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뇽 Oct 04. 2024

커피 설명회

강릉의 커피커퍼박물관 견학기

17세기 영국 커피하우스 벽에는 이런 공고문이 있었다.

"옷차림이 더 세련된 사람이 왔다고 해서 자리를 양보할 필요 없습니다.

싸움을 일으킬 경우 속죄의 뜻으로 모든 손님에게 커피를 한 잔씩 돌려야 합니다.

부적절한 입으로 나랏일은 논하거나, 연애 문제로 감상에 빠져 큰소리로 신세 한탄을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 주십시오.

활발한 대화는 좋으나 타인을 조롱하는 농담을 삼가도록 합시다... (중략)"


커피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단순한 음료, 간식과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커피 한 잔 할래요?"는 "나는 당신이 더 궁금합니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

(장르가 로맨틱이든 아니든...)


시험을 앞두고, 혹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아,, 커피 마실 사람?"은 커피 한 잔 때리고 개같이 열심히 해보자라는 뜻이다.


커피에는 이렇게 문화가 담겨있다.

커피가 가장 처음 '발견'된 것은, 에티오피아의 카파(커피의 어원) 지역에서 양치기 소년이 커피 체리를 먹고 흥분해서 뛰는 양들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의학적으로 커피의 기전은, 뇌의 혈관 수축 작용이다.

사고의 집중도를 향상시키고, 각성시키면서 '머리가 맑아지는'효과이다. 그러나 오래 중독되면 때때로 카페인 부족 시 반동으로 혈관이 이완되어 두통을 유발한다.

'정신차리고'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커피 중독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처음에는 커피가 이슬람의 수도자에게 명상과 기도에 도움이 되는 도구로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슬람 교도들은 음주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커피를 '이슬람의 와인'이라고도 불렀다.


커피가 문화가 되기 시작한 것은, 이후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기 시작해서였을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커피문화인 '커피세레모니'는 총 세잔의 커피를 마시는 방법을 제시한다.

한 잔은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잔은 나의 이야기를 하며, 한 잔은 우리를 축복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70년대까지 유래를 알 수 없는 '노른자 동동 커피'는 알 수 없는 낭만을 선사한다.

어릴 적 연애결혼 하셨던 아빠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삐삐도 없던 시절, 옛날에는 다방에서 맘에 드는 여자와 에프터를 종종했었는데 여자 측에서 불상사가 생겨 제시간에 오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연유를 알수 없는 남자는 답답한 마음에 그 다방에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즉문즉답'이 편한 나는 돌아가면 살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한 일년 정도만 체험해보고 싶다...)


아주 오래 전부터 커피는 '플러팅'이자, '교감'이자, '고백'이자, '청춘을 갈아넣는 한 장면', '고난의 밤들'을 뜻하는 그 어떤가가 되어왔던 것 같다.


터키식 달이는 커피


가장 오래된 커피 추출 방식인 터키식 커피에서는 커피를 '달인다'라는 표현을 쓴다.

가루를 넣고 물을 넣어 천천히 끓이다가 끓어오르면 꺼내고, 또 끓어오르면 꺼내고를 2-3번 반복한 후 가루가 침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르고, 식힌 후 커피를 마신다.


발란스 : 한 쪽 공간의 진공상태를 이용해 가루는 두고 커피만 빼냄

이 후에는 서구에서 발명되어,

물을 끓이는 진공 글라스와 가루를 넣는 글라스 두개가 하나의 관으로 이어진 '발란스'라는 기계로 진화하기도 한다. 생긴 것은 마치 산업혁명의 산물, 증기기관차처럼 생겼다.

진공 글라스에 물이 끓으면 수증기 때문에 물이 밀려나 다른 글라스로 가게되고, 그 곳에서 가루와 물이 섞인다.

어느 정도의 온도에서 자동으로 불이 꺼지면, 다시 물만 진공 글라스로 딸려들어와 가루와 분리가 된다.


가장 최근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발전되었다.

단기간에 적은 양의 물로 가장 깊숙한 커피콩의 풍미와 오일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기술 집약적인 이 머신은 현대인에게 가장 맞는 물건인지 모른다.

우리는 보통 아침 시간이 없고, 카페에는 늘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조금 아쉬운건 맛과 방식이 획일화되어 커피 내리는 사람의 재량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20살때부터 커피를 줄곧 마셨다. 아마도 거의 매일.

처음에는 달달한 커피(아바라, 모카)만 주로 마셨고, 나중에는 달달한 커피가 느끼하게 느껴져 아메리카노만 먹는다.

왜 자꾸 커피를 마실까 하면,

입 맛과 머리를 개운하게 만드는 그 중독성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것을 끊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성적인 위장장애가 있고, 최근에는 약 한 달간 불면증에 시달렸었는데도 커피는 놓지 못헀다.

주로, 이슬람의 수도승처럼 명상을 하거나 무언가에 집중해 글을 읽거나 쓰고 싶을 때 옆에 항상 커피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커피는 잘 마시지 않는다.

대화를 나와 상대방의 본심을 조금씩 교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땐 커피보다 술이 더 어울렸던 것 같다. (?? 에효...)


조금 F스러운 생각이지만, 꿈이 하나 생겼다.

내가 천천히 달인 커피를 나누며, 사색을 나눌 친구를 많이 만드는 것.

그들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 함께 찾아가며 매일을 살아가고, 진심으로 우리를 축복하는 것.

근데 다들 살기 바빠서 어려울 것 같긴 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질문지능 - 아이작 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