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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gsungg labnote Dec 11. 2024

홍성아, 앞으로도 연구가 하고 싶어? 아니요..

난 절대 결단코 수백날이 지나도 연구밖에 모르는 바보는 안 될거야 (1)

2024년, 나는 6년 차 대학원생이다. 대학원생을 졸업하면 무슨 업을 하면서 돈을 벌까? 여러 가지 진로가 능하겠지만, 수과학 연구자는 하지 않을 것이다.


지적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하여 금전적으로 거래되지 않는 과학 법칙을 발견하는 사람


우선 연구자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부터 정의하자. 나는 지적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하여 금전적으로 거래되지 않는 과학 법칙을 발견하는 사람을 연구자라고 정의한다. 순수과학 연구자가 더 정확한 워딩이겠지만. 편의상 연구자라고 부르자.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지적호기심을 원동력으로 일을 한다. 그들은 문학 작품 내의 사회 담론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과거 인물의 사상에 대해 본인의 관점을 더해 연구하기도 한다. 그들이 그 연구를 하는 이유는 물질적인 보상을 받기 때문이 아니다. 그 분야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고, 그 공부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문사철 대학원생은 놀리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과학공학 대학원생은 재학 중에도 연구재단이나 기업에서 (실험비를 포함한) 큰 규모의 연구비가 주어지고, 졸업 이후에 어떻게든 그 전문성으로 기업에 취직하여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반면, 문학사학철학 분야의 대학원생은 이공계보다는 적은 연구비에다가, 졸업 이후에 전문성을 활용하여 돈을 벌 수 있는 루트가 학계에 남아서 교수가 되는 길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문사철 대학원생들은 학문만을 바라보고 공부하는 진짜 약자이기 때문에 밈으로도 그들을 놀리지 않는다. 이렇게 훌륭한 연구자지만, 이 글에서는 문사철 연구자가 과학 법칙을 발견하지는 않기 때문에 정의했던 (순수과학) 연구자에서 배제하겠다.


테크니션은 의뢰받은 실험을 자신의 기술을 통해서 수행하는 사람이다. 모든 실험들을 수행해야 하는 대학원생들보다 테크니션 쌤들은 전자현미경, 질량분석, 클로닝 등 특정 분야에 대해서 숙련된 기술을 가진다. 우리 학교 연구실에도 다양한 분야의 테크니션 선생님들이 있다. 나도 종종 테크니션 쌤들에게 실험을 의뢰할 때가 있고, 그때마다 그들은 깨끗한 실험 결과를 제공해 주며, 더 좋은 실험 결과를 위한 팁도 공유해 주었다. 테크니션 쌤들은 내 연구를 진전시켜 준 고마운 분들이고, 수많은 연구에 큰 기여를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테크니션은 과학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서 실험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급여를 받고 실험을 대행한다. 게다가 테크니션은 호기심으로 그 실험을 수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테크니션은 호기심과 금전적인 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정의했던 (순수과학) 연구자에서 배제하겠다.


기업체의 연구원은 과학 법칙을 발견한다. 제약기업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원이나,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타이어 공정 연구원들도 모두 과학실험들을 수행한다. 들은 아마 나보다도 훨씬 큰 규모로 실험을 하고, 사용하는 장비도 훨씬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실험들을 통해서 어떤 화학물질이 질병 치료에 영향을 끼칠지,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마모가 덜한 타이어를 제작할지 등의 과학 법칙이나 현상을 발견한다. 물론 그들이 실험을 하는 프로젝트 동안에는 금전적인 이익이 아니라, 본인의 지적 호시심 만족과 프로젝트의 성취감을 위해서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연구하는 대상은 구매할 수 있는 형태의 서비스 또는 물건이다. 결국, 기업체의 연구자들은 판매를 하기 위해 약품이나 타이어를 연구하고,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윤 창출이다. 따라서 이윤 창출을 위해 과학 법칙을 발견하기 때문에 기업체 연구원도 (순수과학) 연구자에서 배제하겠다.


