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당신 : 부서 동료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7장 3절의 말씀이 떠오른다.
꼴통 같은 동료와 어울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제 눈의 티끌부터 먼저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들보는 깨닫는 것이 어려운가 보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니 내버려 두라.”라고 당당하게 동료들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료들도 그런 동료를 포기하고 지나간다.
그 동료의 행동이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료 또한 동료들에게 그들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포기가 전부는 아니지만, 현실 사회에서 동료의 들보를 빼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들보는 티끌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빼기 불가능한 들보는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좋다.
티끌이 들보가 되지 않도록 제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정시에 출근하지 않거나, 어디에 가는지 얘기하지 않고 자리를 비우거나, 부서원 모두가 같이 한 일을 자기 혼자 처리했다고 떠벌리고 다니거나, 술 마시면서 조용히 도망가거나.
별 것 같지 않아 무슨 티끌이냐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이 발전하려면 무임승차자(free-rider)가 많으면 안 된다.
보상을 받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회사인데, 그냥 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안 된다.
과감히 질책하라.
“당신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본다.”라고.
인정머리 없다고 얘기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비판을 가하는 사람치고 일 잘하는 사람 본 적 없다.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Dall-E 이용, Prompt: 사무실 동료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40대 남성 한 명은 웃으면서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