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한집사 Nov 11. 2024

기도

1

 해마다 2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이면 부산하게 교실을 쓸고 닦는 업을 지닌 나는 많은 십 대들의 생을 마주하며 함께 울고 웃는다. 나도 경험했던 중고등 6년의 세월 동안 왜 모든 이들은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찌그러진 나이테를 그리는 걸까. 우뚝 선 나무로 자라기 위해 발버둥 치는 묘목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인간에게는 분명 원죄와도 같은 삶의 굴레가 태초부터 주어진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2

 유달리 까맣고 긴 생머리의 그 애를 만난 건 냉기가 채 가시기 전인 3월 둘째 날이었다. 반에서 가장 긴 듯한 찰랑대는 머리칼을 보며 나는 ‘정말 예쁘다.’라는 칭찬을 건넸고,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이의 어머니께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이의 머리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선생님, 사실 아이가 작년에 발병한 혈액 종양 치료로 머리가 빠져 가발을 착용 중이어서요….”

 한참 외모에 관심이 많은 열다섯의 봄에 찾아왔다는 종양이란 비극. 어른도 견디기 힘든 항암 치료를 재발로 인해 두 번이나 견디며 아이는 바싹 말라버렸고, 머리카락조차 잃고 말았다. 그것은 구토나 울렁거림과 같은 부작용보다 아이에게 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처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맞이한 열여섯은 부디 건강하기만 바란다며 어머니는 흐느낌으로 통화를 마무리하셨다.

 1학년 때는 반장을 했을 정도로 활발한 성격이었다는 아이. 자기소개서에 수줍은 글씨로 ‘체육대회가 기대돼요.’라고 적어냈던 그 애는 3월이 결국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발견된 종양으로 인해 교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컴퓨터로 그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들었는지 확인하며 병원 학교의 출석을 확인할 때면 어찌나 마음이 아려오던지……. 그리고 졸업식이 끝나는 날까지 그 아이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졸업장과 앨범은 대신 찾아온 가족의 손에 전달되었다.     


3

 이제는 만 1n년에 이르는 내 교직 인생에서 가장 짧은 기간 대면했던 제자. 열여섯, 그 말갛던 아이가 마지막으로 출석하던 날에 나를 붙들고 ‘선생님, 저 정말 살고 싶어요.’라고 울먹여야 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른들의 질병에는 음주, 흡연, 잘못된 생활 습관 등 어떠한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 소녀에게 죽음을 연상케 하는 덫을 놓는 것은 대체 무슨 연유에서란 말인가?

 신이 무심한 탓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내가 이리 표현하자 기독교를 믿는 지인은 이렇게 고쳐 말하였다.

 “인간의 원죄 때문이야. 하느님께는 다 뜻이 있으셔.”

 그런 걸까. 인류의 조상이 선악과를 따먹었기에 인간은 그 누구를 불문하고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4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평생을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근 십 년 동안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먹어도 재발과 호전을 반복하는 질병을 남들에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는 삶.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게는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으라 말하며 아무렇지 않게 상담에 임하는 멘토가 되곤 했다.

 이런 나 자신의 그림자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나도, 내 가족도, 내 주치의도 여전히 모른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고, 반려해야 하는 무엇이라 여기며, 다스리려 애쓸 뿐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그들이 저질러서 인간에게 주어진 원죄의 업보겠지.     


5

 한 해를 이제 두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11월의 어느 날, 밤하늘에 이제는 몇 개 보이지도 않는 희미한 별빛을 보며 나는 모두의 굴레를 위한 기도를 드린다.


 지금, 이 순간의 고난이 부디 한때의 질곡으로 끝나게 해 주소서―

 부단히 성장하여 누구보다 굵은 나이테를 지닌 나무로 우뚝 서게 하소서―

작가의 이전글 우당탕탕 아줌마의 작가 도전기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