대학교 연구실 교수. 정부 부설 연구소의 수석연구원.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대학원생들. 이런 사람들이 연구자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지적 호기심으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하고, 이 발견을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목표다. 나도 지금은 대학 연구실의 대학원생이니까 연구자다.


연구자는 금전적인 목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벌기 쉽지가 않다. 대신에 연구자는 정부나 연구재단에서 제공하는 자금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급여를 받는다. 정부는 연구자들이 좋은 연구를 하면 국위선양과 자부심을 돌려받는다. 제약 회사나 스타트업도 수익이 나지 않을 때 투자자들이 자금을 대준다. 다만 이 쪽은 회사에 수익이 나면 투자자들은 금전적인 이득을 돌려받는다. 가끔씩은 연구소에 있다가 연구소에서 발견한 과학적 사실을 가지고 기업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은 연구자였다가 사업가가 된 경우다.


나는 대학원졸업하고서 연구자가 되지 못할 것이고. 연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적호기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 세상에 대해서 별로 궁금하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궁금한 게 있어도 내가 그 궁금증을 직접 해결하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지가 않다. 굳이 내가 고생고생하고, 밤새 실험해 가면서 발견의 즐거움을 얻고 싶지는 않다.


기초과학은 쓸모없는 물음에 답하고 싶은 지적 호기심으로 연구가 시작된다. 대장균이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면역반응에 대한 연구. 명왕성 바깥의 오르트 구름에 존재하는 운석들에 대한 연구. 이런 연구가 기초과학 연구이다. 기초과학 연구를 하고 있는 연구자에게 기초 연구를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이렇게 답한다. "인류는 아직도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극히 적고, 그 세계에 대해 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해결하고 싶은 질문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습니다." 나도 기초과학 연구가 재미있다. 기초과학을 공부하면 새로운 과학적 정보와 논리적 사고를 습득할 수 있어, 충분히 지적 충만감을 채워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그 기초과학 연구의 선봉장에 나서서 내가 그 과학적 지식들을 생산해야 할 때 발생한다. 기초과학의 연구 결과들은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바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기초과학은 사람들의 수명연장이나 편의증진에는 하나도 쓸모가 없다. 기초과학 연구의 결과를 통해서 진행한 후속 연구의 결과를 적용할 수는 있겠지만. 이 연구의 결과 자체는 사람한테 쓸모가 없다. 쓸모없는 기초과학은 나의 연구 동기를 끓어오르게 하지 않는다.


나는 대의적이거나 금전적인, 눈에 띄는 목표가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 신약 개발을 통해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가능케 하거나. 획기적인 쓰레기 분해를 통해 지구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연구. 이런 연구들은 정말 마음 깊이 대의를 위한 연구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구할 것 같다. 동시통역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어 딥러닝 연구나 모든 암세포에 적용가능한 항암제 연구. 이런 연구들은 판매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 금전적인 목표와 함께 연구할 것 같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데서 보람을 느낄 것이다. 설령, 내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내가 이룩한 과학적 성취가 나의 다음 세대에게, 또는 다른 연구진에게 도움이 된다면 보람찰 것이다.


