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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Oct 10. 2024

영알못 할머니의 미국 두 달 살기

8. 미국 학교 학부모 설명회

한국 학교들도 마찬가지지만 미국 학교도 학기 초에 학부모설명회를 가진다. 미국에 온 지 한 달 만에 학부모 설명회에 가게 된 며느리는 상당히 긴장했다. 아직은 영어가 수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 남편에게 일찍 퇴근해서 함께 가자고 부탁해 보았지만 회사일 때문에 같이 갈 수 없다고 하니 풀이 죽어서 나를 쳐다본다.


학부모 설명회에 간 아이들


“그래 같이 가줄게. 내가 애들 보고 너는 선생님 만나고 그러면 되지. 나도 학교 구경하고 싶었어.”


동행이 생긴 며느리는 조금 안심이 된 듯 표정이 밝아졌다.


학부모 설명회는 오후 5시 30분부터. 집에서 놀 던 아이들에게 다시 학교에 가자고 하니 왜 학교에 하루에 두 번 가느냐며 항의를 한다. 아직 학교 가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엄마를 도우러 가야 한다니 신나서 따라나서는 녀석들.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강당에 학부모들이 가득하다.


학부모 설명회를 하는 동안 동반한 자녀들은 도서관에서 놀게 하는 모양인데 프리스쿨부터 고학년까지 많은 아이들이 도서관에 함께 들어가다 보니 도서관인지 놀이터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정신이 없다.


도서관에 들어가니 색칠 공부 종이와 크레용을 준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부모와 동반하는 아이들에게 색칠공부와 크레용을 준다. 보통 4색이나 5색인데 음식이 나오는 동안 조용히 하도록 주는 듯하다.

색칠을 하며 엄마를 기다리는 손주들

아이들을 동반해서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는 비행기에서 받은 컬러링북과 크레용이 그렇게 했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잘 쓰고 내릴 때 들고 내려서 학교에 가져가도록 했다. 유치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여행 다녀온 티를 내는 거였다. 아이들 어릴 적에 가끔 가던 패밀리레스토랑에서도 컬러링 북과 색연필을 주었는데 항상 잘 챙겨 와서 닳도록 썼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늘 새 크레용을 받는데 한번 쓴 크레용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궁금하다. 마구 버려지지 싶지만 이것도 잔소리쟁이 한국 할머니의 공연한 걱정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미리 뽑아 둔 색칠공부종이를 나누어 주며 부모를 기다리라고 한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쓰던 크레용을 준다.


비행기를 날리면 안 된다는 등 몇 가지 주의를 주고 다른 통제는 하지 않는다. 학기 초라 낯이 설어서 그런지 처음엔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듯하더니 웬걸 조금 지나니 귀가 아플 정도로 씨끄럽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 보드 게임을 하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다.

할머니와 같이 학교에 간 손주들

하지만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아이들이 색칠용 종이를 더 달라거나 선생님의 컴퓨터나 모니터 화면을 만진다거나 하는 경우에만 반응을 할 뿐 떠드는 것에 대한 지도는 하지 않는다. 귀에 웽웽 소리가 날만큼 씨끄럽자 손주들이 먼저 말한다.


“할머니 너무 씨끄러워.”


“시끄러워서 나가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미국의 교육은 이런 것인가. 안전과 관련되지 않는다면 특별히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것이 자유인가? 어딜 가든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를 말하는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을 향해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제제하는 부모를 보지 못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라도 가면 나와 며느리는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기 바쁘다.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다칠 것 같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 것 같은 행동을 하면 바로 “에이든!!” "클로이!!"하고 소리친다. 한 번에 듣지 않으면 반복해서 날카롭게 이름을 부르며 제제한다.


교실 앞에서

그런데 미국아이들의 이름을 그렇게 고함쳐 부르는 부모를 아직 보지 못했다. 주차장에서 차로 향하고 있는데 뒤에 오던 손주가 내 앞으로 톡 튀어나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순간 자동적으로 “안돼!!”하고 큰 소리를 쳤다. 소리를 치고 보니 손주가 아닌 미국 아이였고 뒤에 그 아이의 아빠가 오히려 놀라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 소리쳤지만 들어오려던 차는 벌써 멈춰있었고 아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가던 길을 갔다.


머쓱한 나는 아이에게 소리쳐 미안하다고 아이의 아빠와 아이에게 사과했다. 우리 손주들은 주차장에서 안전을 많이 강조했다. 큰 차들의 경우 아이를 보지 못해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고 아이들을 단속하지 않으면 운전자들에게도 심하게 비난을 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학부모 설명회에 자녀를 데리고 온다

며느리와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스스로 하도록 지도해야 하는데  '잔소리' '간섭'  혹은 '도와주기' 참기가 쉽지 않다.


학교 점심시간에도 선생님들은 식사를 빨리 끝내라거나 흘리지 말라거나 질서를 지키라거나 하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듯하다.  도시락을 열어보면 싸가지고 간 밥이나 빵이 하나도 줄지 않고 그대로 있는 날이 있는데  선생님이 거의 개입을 하지 않으니 함께 싸 준 초콜릿이나 젤리만 먹고 운동장으로 뛰어 나가는 것 같다. 새벽밥을 해서 열심히 도시락을 싼 엄마와 할미맘은 아프지만 스스로 도시락을 비우는 연습이 되길 바랄 뿐 다른 방법이 없다.


며느리가 큰아이 선생님께 아직 영어가 부족하니 방과 후 공부를 신청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단다.


프리스쿨에 다니는 손녀

그냥 자연스럽게 아이들 사이에서 영어를 익히도록 해도 되고 지금 하고 있는 알파벳 쓰기나 다른 소근육놀이는 오히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잘하니 걱정 말라고 오히려 칭찬을 해 주더란다.


손주들 학교에는 미국인이 아닌 아이들도 많다. 멕시칸도 있고 인도아이들도 있고  중국계나 중동지역 아이들도 보인다. 카자흐스탄 아이들까지 정말 다문화 다국적 아이들이 모여있다. 한국 아이는 우리 손주 둘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그냥 친구일 뿐 인종도 종교도 나라도 없다.


학부모설명회를 다녀오고 나니 말이 안 통해 답답할 손주들의 학교생활이 조금 외로울 것 같아서 안쓰럽기도 하지만 저렇게 많은 나라의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으니 얼마나 귀한 경험일까 싶어 뿌듯하기도 하다.


손주들아, 잠깐은 힘들겠지만 이 시간이 너희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귀한 시간일지 몰라. 모든 나라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모든 나라 친구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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