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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Dec 24. 2024

66세 왕언니들의 솔직 대담 섹슈얼라이프

영화 <북클럽>, 노년 여성들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

 <북클럽>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보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당연히 고상하고 우아한 책 읽는 모임의 지루하고도 혹은 따분한 스토리겠거니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스터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은 예사롭지 않았다. 한때 당대의 여신이라 불리던 켄디스버겐, 다이안키튼, 제인폰다, 메리스틴버겐을 한 화면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은 기회라 오로지 아름답게 늙어가는 그녀들을 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플레이를 눌렀다.


20대에 만나 40년째 매달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건전한 모임을 갖는 60대 중반의 여성들. 자칫 지루할 뻔한 스토리는 비비안(제인폰다)이 가지고 온 이달의 책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극적인 반전을 맞는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고목나무가 꽃을 피우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전 세계적으로 1억 권 이상이 판매된(해리포터 1편 1억 2천 권 판매) 영국 작가 E. L. 제임스가 쓴 3부작 소설 시리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BDSM(Bondage·Discipline·Sadism·Masochism의 약자/ 구속·훈육·가학증·피학증 등 네 가지 성적 취향) 담겨있어 여타 로맨스 소설에 비해 파격적이라는 평이지만 1억 권 이상의 판매부수가 말해주듯  세계 중년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엄마포르노’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엄마들의 필독서(?) 반열에 올랐다.  2015년에는 배우 다코타 존슨과 제이미 도넌을 주인공으로 영화의 첫 번째 시리즈가 개봉되기도 했다.  


이렇게 유명하고 화제가 된 소설이라면 ‘모든’ 책을 읽고 토론하는 특히 영화화된 소설은 꼭 읽자는 모임의 취지에 맞게 클럽 필독서로 선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비비안(제인폰다)의 추천에 친구들은 당황해한다.  문학적 가치가 없다든지, 들고 다니기 망하다든지 하는 소소한 이유를 붙이며 거절하는 샤론(캔디스버겐)의 투덜거림은 오히려 귀여움을 자아낸다.

40년 전 젊고 아름다웠던 그녀들

40년째 자유로운 독신을 고집하는 비비안(제인폰다)은 성공한 호텔 CEO다.  이혼 18년 차인 샤론(캔디스버겐)은 엄격, 근엄, 진지한 스타일의 연방법원 판사이며 이상형인 남자와 결혼하고 레스토랑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젊은 시절 꿈을 이룬 캐럴(메리스틴버겐)은 모든 여성들이 꿈꾸는 완벽한 삶의 주인공이다. 1년 전 회계사였던 남편과 사별한 다이앤은 엄마걱정에 노심초사하는 착한 두 딸의 엄마이며 전업주부로 혼자 살기에 열심히 적응하는 중이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1951년 생 66세로 등장하지만 실제 여배우들의 나이는 조금 차이가 있다. 2018년 미국 개봉당시 제인폰다는 81세(1937년생)였고 캔디스버겐과 다이안키튼은 72세(1946년생), 메리스틴버겐은 65세(1953년생)였는데 누구도 그녀들의 극 중 나이인 66세를 의심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녀들은 누가 봐도 나이에 걸맞게 늙은 모습이지만 자신 있고 당당하며 내면의 깊은 아름다움까지 뿜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아키튼. 제인폰다. 캔디스버겐. 메리스틴버겐

이처럼 아름답게 늙어가는 여성들의 독서클럽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소개한 이유에는  ‘죽지도 않았는데 죽은 듯 사는 부류'가 되기 싫다는 비비안의 강렬한 의지가 담겨있다. 이미 '죽은 듯 살고 있는' 많은 노년 관객들에게 던지는  비수 같은 도발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여성들이 개방적이고 대담한 듯 하지만 북클럽에 등장하는 노년의 미국 여성들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겁 많고 부끄럼 많고 남을 의식하고 규율과 관습에 얽매어 자신의 욕구나 바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이 같은 분위기는 경중이 다를 뿐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여성들에게 주입되어 온 암묵적 행동지침이 아니었나 싶다.  


친구들 중 가장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구가 중인 비비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우연히 마주친  애인 아서(돈 존슨)와  40년 만에 기적처럼 다시 사랑이 타오르는 것을 느끼지만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마음과 달리 그를 멀리한다.  지막 사랑이 될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자신을 던지는 도박을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일까.

