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뇽 Oct 05. 2024

첫사랑을 추억하며

소설 '노트북'을 읽고 (스포가 있을수도..)

나는 이 노트북이라는 소설의 내용을 알고 있다. 영화도 책도 안봤는데 내용을 검색해서 본 적은 있다.

오늘 서점에서 이 책이 보이길래 샀다.


부모님을 잃고, 전쟁을 겪고, 홀로된 채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남자와

보이지 않는 사회적 관습 속에서 살아오며, 그 속에서 좋아하던 남자와 결혼을 앞둔 여자가

어렸을 때의 첫사랑 감정을 잊지 못해 다시 만나 평생을 함께하는 이야기.  

사실 읽으려고 샀지만 읽다보니 자꾸 내 첫사랑이 생각나서 더 이상 못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덮었다.


이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첫사랑은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나 역시 지금껏 나를 변화시킨 모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던 '사랑'이었다.

나의 인생은 내가 했던 사랑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항상 사랑받고 싶었으나, 사랑을 주는 법을 몰라 헤맸다.

웃긴 소리지만..ㅋㅋ 내가 죽으면 묘비명은

"우연히 태어나 평생 후회없이 완벽한 사랑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죽다"라고 하고 싶다...


나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첫사랑을 추억하고, 정리하고,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 더 이상 꺼내고 싶지 않다. 그 자리를 다른 별개의 좋은 것들로 채워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올해 봄과 여름 사이, 현실에 약간 지쳐있던 순간이었다.

우연히 만났고, 그 자리에서 솔직히 첫눈에 반했다. 이유는 별 거 아니었다.

내가 사갔던 막걸리의 성분표를 유심히 보던 모습,

뭐든지 대답을 조금 느리게 하고,

남의 말을 들으면 곰곰이 생각하면서 말하는 모습. 특이하고 멋지고 웃겼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탐색하며 친해졌다.

표현을 하지 않아도 '아 이 사람도 내가 좋구나'라는 걸 당연히 알고 있었고, 쉽게 고백을 하지 않는 모습이 답답해 서운한 티도 냈다. 우리는 총 한 달을 썸만 탔고, 만나는 동안 그 어떤 다정한 말도, 애정표현도, 스킨십도 없었다.

그래도 눈빛이라던가 표정과 말은 나를 너무나 설레게 하고 기대하게 했다.

그 사람은 나 같았고, 내 미래 같았다. 함께 지내면 똑같은 미래를 멋지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번째 만남에서 그 사람은 나에게 사랑해본 적 있냐 물었다.

진짜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진짜 없는 거 같았다.

나는 갑자기 "이게 사랑인 거 같은데?"하고 말하고 웃었다. 그 사람도 조금 뒤에 같이 웃었다.

의심 없이, 정말 이건 첫사랑이 맞았다. 그 사람도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사랑 고백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항상 받으면 줬던 거 같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조금씩 보채기 시작했었다. 장거리라서, 나는 좀 '확신'이 필요했다.

KTX를 매주 타려고 하면, 부모님께 그럴 듯한 변명, 혹은 허락이 필요했다.

(물론 부모님이 나를 옥죄는 분들은 아니나, 난 예전부터 미리 허락 받고, 미리 확인 받으려는 습관이 있었다.)

"왜 아무런 말도 없어? 우리 앞으로 계속 볼 수 있는거야?"

"계속 볼 수는 있지. 당연히. 근데 혹시 너무 좋으면 불안하다는 말 알아?"

"좋은데 왜 불안해.. 나는 답답해.."


세 번째 만남에서 그 사람은 결혼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너는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안 할거야?"

"내가 제일 중요한 건 세 가지인데 일, 남편, 부모야 근데 남편이랑 부모가 사이가 안 좋으면 안 되잖아."

"나는 부모님이 결혼 반대 안 해. 내가 못난 놈이라 그런가 보다"

"내가 세상에서 본 남자 중에 제일 멋있는 사람이야.. 이제 다른 사람 보면 다 별로로 보여 진짜로."

웃으라고 한 말인데 그 사람은 웃지 않았다. 어쨌든 그 날 우리는 사귀기로 하였다.


아주 갑작스럽게 그 사람은 강릉에서 고향의 기혼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온 날, 헤어지자고 했다.

더 이상 너가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나는 좋은 친구로라도 지내자고 했는데 그거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여러 번 붙잡고, 끝까지 붙잡았다. 더 이상 초라할 수는 없을 것 같은 순간까지.

그 사람이 밉지는 않았고, 내가 미웠다. 왜 나는 그 사람에게 확신을 못 줬을까. 더 많이 표현해볼걸 그랬다.

그 사람이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난리를 친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뭘하든 그 사람의 마음을 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의 모습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왜 이렇게 용기가 없어.. 해보지도 않고, 왜 도망가는 거야?'하고 철없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사람은 나보다 더 큰 것들을 보았고, 고민했던 것 같다. 내가 불안함을 드러내고, 사랑을 요구할 때마다 멀리 떨어져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사랑은 그저 생기는 것이지,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을 거다.


그 사람은, 안될 것을 인정하고 후회없는 선택을 해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의 선택도 존중하게 되었다. 역시 나는 그 사람보다 항상 생각이 조금 더 짧다.

이토록 잔인하게 '첫사랑'으로부터 내 인생을 바꿀 힘을 얻었다.

이제 강남 테헤란로에서 그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도 나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결국 재회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잊지 못했고, 두 사람이 함께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이게 참 어려운 일이라 영화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남자는 여자에게 매일매일 편지를 썼고, 여자 강을 건너 남자를 다시 만나러 용기를 냈다.


그 사람이 나를 끊어냈을 때는 계속 만날 용기보다 헤어질 용기가 더 쉬웠기 때문이었을 거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나도 충분히 재회를 위한 용기를 내어 행동했었고, 서서히 지쳐 현재의 상태가 되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만의 개운한 선택을 했고, 나는 나대로 개운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서로에게 후회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잊어야겠다.


--어쨌든.. 끝 The end--

작가의 이전글 커피 설명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