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꼴통 : 직장 상사
상사는 부하직원을 보며 “이 녀석은 내 부하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 같은 생각일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기는 상사’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부하직원이 보고서를 작성해 오면 자기는 그것을 간단히 정리해 윗선에 보고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직위가 높기 때문에, 나이가 많기 때문에, 명령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부하직원은 당신을 상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자기보다 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권위와 명령을 앞세우는 상대에게는 점점 존경할 마음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너무 나약한 상사에게도 존경할 마음이 사라진다.
위에 있는 사람은 위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그 무언가’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부하직원에게 인정을 받아야 상사가 될 수 있다.
상대가 ‘나는 이 사람의 부하직원이다.’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너는 내 부하직원이다.’라고 생각하고 상사의 권위를 앞세우며 다니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서 상사가 되는 것이다.
그 계기를 접하기 전에는 소위 수습(見習) 상사에 지나지 않는다.
부하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회사가 싫기 때문이 아니다.
상사를 존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존경할 수 없어 자신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존경할 수 없는 상사 밑에서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보기 싫은 것이다.
결코 일이 싫어서가 아니다.
상사가 싫은 것이다.
아니, 단지 싫은 것만이 아니다.
부하직원은 단순히 좋고 싫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아무리 싫은 회사이더라도 좋아할 수 있는 상사가 있기 마련이다.
존경할 수 있는 상사가 있다.
“회사가 싫고 업무는 하나도 재미없지만, 당신의 부하가 되고 싶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그러한 부하가 있다면 이만큼 멋진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Midjourney v6.1 이용, Prompt: 사무실 공간, 30대 여성이 50대 남성을 바라보고 활짝 웃으면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