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어게인'을 보고
10주년 기념으로 재개봉한 비긴어게인은 '10년 동안 당신에게 어떤 새로운 시작이 있었던가요?' 하고 묻는 것 같다.
나는 10년 전에, 극장에서 비긴어게인을 누군가와 함께 보았었다. 영화를 보고난 후 한참을 이 영화의 오리지널 앨범에 꽃혀 전체 반복재생을 했던 것 같다. 타이틀 곡보다 좋아했던 노래는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이다.
"Hell, just throw me Maybe if you wanna go home.
Tell me if I'm back on my own, Giving back a heart that's on loan"
나를 떠나가. 만약 네가 집에 가고 싶다면.
나 혼자 돌아가야 한다면 말해줘, 빌려주었던 내 마음을 돌려주고,
나는 너무나 생각이 많기 때문에, 고민하는 시간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너의 감정을 추측하기도 지쳤으니 차라리 집에 가고 싶으면 말해달라는 것이다. 빌려간 내 마음을 돌려만 주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은 불안감을 주니, 그만 멈춰달라는 것이다.
이 노래 가사를 들었을 때 적잖이 충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항상 느끼는 평범한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예술적으로 표현을 했을까? 하는 신기함 때문에.
이렇듯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정확히 모방하며, 모든 감정에는 그에 걸맞는 음악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노래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음악의 힘은 세 가지로 표현된다.
첫 번째, 평범한 순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든다.
서로의 상처에 대해 어루만지던 댄과 그레타는 갑자기 서로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함께 도시의 거리를 쏘다닌다. 그 과정에서 댄은 음악의 힘을 정확한 워딩으로 서술한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평범한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져. 실에 진주알을 끼워 맞추는 것처럼.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진주알로 가는 줄이 길어지는 것 같아"
댄의 말처럼 생각해보면, 내 삶이 느끼는 짐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음악을 듣는 여유라는 것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여유를 가져본다면
비가 오는 와중 우산이 없을 때, 자전거를 탄 풍경의 노래를 들으면 클래식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처럼, 음악은 조금은 답답할 수 있는 상황을 영화처럼 만들기도 한다.
두 번째,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이면서, 과거를 웃음 혹은 눈물로 치유하면서 날려버리는 수단이다.
그레타는 바람핀 남자친구에게 차인 후 장문의 카톡을 남기듯이 'Like a fool' 이라는 노래를 녹음해 보낸다. 이를 듣고 전 남친은 그레타에게 재회를 제안하는데 그 자리에서 "그 노래 미련때문에 보낸거 아니야, 그냥 들으라고 보낸거야" 라고 일순간 차가워진다.
어찌 미련이 없을 수 있을까 싶지만, 그 노래를 녹음할 당시 그레타의 감정은 분명히 미련이 아니었다. 바보같이 사랑했던 자신의 과거를 느끼고, 슬퍼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과거의 본인을 흘려보내주는 행위였다.
그것도 아주 경쾌한 리듬을 붙여 씁쓸하고 단순하게.
반복되는 단어는 "I've loved you, anyway" 즉,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인 것이다.
(반면에, 마지막 장면에서 전 남친은 Lost stars를 그레타의 버전으로 바꾸어 부르며 공연장을 찾아와 준 그레타를 감격에 찬 얼굴로 바라본다.
"나는 지금 너를 붙잡고 싶어. 여전히 나는 니가 필요해"라고 고백을 하는 순간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감격에 찬 그레타가 감정을 못 이긴듯 공연장을 빠져나가는데, 과연 이 때의 감정이 사랑의 재시작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해석은 관객에게 맡기는 것 같다.)
세 번째, 흥을 표현하고, 흥을 나누기 위한 수단이다.
흔히 보는 유투브 플레이리스트 이름은 이런 것이다. '이별 후 듣는 노래', '가을에 듣는 노래', '아침을 깨우는 노래', '드라이브하면서 듣는 노래'
흔히 노래를 두 종류로 나눠봐 하면 슬픈 노래 or 기쁜 노래가 아닐까
노래는 사람을 울리지만 몸을 들썩이게도 한다.
영화 속에서 앨범 완성 후 자축을 위한 파티에서 매우 어려운 게임 하나를 하게되는데 아주 흥겨운 음악을 틀고 어떤 리듬도 타지않고 그대로 멈춰라를 유지하는 룰의 게임이다. 흥겨움을 참지 못하고 한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할 때 모든 사람이 규칙을 잊어버린 마냥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흥겨움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자연스럽게 게임에 질 수 있는 힘, 그것은 음악으로부터 나왔다.
음악의 변천사는 문명의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하는 것인데, 변하지 않는 진리는 우리는 언제나 음악과 함께할 것이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음악은 그 형태를 수시로 바꾸며 우리를 즐겁게, 혹은 슬프게 할 것이라는 거다.
어느 순간 듣는 음악이 아니라,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보는 음악'의 시대가 되었고 대중들은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거나 그 의미를 곱씹는 여유가 많이 사라졌다.
이 영화는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잘못되었다거나, 대중이 반성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대형 레이블 회사가 그레타에게 앨범 제작을 조건으로 'CD 1장 당 1달러'를 제시한 것에 대항하며 온라인사이트에 디지털 음반 1장당 1달러에 판매해버리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이유는 부정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디지털미디어를 음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영리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자본을 역전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지만 전해주는 의미가 크다고 느껴진다. 한번씩 인디밴드가 차트에서 역주행을 한다거나, 독립영화가 메이저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 같은 짜릿함처럼.
변화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통하는 방법은 간단할 수도 있다.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 그리고 약간의 독창성을 가미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레타의 음악이 통했던 이유는 노래도 좋았지만, 도시의 소음을 그대로 담으면서 가수가 표현하는 감정의 현장감을 살리고, 소음 속에서 내면의 적막감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락스타(마룬파이브의 보컬)와 배우들을 고용한 상업 영화 스토리 속에서 '영화 음악'이 마치 상업 음악의 산물로서 진실성이 없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도 아이러니하고 재밌다. 겉포장지는 상업적인데 메세지는 진정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대중적인 미디어를 이용해 부디 '예술의 진정성'을 기억해달라고 외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