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30. vs 롯데 자이언츠
2014년 2월, 훈련소를 벗어나 부대에 전입한 나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강원도 양양군에는 눈이 내 키보다 높이 쌓이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14일 연속으로 눈이 내릴 수도 있다는 것. 나중에 알았지만 해당 지역에 108년만의 폭설이 내린거지 딱히 군대라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니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눈을 치우고 저녁에 부대에 복귀했다. 정비 시간에 정좌 자세로 앉아 있으면 선임들은 LOL 중계 방송이나 MV를 시청하였다. 나는 흘끔흘끔 티비를 봤지만 영 흥미가 없는 콘텐츠들이었다. 나는 강제력에 의해 부대에 입대하게 됐는데 내 문화 생활은 누가 책임져주는가?
이때는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야구 암흑기였다. 20명이 사용하는 생활관에 야구를 시청하는 선임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야구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인터넷은 선임들의 눈치로 사용하기 썩 쉽지 않았고, 나 역시 부대 생활에 집중하기에 바빴다. 그래도 내년 야구가 개막할 때에는 선임들이 대거 전역하기에 생활관 티비를 어느정도 점유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품었다. 그러고서 매일 선임들을 따라 풋살장에 끌려갔다.
돌이켜보면 다행인 것이 2014년의 한화이글스는 여전히 썩 야구를 잘하지 못했다. 하마터면 3년 뒤에나 생길 습관성 두통이 이 때부터 자리 잡을 뻔했다. 이 당시 국가대표 테이블세터진이라 불리는 이용규와 정근우를 영입했던 것이 근래 드문 빅 뉴스였는데, 한화에 이전에 없던 새로운 스피릿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한화는 전통적으로 외부 FA 영입을 잘 하지 않던 팀이었기에 이러한 통 큰 투자가 팬의 기대치를 높이게 하였다.
하지만 띄엄띄엄한 기억으로는 이용규는 어깨 부상으로 지명타자로 겨우 출장하였고, 팀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수비 난조와 답없는 투수진으로는 실점을 억제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기대치가 100이었다면 20정도만 충족했던 시즌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신인 이태양이 센세이션한 활약을 했는데, 신인 투수가 이렇게 한 시즌 내내 활약 하는건 류현진 이후로 처음이었으므로 성과가 아예 없다 하긴 어렵겠다.
그러니까 이 당시의 시간은 내게 있어서 일종의 사회적 실험이었다. 1년간 야구를 금지하고 규칙적인 생활과 정해진 문화 생활만 하도록 할 것. 매일 풋살장에 나갈 것. 인터넷은 가급적 하지 말 것. 난 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받는 23세 청년이었고, 정신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확실히 더 건강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실험은 언젠가 종료되기 마련이고 이후에 나는 요요 효과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