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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Oct 31. 2024

영알못 할머니의 미국 두 달 살기

13.망자의 날 축제(Dia de los Muertos Festival)

유럽 패션을 따라한 멕시코 상류층 여성을 풍자한 카트리나분장

미국의 핼러윈만큼이나 유명한 멕시코에 축제일이 있다면 당연히 ‘죽은 자의 날(Día de los Muertos) 일 것이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코코'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알려진 축제이고 ‘코코'의 팬인 나 역시 너무나도 보고 싶고 궁금한 축제였다. 핼로윈을 며칠 앞둔 날. 이것저것 장바구니를 채우던 중 판매대 위에 올려진 독특한 장식품에 눈길이 사로 잡혔다.


 핼러윈 관련 상품인가 했지만 자세히 보니 ‘코코'에서 보았던 메리골드의 꽃장식과 카트리나 얼굴이 그려진 칼라베라(설탕 해골장식), 머리에 쓰는 화관등 ‘죽은 자의 날’을 위한 상품들이었다. 미국에서는 핼러윈뿐만 아니라 ‘죽은 자의 날'도 기념하는 모양인지 호기심에 검색해 보니 시애틀센터에서 ‘죽은 자의 날'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다. 심지어 모든 행사와 공연이 무료란다. 너무 기대가 되고 신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


화려한 오프렌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죽은 자의 날( Día de los Muertos)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훨씬 이전인 아즈택문명 때 시작되었다. 이후 아즈택인들의 조상숭배의식이 종교와 섞이고 시대의 흐름을 거치며 지금의 흥겹고 아름다운 축제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 축제가 열리는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멕시코 전역이 흥겨운 축제의 물결로 넘쳐난다고 한다.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수많은 외국인들이 멕시코로 향한다는데 시애틀에서도 ‘죽은 자의 날' 축제를 즐길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아름다운 댄스팀

축제가 열린 10월 27일 시애틀센터 아모리시어터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죽은 자의 날' 장식들과 흥겨운 멕시코 음악과 향기 그리고 소울로 가득 차 있었다. 슬프고도 흥겨운 란체라(멕시코 전통음악)에 맞추어 격정적인 춤사위를 보여주는 사람들. 열정적인 기타 반주에 맞춘 마리아치의 애절한 가락들. 그들의 몸짓과 노래에는 뭔가 모를 한과 열정이 녹아있다. 제국주의의 긴 침략과 핍박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지켜낸 멕시칸들의 역사와 영혼이 담겨있는 춤과 노래여서일까 마치 우리네 남도소리처럼 애를 끊는 듯한 절절함이 전해진다.  

 

마리아치의 애절한 가락에 취해 광장을 둘러보니 아름답게 장식된 오프랜다(우리의 제사상과 제사 차림과 유사한)가 ‘코코'에서 보았던 그 모양으로 손님을 맞는다. 누군가의 조상일 망자들의 사진과 그 사이사이를 채운 황금색 금잔화, 멕시코의 상징인 옥수수, 각종 과일과 꽃, 빵, 다양한 모양의 설탕 해골장식과 화려한 색종이 가랜드(파펠 피카토)들. 살아있는 나의 눈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돌아가신 조상님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파펠피카토가 바람에 흔들리니 금잔화로 만든 무지개다리를 건너 이승으로 넘어오는 멕시칸 조상님들의 모습이 ‘코코'의 한 장면처럼 눈 앞에 그려진다.


카트리나로 분장 중

마치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인 기분으로 오프랜다를 지나니 가판대에 진열된 아름다운 색감의 기념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열한 원색의 대비가 멕시코인들의 열정을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혹하지만 대부분 해골 모양을 하고 있어 집에 들여놓기는 조금 꺼려지는 터에 내가 사랑하는 화가 프리다칼로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프린팅 된 스카프가 운명처럼 눈앞에 펼쳐있다. 그녀의 강렬한 눈빛이 나를 사로잡는다. 어쩌랴 당연히 사야지. 가격도 저렴해서 20불.


스카프를 사고 돌아보니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해골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행사를 진행하는 스테프나 연기자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페이스페인팅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궁금해하니 2층에서 무료로 페이스페인팅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 늘어선 사람들 뒤로 줄을 섰다. 한국 놀이공원 등에서 아이들에게 해주는 간단한 페인팅이 아니고 진짜 멕시칸들이 하는 것과 같은 완벽한 ‘카트리나’(죽은 자의 날을 상징하는 해골여성)로의 변신을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무섭고 아름다운 카트리나 분장

얼굴전체를 분장하는데 20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림 그리는 손길은 익숙하고 여유로웠다. 축제가 이틀간이었으니 이틀 동안 수많은 얼굴을 마주했을 것이다. 짧은 인사를 나누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에도 ‘죽은 자의 날'과 같은 기념일이 있냐고 묻는다. 한국에도 제사를 지내니 ‘죽은 자의 날’과 같은 날이 있는 셈이다. 다만 우리는 멕시코의 그것처럼 즐겁고 기쁘고 흥겨운 날이 아닌 숙연하고 차분하게 지내는 행사라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것이다.  


그녀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거치니 아름다운 카트리나가 되었다. 하지만 나를 본 손녀딸은 무섭다며 할머니를 피해 달아나버린다.

Huehca 댄스 팀

‘망자의 날'의 피날레로 멕시칸 전통 음악과 춤 공연이었다. 잊혀가는 아즈택 원주민의 문화와 예술을 발굴, 전승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팀 huehca omeyocan의 열정적인 아즈택 전통 공연은 관객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아서 무대와 관객이 하나 되는 경험을 선사했다. 이렇게 아름답고도 역동적인 사람들의 나라가 바로 멕시코였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연에 대한 경외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넘어서 영혼의 세계까지 하나 됨을 이루는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 ‘코코'와 ‘프리다칼로' 뿐이었던 멕시코가 가슴으로 훅 들어온 날이었다.

아즈택 전통춤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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