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과 그녀
무용을 전공하던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고 나보다 한 살 어린 친구였다. 예능계에서는 국내 최고의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외모와 인성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보였다. 고향이 울산이었던지라 혼자 서울에 상경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주변 다른 동기들과는 다르게 학교 바로 앞에 위치한 오피스텔이 아닌 지하철역으로 몇 정거장 떨어진 원룸형 주택에 지내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동기들은 서울이나 경기권 유명한 예고들을 나왔고 유복하게 자라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 없이 사는 친구들이었다. 심지어 집이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집 앞에 몇 억짜리 전세를 얻어사는 친구들도 많았었다. 하지만 당시 내 여자친구는 그러한 부분에 대한 불만이라던가 부러움을 갖는 성격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 와중에 식당 아르바이트를 나가서 용돈벌이를 하는 친구였다. 심지어 마트에 장을 보러 가더라도 전단지에 붙어있는 할인쿠폰 같은 것을 꼼꼼히 모아서 사용하는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경제소비습관이 있었다. 또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예능을 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못(안)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싫어 방학 중에도 영어학원을 따로 끊어서 다닐 정도의 학구열까지 있었다.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하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이 친구는 이미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를 다니고 있고 그중에서도 최고로 노력하며 나아가고 있는데 내 미래는 어떻지?'.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이 중상위권 대학을 졸업한다고 한들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보장도 없고 취업한다고 한들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그 당시 여자친구 동기들의 남자친구 스펙을 보면 전문직 종사자에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생일에는 해외로 여행을 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간다고 한들 저런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단 한 번도 그 여자친구가 나에게 저런 것들을 요구한 적도 그런 눈치를 준 적도 없지만 이것은 단순히 내 자존감과 불안감에서 비롯한 문제였다. 한 번은 여자친구의 첫 생일날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다. 그 당시 아직 군인신분이었던 나는 수중에 모아둔 돈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전재산을 털어 넣어야 했다. 그렇게 차를 렌트하고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주문제작 케이크를 준비했으며 백화점에서 선물로 원피스를 준비했고 마지막으로는 그랜드하얏트 라운지에서 준비한 모든 선물과 케이크를 오픈하며 마무리를 짓는 계획을 만들었다. 아마 내 평생 준비한 여자친구들의 생일 이벤트 중 가장 정성스러웠던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군 제대 후 복학을 하였고 여자친구는 이미 졸업반이 돼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느 또래커플들이 그렇듯 여자들이 먼저 사회생활에 뛰어들게 되고 그 과정 중에 많은 이별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호텔학교 광고를 보게 되었고 먼 미래를 내다봤을 때 해외유학파 호텔리어가 될 수 있다면 일반적인 한국스펙보다는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았다. 또한 한국이 아닌 외국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 아닌 환상도 생겼던 것 같다. 이 모든 계획의 근원은 '이 여자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 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에서 비롯 됐고 그 당시에는 정말 그게 사랑을 실천하는 내 방식이었던 것 같다. 당장에 유학비가 없었기에 우선 워킹홀리데이로 시작을 해 학비를 모으고 그렇게 입학을 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모든 것들을 여자친구에게 이야기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