당장 쓸모없는 기초연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쓸모없는 연구 그 자체만으로 인류의 지식 증진을 위해 쓸모를 발휘한다. 또한 앞서 말한 쓸모없는 연구들이 길게 봤을 때는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간배아의 유전자 조작 치료나 먼 훗날 인간의 태양계 여행에 기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도, 내가 지적충만감을 느끼기 위해서 쓸모없는 연구를 읽고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쓸모없는 기초과학 연구가 재미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기초과학 연구에 종사해야 한다. 다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기초과학 연구를 시작하는 원동력이 지적 호기심이라면,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은 새로운 발견의 희열이다. 연구는 연속적인 인내와 실패의 와중에도 가끔씩 불연속적으로 찾아오는 새로운 발견의 희열로 이뤄진다. 이 희열이 없다면 제아무리 호기심이 넘쳐났던 사람도 어느샌가 호기심이 식어버리고 넘어질 것이다. 발견의 희열이 연구 과정 중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게 한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나도 논문을 곧 제출할 것 같다. 이 글을 2년 전에 처음 작성했을 때에는 논문을 제출할 줄 알았지만, 절대 절대 아니었다. 지금도 논문을 내기까지는 한참 남았다. 아무튼, 나 또한 높은 빈도의 실패와 낮은 빈도의 성공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근데 이게 그닥... 성공했을 때 생각보다는 희열감이 없었다. 실험이 성공했을 때 기쁘기는 했는데 이 기쁨은 시험 문제를 맞았을 때의 느낌이지. 유레카!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나는 새로운 발견의 희열은 크게 느껴보지 못했다. 아직 너무 힘든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험난한 실험과 고통스러운 실패를 겪어봐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걸까? 최근 3 년간 이렇다 할 결과가 안 나오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프로젝트의 돌파구가 뚫리는 순간에 희열을 느낄 수 있으려나? 아니면 이미 희열을 느껴봤지만 그 희열이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친 걸까? 6년 차 대학원생이지만 아직도 발견의 희열을 모르겠다.


내가 학문을 하면서 기쁠 때는 다른 사람들의 과학적 발견을 내가 이해하고 습득할 때이다. 마지막 대학원 수업에서는 아인슈타인 확산 모델을 이해했을 때 무릎을 탁 치고 기뻐했다. 나는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와..! 드디어 내가 이 현상이 왜 이런지 알아냈어!!” 하지 않는다. 나는 연구 결과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다. 아~ 이 현상이 이렇구나~ 재밌네!” 이런 쪽에 더 가깝다. 그래서 굳이 "내가" 연구를 해야 되는지 고민을 자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연구를 해주면 그 연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고생 저 고생 다 해가면서 연구해 봤자 희열감도 별로 없는데. 나는 남들이 잘 차려놓은 연구 결과를 맛있게 소화하고 그 과학적 발견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때 더 행복한데 굳이 내가 연구를 해야 하나...


나를 오프라인에서 몇 번 만나본 사람들은 "나는 호기심이 없다"는 나의 주장에 의아해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을 자주 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대학교 강의를 수강할 때, 수업 끝나고 "질문 있는 사람?"이라는 교수님의 형식적인 강의 끝마침 대사에, 나는 "네, 질문 있습니다."라며 질문을 했던 사람이다. 아마 생명과학부 대학원생 전체를 통틀어서도 세미나에서 질문을 자주 하는 상위 10%에 속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가 질문이 없는 경우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너무 많이 하거나, 그 강의 또는 세미나가 재미가 없어서 내가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뿐이다. 하지만 나는 질문과 답변으로, 과학적 "발견"의 보다는 과학적 "이해"의 기쁨을 얻는다.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지,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아니다. 다른 연구자 분들이 열심히 과학적 발견을 하시면, 나는 그 발견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에 기쁨을 느낀다.




연구에는 끝이 없다.


이 연구가 끝나면 후속 연구가 있고, 다음 질문이 있고, 연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떤 사람의 혈당이 높아져서 당뇨가 발병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혈당 어떻게 내리는지 궁금해서 연구를 했다. 그래서 인슐린을 주입하면 혈당이 내려간다는 걸 밝혔다. 그렇다고 이게 연구의 끝이 아니다. 인슐린을 체내에서 무슨 일을 하길래 혈당을 내리는가? 그럼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이 작동을 안 하는가? 인슐린과 세포의 관계, 인슐린과 분자의 관계, 등등등 하나의 결과를 밝혀내면 그에 대한 수많은 꼬리질문이 이어진다


연구뿐 아니라 모든 프로젝트는 끝없이 지속해야 한다. 음식 장사가 하루 한다고 끝이 아니고.  디자인을 런웨이 한 번 한다고 끝이 아니다. 브런치와 인스타에 업로드하는 이 글도 몇 번 쓰고 끝낼 수 없다. 프로젝트를 지속해야 저명한 요리사. 실력 있는 디자이너.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들을 계속하려면 프로젝트가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가 있어야 열심히 하지. 재미도 없으면 열심히 계속해서 할 수 없다. 절대적으로 재미없는 일이더라도 상대적으로 본인만 재밌으면 된다.


