서 상대방에게 다정한 태도 또한 유지한다면, 더 큰 믿음을 줄 수 있다. 물론 결과가 좋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정하지만 때론 단호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고, 그래서 사회생활이 다들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흔히 소송이나 싸움에 휘말리는 경우에는 결과보다는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과정에서 소통이 부족하거나,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경우다. 이 경우에 특히 자신은 전혀 결점이 없고 상대방만이 문제라는 태도에서 주로 감정이 많이 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말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표현 안에는 비언어적인 표현도 함께 담겨있다. 몸짓, 감정 등의 표현 말이다. 강아지와 소통이 가능한 이유도 이 ‘비언어적’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안에서 감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언어에 담겨있는 감정은 때때로 청자에게 '우호적인지' 판단하게 하는 요소이다. 이 감정이란 보통 말투에 담겨있다.


'사랑해'라고 소리 지르는 것과 '안돼'라고 상냥하게 말하는 한 강아지 영상이 있다. 신기하게도 사랑한다고 소리 지를 때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상냥하게 말할 때에는 친밀감을 느낀다. 이는 ‘감정동기화(감정전이)’라는 본능이 있어 서로가 교감이 잘 되어있는 상태에서 상대의 감정을 자신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나에게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는 한 두 마디 대화에서도 본능적으로 느낀다. 내용을 떠나서 말투가 주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각과 의도를 다정한 말투에 실어 보낸다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연애나 결혼생활에서도 유효하다. 많은 사람들은 관계에서 자신이 우위를 점하길 바란다. 한마디로 갑의 위치에 있길 바란다. 상대에게 자신이 편한 대로 말하고, 자신의 말대로 움직여주길 바란다. 나의 아내나 남편이 내 마음대로 잘 움직여주길 바란다.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말하거나 전달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한 쌍의 배를 운행하는 것과 같다. 계속해서 소통하지 않으면 방향이 틀어지면서 서로의 간격이 멀어진다.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협력상대가 아닌 경쟁상대로 인식하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저 인간은 아무것도 몰라. 능력도 없어. 으이구 화상아.' 이렇게 그들이 하는 말들은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속으로 뿌리 깊게 파고들어 빼낼 수 없게 된다.


 이 단어들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칭찬하는 에 반대되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칭찬을 하다 보면 굳이 돌아오거나 받는 것이 없더라도 상대의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상대의 기분이 좋다면 당연히 나에게 돌아올 상처가 되는 말들도 줄어들게 된다. 상대방의 실수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보듬어준다. 상대방이 힘들어할 때 '그러게 내가 뭐랬어' 보다는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또 그래도 돼.'라는 말이 힘이 된다.


바람과 햇님이라는 동화에서, 나그네의  옷가지를 벗어던지게 하는 것은 물리력을 지닌 강풍이 아니라 다정함을 지닌 햇살의 따스함이었다.




H가 책을 구매하고 서점을 나서며 말한다.

"중고책인데 누가 책을 갖고 있었을까?"


내가 대답한다.

"그 사람도 다정함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