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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gsungg labnote Sep 26. 2024

내가 쓰고 싶은 글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알쓸인잡, 알쓸별잡의 심채경 천문학 박사님이 쓴 에세이다.


나는 과학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여가시간까지도 과학에 관련한 책을 잘 읽지는 않는다. 과학책을 읽다 보면 업무의 연장선 같은 느낌을 자주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과학을 싫어하는 건 또 아니니, 소금 한 꼬집 정도의 과학이 함유된 SF가 내 최애 장르다. 그나저나 이 책의 제목만 읽고서는 천문학 정보를 다루고 있는 책일 거라 지레 짐작해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유명한 작가의 책을 읽고 싶은 이상한 심보도 있다. 그래서 과하게 유명한 정재승 교수님 책은 중학생 이후로 거의 들춰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과하게 유명한 김상욱 교수님의 떨림과 울림은 미루고 미루다가 조금 읽어보기는 했다. 그리고 방송에 출연할 만큼 유명한 심채경 박사님이니까 이 책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근데 학교 e-book 도서관에 항상 대출 중이던 이 책이 우연히도 대출 가능하길래, 그냥 럭키빅키자나~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빌려봤다. 책은 에세이였고, 대부분은 그의 에피소드로 이뤄지며, 중간중간 짧은 과학 지식들이 박혀있었다. 그는 태양계 저 멀리의 큰 행성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나는 아주 가까이의 작은 단백질을 현미경으로 관찰할 만큼 우리는 상이한 분야를 연구한다. 하지만 그가 직업 과학자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나와 상이하지 않았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책을 감동과 공감의 눈물로 덮었다.




일기 속에는 두려워하는 내가 있다. 졸업할 수는 있는 걸까 두려웠고,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웠다. 어쩌면 졸업 후의 더 큰 두려움을 유예하기 위해 수료생의 고뇌에 천착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


책의 두 번째 챕터, '박사님이시네요'에 나오는 글이다. 이 회고글의 첫머리에 나오는 일기도 책에 적혀있다. 일기와 그 회고글은 내가 대학원을 보내는 나날들에 공명을 일으켰다. 공명은 두 물체의 고유 진동수가 일치하여 울림을 증폭시키는 물리적 현상을 말한다. 나는 그 공명으로 인해 눈물이 핑 돌았다.


의무 기간까지만 대학원을 다니고서 대학원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한 달에 한 번씩은 반드시 든다. 교수님이랑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논문이 과연 나오기는 할는지 초조해질 때, 나는 박사를 할 만큼 똑똑할까 의심될 때, 개인적인 인간관계로 우울해질 때, 지루하고 반복적인 성취 없는 일을 계속할 때, 부족한 연구비와 생활비를 떠올릴 때, 이 모든 순간마다 박사과정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반대로 내가 박사과정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잘 모르겠다. 또는 내가 박사과정을 잘하고 있는 걸까. 이것도 잘 모르겠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답을 바로 떠올리지 못한 채로 이 질문에 대해 계속 고민하다 보니, 엑스선 결정학 실험이 떠올랐다.


...


단백질의 구조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 중에서, 엑스선 결정학(x-ray crystallography)이라는 실험이 있다. 일반적으로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작은 세포를 보려면 현미경을 사용한다. 이 현미경은 광학 현미경으로,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인 가시광선을 이용하여 작은 물체를 관찰한다. 하지만 단백질 같은 작은 분자들은 가시광선이 탐지할 수 있는 크기보다 훨씬 더 작다. 따라서 이런 작은 단백질 분자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엑스선을 이용해야 한다. 단백질에다가 엑스선을 쐬여주기만 한다고 단백질을 관측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단백질을 규칙적인 배열로 크리스탈을 만들어서, 충분히 많은 단백질이 모여있어야 엑스선으로 관측할 수 있을만큼 강력한 신호가 나타난다. 즉, 엑스선결정학으로 단백질 구조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단백질 크리스탈을 제작해야 한다.


