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중학생들이 강연 중에 난장을 부리더라도 아무튼 톡은 내가 하려던 계획대로 밀어붙여야 한다. 나는 나의 멘탈을 꽉 잡고 톡을 해야 한다. 저번까지는 교수님의 간섭에 대해서 얘기했다면 이번 글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에서 있었던 일을 적어보려 한다.
6년 전에 중학생 과학 강연을 하러 갔을 때 생긴 일이다. 말 많고. 장난기 많은 200명가량의 학생들이었다. 말로만 하는 강연은 중학생들이 지루해할 게 뻔하니까 뇌과학에 관련한 인터렉티브 강연을 준비했다. 사실, 이러면 학생들이 과학 체험하느라고 주위가 금세 산만해지기 일쑤다. 게다가 나는 다른 강연자들에 비해서 몸집도 작고 어려 보여서 만만하게 보일 여지가 많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난장판이 벌어지지 않는 발표를 하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준비했다.
첫 번째로는 전문성을 어필해서 내가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처음 시작할 때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 내가 수상한 실적 등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런 거는 뭐 별거 아니고 형식적으로 그냥 한다는 듯이 시크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질의응답 시간에는 정말 아무 질문이나 해도 되고, 오늘 뇌과학 관련된 얘기 아니더라도 우주 같은 것도 질문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 학생이 블랙홀 질문을 했고, 그 정도는 내가 천문학 강의에서 배운 내용으로 친절하게 답해줬다. 너희들이 궁금해하는 과학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인식을 박아줬다.
두 번째로는 학생들이 난장판으로 떠들고 있는 이 상황 자체도 내가 다 컨텐츠로 계획한 것이며, 모두 내 강연의 일부라는 전략을 세웠다. 학생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뇌과학 관련 체험을 하고 있으면 당연히 자기들끼리 얘기한다고 시끄러워진다. 그러면 청중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개별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를 캐치했다.
학 : (시끌시끌) 와 나 이거 티비에서 본 적 있어!
나 : 네 맞습니다! 저기 8 반쪽 학생이 티비에서 본 적 있다고 한만큼 유명한 실험입니다~
강연 내용 중에서도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부 안다는 듯이 얘기했다. 주제가 뇌과학이다 보니까 뇌과학을 이용한 트릭으로 학생들이 생각할만한 요소들을 맞춰나갔다. 그리고 너희들은 모두 내 손아귀 안에 있다는 느낌으로 얘기했다. 이 강연과 학생들은 내 컨트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인식을 줬다.
세번째로는 내가 강연의 키를 잡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아이들이 떠들고 있어서 강연을 재개하지 못할 때가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됐다. 어떻게 강연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을 조금 하고서, 나는 일부러 마이크에 대고 작게 말했다. 그럼 처음에는 아이들이 떠들던 대로 그냥 떠든다. 10초 정도 지나면 몇몇 애들이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걸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20초 정도 지나면 내가 뭔 말하는지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다가 30초 정도 지나면 옆에 있는 애들한테 조용히 하라고 툭툭 친다. 그렇게 1분 정도 지나면 자연스레 아이들한테서 나한테로 토크 주도권이 넘어온다. 그 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말하면 된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발표의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 강연을 몇 번 했었고, 여러 반응들이 있었다. 나는 그 여러 반응들 중에서 학생들이 강연 때문에 시끌벅적해지는 게 좋다. 내 강연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생기는 소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중들의 긍정적인 소동을 발판 삼아 발표자는 그에 대응되는 재밌는 강연과 톡을 진행해야 한다. 앞서 내가 말한 장치들은 청중의 소동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발표자의 컨텐츠로 끌어모으는 장치일 뿐이다. 컨텐츠에서 다시 학생들에게로. 학생들에게서 다시 컨텐츠로. 에너지를 왔다 갔다 시키면서 학생과 강연자가 계속 상호작용 하는 강연이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