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의 각방 생활 어언 10년째. 큰 아들이 결혼하면서 빈방이 생겼고 하루 이틀 각방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자연스럽게 아예 안방에 있던 내 침대를 옮겨왔다. 그렇다. 그전까지도 나와 남편은 한 이불 덮는 사이는 아니었다.
여행에서도 트윈베드가 필수다
남편과 나의 딴 이불생활은 신혼 초부터였다. 사실 신혼여행에서도 트윈베드에서 잤으니 결혼 첫날부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원앙금침 고운 이불을 함께 덮고 자려고 했으나(그러려고 결혼했는데) 도무지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이나 나나 누가 건드리거나 자다가 부스럭거리기만 해도 잠이 깨버리는 잠귀 밝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남편이 자면서 내는 콧바람소리조차 태풍소리처럼 크게 들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사랑하면 배우자의 코 고는 소리가 자장가로 들린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그 정도로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나의 어떤 친구는 수면무호흡과 코골이로 양압기까지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녀의 남편은 60이 넘도록 아내의 코골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본인이 코를 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녀가 언제나 남편이 잠든 후에 잠들었다고는 하지만 아내의 코골이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정녕 우리 부부에게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 진정한 궁합의 힘이 아닌가 싶다.
암튼 코골이, 숨소리, 부스럭거림을 참아낼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신혼부터 그렇게 다른 이불을 덮고 자게 되었고 얼마지 않아 신혼 때 쓰던 커다란 침대를 버리고 대신 슈퍼싱글 침대 두 개를 들여놓았다. 마치 비즈니스호텔처럼 침대 두 개가 안방을 꽉 채웠지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에게 안방은 잠만 자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부부라도 잠자리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다
그렇게 한 방 두 침대로 어느 정도 우리 부부의 잠자리가 잘 타협이 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갱년기가 찾아왔다. 나의 갱년기는 ‘불’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이마와 목으로 땀이 흘렀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커다란 연탄불 하나가 등에서 활활 타고 있는 듯 뜨거워서 누워있기가 힘들었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도 금방 온몸에 끈적한 땀이 배어 올라왔다.
어쩌다 남편의 손이 몸에 닿기라도 하면 벌에 쏘인 듯 성질을 냈다. 끈적한 내 몸에 그의 손이 닿는 것이 부끄럽고 불쾌했다. 등이 뜨거운 증세 때문에 겨울에도 창문을 살짝 열고 찬바람을 맞아야 잠이 들곤 했는데 남편은 엄동설한에 창문을 연다며 이불을 돌돌 말고 툴툴거렸다.
그러던 중에 아들이 결혼을 하고 빈방이 생겼으니 서로를 위해서라도 각방이 답이었다. 결혼 30년 만에 각방살이는 생각보다 좋았다. 일단 서로가 잠들기 좋은 온도를 위해 싸울 필요가 없어졌고 30년 만에 남편이나 나나 ‘자기의 방’을 갖게 되니 생각보다 할 것이 많았다. 방이 생기니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방에 자야 한 이불을 덮어야 부부사이가 좋아진다는 말은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 헛소리였다. 공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면 모를까 부부가 다른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은 오히려 여러 면에서 실보다는 득이 많았다. 우리 부부에게는 그랬다.
각방살이를 시작하고부터 9시 이후 퇴근문화도 만들었다. 아내도 퇴근이 필요하다는 것에 남편도 동의했다. 9시 이후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난 후에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서로를 찾지 않기로 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는 것이다.
한 침대에 자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나이를 먹다보니 주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 친구 남편이 돌아가신걸 아침에 알았다더라. 아침에 안 나오길래 들어가 봤더니 돌아가셨더래. 세상에 얼마나 놀랬겠어. 지난밤에 잘 자라고 인사하고 들어간 남편이 그렇게 가셨으니 말이야. 요즘 주변에 그렇게 사별한 부부가 좀 있어. 그래서 나이 들면 다시 한방 써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 우리 나이가 슬슬 그런 걸 걱정해야 할 나이인가 봐.”
충격이었다. 나도 잘 아는 친구의 남편이 밤사이에 돌연사하셨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임종에 친구의 죄책감과 후회는 말로 할 수 없는 정도였다. 한방을 썼다면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남편의 임종을 모른 채 잠을 자고 있었다는 자책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던 모양이다.
최근에도 유명 여배우가 돌아가셨는데 아침에 자녀에게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남편은 뭐 하고 자녀가 발견했냐는 댓글도 있지만 각방을 써온 부부라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런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올 때면 이 참에 한방 쓰기로 돌아갈까 상의를 해 본다. 실제로 며칠 한방에서 잠을 자보기도 했고 자주는 아니지만 여행을 가서 트윈베드로 예약을 못한 경우는 어쩔 수 없이 한침대에서 자기도 했다. 하지만 각방의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버리기는 쉽지 않았고 나와 남편은 당분간은 각방을 유지하기로 했다.
취향이 다른 남편과 내방
서로에게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물론 우리도 언젠가는 한방 쓰는 부부로 돌아가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숙면 후 서로를 맞는 아침이 더욱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