탄소 원자에 강한 압력을 가해줘야 규칙적으로 배열된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처럼 단백질을 규칙적으로 배열시키기란 쉽지 않다. 원리적으로 단백질 크리스탈은 고농도의 단백질 용액을 준비하고, 그 용액에 있는 물을 증발시켜서 제작한다. 그럼 그 단백질 용액의 조성은 어떻게 되는가? 답은 단백질마다 모두 다르다. 대부분의 용액 조건에서 단백질은 규칙적으로 배열되지 못한 채, 서로 엉겨붙만, 특정한 용액 조건에서 단백질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크리스탈이 만들어진다. 어떤 단백질은 소금만 넣어줘도 크리스탈이 잘 제작된다. 반면에, 또 다른 단백질은 소금, 마그네슘, 철, 등등을 넣고서 온도를 극저온으로 천천히 증발시키는 여러 가지 이상한 작업을 거쳐야 크리스탈이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단백질의 서열, 크기, 전하량 등등 여러 가지 성질들이 있지만, 이런 성질들과 단백질이 크리스탈을 만드는 조건 사이의 규칙이나 상관관계는 지금까지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다. 연구자가 원하는 단백질 크리스탈을 제작하기 위해서 연구자는 다양한 용액과 각양각색의 방법을 시도한다. 연구자는 단백질 크리스탈을 제작하기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테스트해야 한다.


단백질 크리스탈이 안 만들어지면, 그 과정 중에 중간 결과 같은 게 나오나? 아니, 나오지 않는다. 실험 중에 뭘 잘못했는지 조차 아무런 단서를 얻을 수 없다. 소금 농도를 높여야 할지, 실험 온도를 바꿔야 할지, 실험은 잘 되고 있는 건지, 경과에 대한 정보가 없다. 단백질 크리스탈을 제작하는 실험이 성공했는지는 크리스탈이 나오기 전까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구자는 크리스탈이 만들어질 때까지 가능한 조건들을 계속 시도할 뿐이다.


...


박사과정은 엑스선결정학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성공적인 박사과정을 보냈는지는 박사과정을 마치기 전까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교수는 올해 논문 내자는 말만 3년째 하고 있고, 내가 첫 제자라 선배의 발자취도 없고, 이 과정에 대한 중간 결과 같은 것도 없이 깜깜하다. 내가 이 과정을 잘 해내고 있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인생에 객관적인 지표 같은 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말 아무것도 없을 수 있나. 나중에 박사가 되면 그제야 나의 박사과정이 곧 성공적인 박사과정이 될 것이다. 그때 이 고된 박사과정의 효용성을 깨달을 수 있겠지.


나는 어쨌거나 박사과정을 계속하기로 선택을 했다. 나는 남은 이로써, 떠나지 않기를 선택했고, 버티기를 선택했고, 크리스탈이 나오기까지 시도하기를 선택했다. 나는 능동적으로 이 박사과정에 남아있다. 이 박사과정 길의 끝에 있을 그 무언가를 맞이하기 위해서 계속 킵고잉이다. (지금은 그렇다. 1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 미국 학자와 나의 공동연구자 중에는 옛 소련에서부터 활동해 왔던, 지금은 우크라이나인이 된 원로 과학자가 있다. 우주경쟁시대 초반에는 소련이 늘 미국보다 한 발 앞서나갔는데 아폴로 우주인의 달 착륙으로 인해 상황이 역전되었을 때, 그때도 달 과학자였던 그 소련 과학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 얘기라면 이미 나눠본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사람을 달에 보내서 기뻤다고 했단다. ‘우리’는 미국인도, 미항공우주국 관계자도 아닌, 인류 전체였다. 이번엔 내가 조금 놀랐다. 과연 못난 자격지심이었구나.


...


연구는 우리가 한다. 연구는 내가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지도교수와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동료들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의 우리가 한다. 내가 공부를 하면서 참고한 수많은 참고문헌의 선대의 연구자 선배님들, 내가 학회의 발표자리에 나가서 질의응답했던 동시대의 연구자 동료들, 발표를 듣고서 내 연구 의지를 타오르게 했던 발표자들, 정밀한 실험기기를 제작한 엔지니어들, 고순도의 화학시약을 제작한 제조회사와 그걸 전달해 주는 벤더회사 직원들, 대학교 실험실을 유지관리해 주는 교직원들, 우리에게 연구비를 지원해 준 연구과제 심사위원들, 연구비로 쓰이는 세금을 납세해 준 국민들, 이 모두에게 도움을 받아 연구를 한다. 그리고 더더 나아가 에세이에서 언급했듯이, 과학자 개개인은 인류의 대리자로서 연구를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


