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를 닦다가 흰 머리카락 하나가 머리 위로 불쑥 솟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난스럽게 딱 한 개가 돌출해 있어서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거리와 실제는 달랐다. 뻔히 보면서도 손이 다른 곳으로 향하곤 했다. 어림잡으며 손가락의 위치를 정확하게 잡는 것이 마치 반사 신경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몇 번을 헛집은 끝에 마침내 흰 머리카락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일이 쉽게 끝나지 않았다. 잡아당기면 쉽게 뽑힐 줄 알았던 머리카락이 제법 버텼다. 한번 실패하고 나니 힘이 들어간 만큼 머리카락에 굴곡이 생기고 위치가 바뀌어 다시 잡기를 시도해야 했다. 여러 차례 헛손질을 한 후 다시 잡았다가 또 놓쳤고, 그렇게 두세 번을 반복한 끝에 결국 흰 머리카락 하나를 뽑을 수 있었다.
아침에 세수를 할 때 건성으로 거울을 보는 정도로는 머리의 변화를 자세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게으른 나에게 아침은 늘 경황없이 분주한 시간이었다. 돌출한 머리카락 하나를 계기로 오랜만에 살펴본 거울 속 나의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이 제법 내려앉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검게 보이지만 들추어 보면 여기저기 흰 머리카락이 상당히 많이 숨어 있었다. 특히 관자놀이 위 옆머리에 줄 서듯 연이어 있었다. 지나온 시간은 아무 일도 없는 듯 침묵하다가 이처럼 어느 순간 한꺼번에 정산서를 들이민다.
흐른 세월에 걸맞은 현상이어서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확인하는 마음도 순조롭고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예상했지만 섭섭해지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불균형한 마음이다. 그렇다고 불편할 정도로 거부감이 들거나 저항하고 싶은 반감이 형성되는 것까지는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에게 날아온 정산서가 그리 빠르다고 하기는 어렵다. 흰머리에 관한 한 나는 친구나 동료들 사이에서는 거의 맨 뒤의 순번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팥떡에 얼기설기 설탕을 뿌려 놓은 것 같은 형상을 지나, 이미 백발을 향해 가고 있는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그렇다. 물론 열심히 저항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 그들의 머리 색깔은 주기적으로 흰색과 검은색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기억도 시차를 두고 혼색을 하는지 그런 친구의 머리색은 회색이나 갈색으로 떠오르곤 한다.
나의 지금보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흰 머리카락 한 개를 뽑으면 1원을 주기로 상금을 건 적이 있다. 눈에 거슬리는 새치가 아버지의 머리에 등장하기 시작할 때였다. 당시 1원은 최소 화폐단위이지만 그 구매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았다. 호떡이 한 개에 10원이던 시절이었다. 가끔 간식 심부름으로 100원을 가지고 가면 10개에 덤으로 1개를 더해 호떡 11개를 살 수 있었다. 2원이면 쫀드기 한 개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었다. 용돈을 따로 받지 않던 나에게 그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처음부터 아버지가 상금을 건 것은 아니었다. 간혹 아버지가 나를 불러 “여기 보이는 것을 뽑아라.”하시면서 작은 집게를 건네주곤 하셨다. 한번 뽑으려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살펴보면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 말고도 더 많았다. 그래서 한 개는 늘 5개로, 혹은 10개로 불어났다. 흰 머리카락을 잘 가려서 하나씩 뽑아내는 것은 잠깐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귀찮아졌다. 모두 뽑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싫은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아버지가 상금을 건 것이다.
흰 머리카락 외에 아버지가 상금을 걸고 무엇인가를 시키거나 격려를 하시는 일은 없었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 달라고 한 적이 없는 아버지가, 아무리 자식이어도 온전히 자신을 위해 하는 노동에 대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상금의 효력은 작지 않았다. 나는 항상 아버지가 흰 머리카락을 뽑으라고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은 화수분 같은 나의 수입원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머리색이 할아버지처럼 하얗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흰 머리카락은 충분히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율배반적인 희망에 현실은 기가 막히게 부응했다. 색깔은 전체적으로 그렇지 않은데 뽑으려 자세히 보면 의외로 흰 머리카락은 많았다. 용돈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넉넉했다.
처음에는 뽑은 흰 머리카락을 종이 위에 펼쳐놓고 세면서 용돈 계산도 했던 것 같다. 웬만큼 뽑으면 다음에 할 요량으로 남겨 놓기도 했다. 한 번에 용돈을 너무 많이 받을 수는 없으니 적절하게 안배를 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렇지만 유쾌하기만 한 비즈니스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을 안타까워하지는 못할망정 그것이 많을수록 좋다고 따지는 상황이 어린 심정에도 갈팡질팡 복잡했다.
종종 집게로 잘못 잡아 검정 머리카락을 뽑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그만큼만 공제를 해야 하나, 아니면 벌칙으로 몇 배를 깎아야 하나. 소중한 검은 머리카락을 건드렸으니 벌칙을 받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아버지는 관대했지만 이런저런 고민이 수시로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나의 셈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그때그때 정확한 ‘거래’를 요구하지 않았다. 점차 서비스는 서비스로, 용돈은 용돈으로 거래와 교환의 고리가 끊어져 갔다. 몇 번을 모아서 한꺼번에 얼마를 받으니 그냥 가끔 받는 용돈처럼 됐다. 아버지에게는 자식의 도리를 하고 용돈을 덤으로 받으니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부자지간의 ‘거래’는 애초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시기부터인가 아버지의 부름이 점차 줄기 시작했다. 새치 정도에는 아버지도 익숙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뽑아 드리지 않아도 아버지의 머리 색깔은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흰 머리카락이 점점 늘어났지만 호호백발 단계로 진입하지는 않았다.
나의 머리도 공들여 뽑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검은색을 유지하고 있다. 아침에 우연히 발견한 흰 머리카락으로 뒤늦게 숨어 있는 변화를 깨닫게 됐다. 그것은 마치 무슨 신호 같았다.
‘나도 아버지의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겠지.’
쉽지 않았던 흰 머리카락 하나가 나를 아버지의 자리에 앉혔다. 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제대로 상상 한번 해보지 못하고 어찌어찌하다가 하릴없이 아버지가 된 것 같다. 이미 할아버지가 된 친구들도 있으니 이제 아버지를 깨닫는 것은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다.
그들은 진작에 아버지를 자각하고 자연스럽게 할아버지가 된 것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다음에 만나면 하나씩 붙들고 꼭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