문제는 나에게 재미없는 연구라는 일을 지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런 보람도, 재미도, 논문도, 금전도, 실력향상도, 휴식도, 성장도 없는 일을 계속하는 일은 너무나 고역이다. 교수님은 좋으신 분이기는 하지만, 교수님만 앞서 언급한 보상을 가져가시는 것 같다. (같은 연구실에 속해있기 때문에, 교수님도 연구비 수급과 논문 출간이라는 포인트에는 문제가 있다... ㅋㅋㅋ) 어떻게든 연구에 재미를 느끼는 척 나를 속여서, 연구를 지속하고 싶은 게 내 바람이다.


이렇게 적으니까 내가 굉장히 연구실을 싫어하고 월급만 받아먹고 도망칠 궁리만 하는 반동분자처럼 보이는데.. 절대 니다. 나는 교수님이 도망가지 못하게 매주 미팅하며. 적극적으로 랩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랩미팅과 세미나에서 활발한 질문을 한다. 나는 과학을 좋아하고. 실험도 곧 잘 수행한다. 다만 연구에만 큰 관심이 없을 뿐이다. 연구가 재미없는 와중에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구조적인 이유로, 모든 박사가 모두 독립 연구자가 될 수는 없다. 매년 대학원을 졸업하는 박사의 수보다 새로 구하는 교수/선임연구원의 수가 더 적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뛰어난 박사들이 교수/선임연구원으로 선택되어 연구자로서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 교수/선임연구원으로 임용되지 못하면 연구교수나 포스트닥터 같이 임시로 연구를 이어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이지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다. 물론 대학원 과정 중에서 연구를 좋아하고. 좋은 성과를 내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를 할 수 있다. 스펙이 빵빵해서 다른 박사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앞으로 연구 계속할 수 있다. 대개는 포스트닥터를 하고 있는 중에 Cell, Nature, Science 같은 세계적인 잡지에 논문을 게재해서 교수자리에 임용된다. 그니까 실력 있는 사람들은 교수가 되고. 실력이 없는 사람들은 떨어진다.


쟤는 연구에 실력은 있는데, 흥미가 없어서 교수를 안 한대.

근데 나는 처음부터 교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왜 독립 연구자로 진로를 정하지 않느냐는 물음을 누군가 한다면 "연구는 정말 잘 하지만, 재미가 없어서 안 한대."라는 답변이 내가 원하는 바다. "쟤는 과학을 못해서 교수자리에 떨어졌어." " 쟤는 다니던 연구실을 개판 쳐놓고 나간 놈이야." " 실력이 없어서 연구 못하고 다른 일 하고 있어. " "끈기가 없어서 연구도 못 했는데 저거라고 잘할 수 있을까." " 대학원동안 제대로 실험도 안 했으면서 대학원경험으로 돈 벌고 있네."이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나중에 내가 미디어에 출연하고. 다른 업계로 진로를 틀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실력 없다는 평을 내리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미래에 연구자가 되지 않겠다고 해서. 현재의 일인 연구를 내팽개치지는 않을 것이다. 사과정 동안에는 내가 충분히 실력 있는 연구자임을 증명해야지.





덧 1. 글의 소제목은 ‘가을방학 – 이브나’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따왔다. 이 노래가 발매된 지 14년이나 지났다는 게 새삼 놀랍다.


덧 2. 지도 교수님이 미국에 있는 친구 교수님을 만났다는 얘기를 했다. 한국 교수들과는 연구비를 얻어 낼 만한 연구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니까 지루했는데. 오랜만에 호기심을 기반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이랑 대화를 하니까. 지도교수님은 그렇게나 즐거웠다고 했다. 나는 졸업하고서 지도교수님이랑 즐겁게 대화하기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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