2019년 노벨생리의학상은 초저온전자현미경을 활용하여 단백질의 구조를 명확하게 밝혀낸 연구자 3명에게 수여되었다. 즉, 초저온전자현미경은 단백질의 구조를 연구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최신식 방법이며, 유용한 도구이다. 우리 연구실도 단백질을 연구하다 보니, 초저온전자현미경을 활용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이론밖에 모르는 초보자 혼자서 초저온전자현미경을 습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국내에는 초저온전자현미경(이하 현미경)이 열 대가 채 되지 않는다. 300 kV 짜리가 다섯 대 정도 있으려나. 현미경을 배우려면 그 다섯 대를 관리하는 박사님들에게 배워야 한다. 우선 담당 박사님들은 바쁘시고, 현미경 예약 스케줄은 꽉 차있고, 또 민감한 장비라서 현미경은 자주 고장 난다. 게다가 초보자에게 알려주다가 자칫하면 초보자가 또 현미경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현미경을 누군가에게 배우기쉽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현미경을 담당하시는 한 박사님과 연락이 닿아 현미경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 박사님은 열과 성을 다해서 현미경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시간을 다 합쳐보면 20시간 정도는 얘기해 주신 것 같다. 정말 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많은 도움을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한 박사님이었다.


박사님이 도와주셔서 감사한데, 너무 많은 시간을 뺏는 게 아닌지 염려 섞인 질문을 드렸다. 박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


나는 이 현미경이 한창 최신 기술로 부상할 때, 운이 좋게도 이런저런 혜택을 받고서 현미경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현미경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실험하면 연구자가 너무 힘들다. 인터넷 자료들과, 여러 논문을 보면 어떻게 현미경 실험을 하면 되는지 그 방법들이 나와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실험 방법들은 다 각자의 실험실과 각자의 단백질에 알맞은 각자의 실험 방법이다. 그 실험 방법을 보고 따라 하면, 자신의 실험에는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먼저 고생을 한 선배의 조언이 조금만 있다면, 더 빠르게 성취를 낼 수 있다. (당연히 후배 연구자도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내가 받았던 혜택과 도움을 후배 연구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줘야 할 의무감을 느끼기도 하고, 나 자신도 이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케줄이 바쁘더라도, 후배 연구자들이 알려달라고 하면 시간을 내서 알려주는 편이다.


...


과학은 특정 법칙이나 규칙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지레 짐작한다. 그래서 책만 읽고 지식을 습득하거나, 골방에 틀어박혀서 실험을 하는 과학자의 전형을 떠올리고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과학 연구는 주위 동료들에게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면서 진행된다. 어떤 사람은 대학원에서 가장 크게 늘었던 스킬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기'라고 말할 정도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다시 내가 그 누군가를 도와줄 기회는 드물다. 도움을 준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선배님이거나, 아니면 나만 그쪽 분야에 대한 지식을 요구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연구 지식을 그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해 준다. 나는 나의 후배에게, 또 다른 분야의 연구자 동료에게 도움을 준다. 그 모든 도움의 손길은 과학자들을 우리로 묶어준다.




이 에세이와 비슷한 책으로는 호프 자런의 <랩 걸>이 있다. 이제는 원로 과학자가 된 작가가 어렸을 때부터 박사과정, 조교수 시절, 교수 시절이 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풀어주는 에세이다. 심채경 박사님처럼 티비에 나올 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임소정 박사님이 저술한 <괜찮아 과학이야>라는 에세이도 있다. 이 에세이는 심채경 박사님의 에세이보다 조금 더 험난한 대학원 생활에 위로를 주고 따뜻한 느낌이다.


여러 과학자 에세이를 읽어봤지만 심채경 박사님의 에세이를 읽고서 확실히 알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같은 글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나 위로를 받는 글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그리고 내가 쓸 수 있는 글. 이성적이고 담백한 느낌의 문체로, 다 읽고 나면 짧은 여운을 주는 그런 이야기. 그래서 이번 독후감의 구조도 이 에세이의 구조를 따라서 한 번 작성해 봤다. 



추가로 좋았던 부분.


친구와 대화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가만 누워 밤하늘을 보고 있던 그때, 돌고래가 조금 움직인 게 아닌가! 우리가 있던 곳 주변에는 멀고 가까운 낮은 산들이 지평선 위로 불쑥불쑥 올라와 있었다. 동쪽 하늘에 아주 낮게 떠 있던 돌고래자리가 20분쯤 지나자 조금 더 높아져 아까보다 산에서 더 멀어진 것이 보였다.


 360도를 24시간으로 나누면 한 시간에 15도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단순한 계산. 천문학을 책으로 배운 내게는 그저 단위 환산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여러 숫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 돌고래가 내 마음속에서 뛰어오르기 전까지는.


...


오늘 내가 할 일은 애써서 받은 그 '연구 면허'가 별무소용인 종잇장이 되지 않도록 연구자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뿐이다.




덧1. 그래서 오늘 심채경 박사님의 뉴스레터를 구독함.


덧2. 인디밴드로 비유하자면 절절한 권진아보다는 담백한 김수영 같은 목소리. 이 에세이는 그런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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