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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이 Oct 28. 2024

미처 나오지 못한 방귀

"조금 더 친절하면 어때요?"


첫 남자친구와 함께했던 여행지, 강화도. 바닷가에 길게 늘어진 자전거 도로를 함께 달리는 그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 설렘도 잠시, 해가 노랗게 지며 논밭을 비추던 저녁 무렵, 난 급작스러운 복통을 느꼈다. 배꼽 주변이 딱딱해지고 꽉 찬 느낌. 당황한 나는 남자친구 몰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배가 너무 아파요.”

“어디가 아픈데?”

“배꼽 쪽이요… 뭔가 단단하고… 너무 아파요.”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혹시 방귀 못 뀌었니?”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남자친구가 들을까 봐 빠르게 전화를 끊고 집에 가자마자야 비로소 편안해질 수 있었다. 흔히 “재채기, 가난,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하던데, 방귀는 다르다. 숨길 수는 있지만 부작용이 꽤 심한, 부끄러운 생체 반응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건데도 누구나 숨기려 하고 창피해하는 묘한 매너의 영역이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시험 준비로 하루 종일 학교에 있는데, 방귀 낄 타이밍이 도통 나지 않는 거다. 꽉 찬 배를 움켜쥔 채 수업을 듣고 있는데, 권위적인 교수가 갑자기 내게 쏘아붙였다.


“그런 건 미리 체크했었어야죠. 준비에 한 시간이나 걸렸다고요? 방향성도 없고, 아무거나 가져와서 되겠습니까?”

속으로 생각했다. 교수님, 준비한 지 몇 달 됐거든요… 하지만 교수의 기준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얘기를 꺼낼 용기는 없었다. 불편한 분위기와 무뚝뚝함으로 꽉 찬 수업은 그야말로 오래된 방귀 같다. 언제 낄지 몰라서 눈치만 보게 되는 묵은 방귀.


나도 어린 시절에 방귀와 친숙했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방귀쟁이 며느리’를 주제로 구연동화 대회에 나가 1등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방귀는 해학적이고 누구나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소재였다. 책 속의 며느리는 대범하게 말했다.


“방귀가 나오는 건 못 참겠어요!”

며느리의 시원한 방귀처럼, 나도 교수님께 큰소리로 말하고 싶다. 


“교수님, 조금 더 친절하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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