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_그래, 일단 한 학기만 다녀보자
딸 아이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두고 버스를 타고 1시간이나 가야 하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예술계 학교에 문외한이었던 저는 예술중학교 생활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주변을 수소문해서 예술중학교의 교육 과정과 대략의 교육비를 알아봤고, 마지막으로 등교 통학버스 신청까지 클리어! 혼자 조급해하며 염려했던 것보다 일이 술술 풀리고 있는데도, 어쩐지 저는 자욱한 새벽안개를 헤치고 초행길을 가는 초보 운전자처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자기암시를 걸고 있었습니다.
서툰 엄마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 아이는 새로운 시작에 마냥 들떠 있었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범생이’인 제가 딸 덕분에 새로운 사회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입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모자라지만 말자’라는 강박에서 유연해지려면 믿는 구석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저를 잡아준 건 난데없는 객기였습니다.
그래, 일단 한 학기만 다녀보자.
예상했던 대로 딸의 사립학교 생활은 새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지역 학군이 아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인지라 등하굣길 학교 앞에 줄지어 선 자동차 행렬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습니다. 저도 그 무리 안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었으면서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듯이 ‘대한민국 열혈 학부모들은 여기 다 모여 있구나’ 싶었습니다.
딸 아이가 체감한 새로움은 아이러니하게도 급식이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안타까운 과거지만, 딸 아이는 예중 입시를 준비하면서 체중 관리를 하느라 배가 부를 때까지 실컷 먹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 후로도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6년간, 배고픔(?)은 딸 아이의 일상이었습니다. 많이 먹지 못해도, 자율 배식에 가깝게 운영되는 질 좋은 급식은 딸이 학교에 가고 싶은 이유였습니다. 쾌적한 학교, 같은 꿈을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친구들… 이 학교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3월을 보내고, 4월부터 본격적으로 예술학교의 전공 교육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술중학교 교육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오전 8시부터 대략 오후 3시까지는 일반 중학교와 똑같이 학과 수업을 진행하고, 오후 4시부터 각각 과별로 전공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용과에는대그룹과 소그룹 수업이 있었는데, 수업 회수나 참여 여부, 수업 변경 등은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실기 연수가 부족했던 딸 아이는 매일 대그룹, 주 3회 소그룹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처음에는 딸 아이의 일과가 예체능을 전공하지 않는 중학생 아이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의 중학생 아이들이 하교 후에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밤이 돼서야 집에 오는 모습은 제 주변에서 흔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적응기를 거쳐 3,4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우리 아이가 고3 때까지 계속 이런 삶을 버텨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딸의 일상에는 학창 시절에 누릴 법한 소소한 낭만이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과 후면 친구들과 삼삼오오로 학교 앞 떡볶이집으로 몰려가 배가 터지도록 군것질을 하고,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시험공부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토해내기 위해 일탈(?)을 감행하던 저의 학창 시절 모습이 비슷하게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보일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침 6시면 일어나 학과 수업을 마치고 4시간의 실기 수업을 받은 후에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숙제 또는 시험공부를 하는 아이의 얼굴에서 점점 활기라고는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트랙을 벗어나지 못하는 작은 토끼가 길이 있으니 그냥 달음박질하는 모습, 딱 그 모습이 제 딸에게서 보였습니다. 한창 클 나이에 먹는 즐거움이라도 누릴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것마저 조절해야 하니 발레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엇 하나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저를 심란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우려는 후에, 맞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저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결단이 필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