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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drew Dec 24. 2020

드라마 '눈이 부시게' 리뷰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인생은 역사입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볼 때는 단단히 각오해야 합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김혜자라는 한 인간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들여다 봅니다. 그 안에는 즐거움이 있고 사랑이 있었으며, 슬픔이 있고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눈이 부시게'는 12부작이며 3개의 파트로 나눠집니다. 1-2화는 젊은 김혜자의 이야기, 3-10화는 타임 슬립으로 노화되버린 김혜자의 이야기, 다시 11-12화는 과거의 김혜자와 현재의 김혜자가 교차 편집되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김혜자는 아나운서를 꿈꾸고 있지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습니다. 혜자는 이준하의 인생에 간섭을 합니다. 둘의 관계가 진전될 무렵, 김혜자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김혜자는 타임슬립이 가능한 시간 초능력자입니다. 시계 태엽을 백번, 이백번 돌립니다. 아버지를 구하러 계속해서 뛰어가고, 끝내 아버지를 구해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타임 슬립을 하면 나이를 조금씩 먹습니다. 아버지를 구하느라 수없이 타입슬립을 한 김혜자는 하룻밤 사이에 70대 노인이 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김혜자는 방황의 시간을 가지지만 결국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현실에 최선을 다합니다. 노인 홍보관에 매일 출석하며 새로운 인생에 발을 디딥니다. 우연스럽게도, 기자가 된줄 알았던 이준하는 홍보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김혜자는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한편, 홍보관에서는 새로운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고, 김혜자는 홍보관 노인들과 노벤저스를 결성하여 홍보관 지하실의 이준하를 구하는 데 성공합니다.

임무를 완수하고 김혜자는 바다로 갑니다. 그 바다에서 잊혀진 기억과 마주합니다. 그렇습니다. 김혜자는 치매입니다. 1-10화의 내용은 모두 치매인 김혜자의 머릿 속에서 나온 이야기였고, 11-12화에 이야기의 전말이 드러나게 됩니다.


자신의 엄마와 아빠인줄 알았던 이들은 사실은 김혜자의 아들과 며느리였습니다. 이준하는 과거에 자신과 결혼했지만 기자로서 취재를 하다 고문으로 죽었습니다. 김혜자의 아들은 어린 시절 김혜자의 눈 앞에서 자동차에 다리가 깔려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순탄한줄 알았던 김혜자의 인생은 고통뿐이었습니다. 김혜자는 치매의 상황에서 과거 자신이 가장 빛나던 젊은 날로 돌아간 것이었고, 요양원에서의 현재를 젊은 시절의 자신의 모습과 겹쳐 받아들인 것입니다. 김혜자는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평온히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1-10화의 곳곳에는 김혜자가 치매임을 암시하는 복선이 숨어 있습니다. 1화에서 혜자가 좋아하던 대학 선배는 앙골라 내전을 떠납니다. 사실 앙골라 내전은 1970년에 벌어졌습니다. 혜자네 미용실에 자주 방문하는 할머니들은 지나치게 성적 고정관념과 예스런 표현들을 사용합니다. 김혜자가 처음 노화되고 나서 가출하는 장면은 자살을 암시합니다. 치매를 앓는 이들이 초기에 자괴감으로 자살을 시도하곤 합니다.


혜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혜자가 노화된 이후에 지나치게 부자연스럽고, 이전과는 미스매칭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노인이 되었다는 충격과는 연기의 폭이 사뭇 다릅니다. 혜자가 바랐던 이상적인 자신의 아들과의 관계의 모습과, 실제의 혜자와 혜자의 아들의 서먹한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혜자가 수백번이고 타임슬립을 시도했던 것은 그 때 아들을 구하지 못해 응어리졌던 혜자의 한을 표현한 것일 겁니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부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예를 들어 10화에 노벤저스의 터무니없는 활약상도 치매 노인의 상상이었다라고 가정한다면 납득이 됩니다. 혜자가 경찰청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경찰들이 고문하고 지하실에 가둔다고 비판하는 모습도, 혜자의 1970년에 멈춰버린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10화의 많은 부분은 복기하면 정말이지 가슴 아픕니다. 혜자는 치매의 상황 속에서도 준하를 구하러 갑니다. 아마 그 때 경찰청 지하실에  고문 당하던 준하를 구하지 못했던 한이었겠지요.




혜자의 인생은 애틋합니다. 준하를 잃은 혜자는 아들을 강하게 대합니다. 다정함이 사라졌습니다. 분명 잘못된 교육 방법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혜자에게 누구도 함부로 돌을 던지기 어렵습니다.

11-12화에 혜자의 아름다운 청춘이 등장합니다. 비극적인 결말과 대조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아마 누구에게나 인생의 빛나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슬프고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시간에 갇히기 쉽습니다. 거기에는 각자의 사연이 담겨 있고, 무게가 진중합니다.


혜자는 빛나던 청춘에서 남편을 잃고 순식간에 늙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만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혜자는 자신의 아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며느리를 품어줍니다. 치매로 인하여 며느리의 딸로 돌아갔을 때에도 아들이 아닌 며느리의 편을 듭니다. 의족을 사용하는 아들이 다칠까봐 눈오는 아침이면 빗질로 길가를 쓸었습니다.


혜자의 역할을 한지민과 김혜자가 소화합니다. 김혜자는 한지민의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을 잘 소화했습니다. 정말 한지민이 늙는다면 김혜자처럼 될것만 같은 명품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는 명품입니다. 메모장에 적어놓고 힘들 때마다 읽어보곤 합니다.



내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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