연방판사인 샤론은 이혼한 남편의 지나친 여성편력에 질려버린 듯 18년간 남자관계를 멀리한 채 오직 일에만 몰두하며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친구들은 그녀를 <아무도 찾지 않는 동굴>이라는 책에 빗대며 소홀히 해왔던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상형인 남자를 만나 결혼 한 캐럴도 노년에 들어가며 부부관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퇴직 후 급격하게 노쇄해버린 듯한 남편의 모습에 실망하지만 자 속앓이를 할 뿐 어쩐지 남편에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결혼기념일에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이어가즘 귀마개를 선물하는 J형 남편과 남편 퇴직기념으로 자선 행사에 커플댄스를 선보이겠다는  F형 아내. 미국이나 한국이나 노년 현실부부의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1년 전 남편과 사별한 다이앤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멋진 남자 미첼(앤디가르시아)과 와 소녀처럼 설레는  데이트를 하게 되지만 그마저도 어린아이 돌보듯 홀로 된 엄마를 돌보려는 두 딸의 지나친 관리(?)때문에 쉽지 않다. 


다이앤과 미첼

평소라면 더 변화할 것이 없이 지루할 뻔했던 그녀들의 삶은 파격적인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3권까지 읽어가며 역동적인 일탈 맞게 된다. 잊고 있던 본능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두려워 피했던 것들에 거침없이 도전해 보는 것이다. 거침없는 66세 언니들의 행보는 ‘섹스 엔 더시티'의 노년판을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쾌하고 씩씩하다.


18년째 본능을 숨기고 살아온 연방법원 판사 샤론의 파격적 행보는 로맨틱하기보다는 웃프다. 아들 또래의 여자와 약혼을 한 전남편을 경멸해 온 그녀는 데이트 앱으로 만난 작고 통통하며 머리마저 벗어진 또래의 남자와 첫 만남에서 원나잇을 경험한다. 원나잇을 마친 그녀의 후련한(?) 표정이라니... 물론 그런 일이 우리의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금단의 틀을 깨는 그녀의 아찔한 일탈이 어쩐지 웃기면서도 슬프고 한없이 응원하게 되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딸에게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멋진 남자(앤디가르시아)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게 된 다이앤은 또 어떤가. 백마 타고 온 왕자님을 꿈꾸는 10대도 아닐진대 하필 남편과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60 중반 여성에게 현직 파일럿이 데이트를 신청한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여행 중인 그녀들

나도 얼마 전 혼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는데 심쿵은커녕 옆자리에 앉은 메너가 영 별로인 초로(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의 아시아인 남성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었던 불쾌한 경험이 있다. 이 남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씨끄럽게 영어로 통화를 하더니 계속 손가방을 뒤적이고 수시로 승무원을 불러대는가 하면 내 자리에 둔 물병과 스낵까지 집어갔다. 무려 비즈니스 석에서 말이다.


 오죽했으면 승무원이 조용히 다가와 나에게 자리 변경을 권할 정도였을까. 솔직히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앤디가르시아급은 아니더라도 멋진 동행자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스몰토크를 준비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현실은 옆자리가 진상만 아니면 땡큐다. 


나의 현실은 이처럼 가혹해도 비슷한 또래의 여성으로 그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에 없다고 상상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현실부부의 모습 그대로인 캐럴부부

거기에 비하면 캐럴의 부부관계는 다분히 현실적이다. 퇴직 후 모든 면에서 급격히 의기소침해진 남편의 모습을 우리는 흔히 만난다. 내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은 적지 않다. 갑자기 집돌이가 된 남편과 예전처럼 잘 지내기 어렵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아이가 생기기 전 신혼 때 몇 년을 빼고는 지난 수십 년 그리 친밀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같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지내야 하다 보니 더욱 많은 갈등이 둘 사이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드물지만 반대인 부부도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일에 몰두하느라 아이들 키우느라, 부모님 모시고 양하느라 서로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 그런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지니 서로의 모습이 보이고 비로소 소중해지며 성숙한 인격체로 제2의 신혼을 맞고 있다는  친구도 있다. 내용이 어떻든 결혼 40년 만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오직 두 사람만의 시간과 공간이 생긴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다.


북클럽 넥스트쳅터

이렇게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노년 여성들의 이야기는 코로나 이후 다시 만나 불현듯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는 <북클럽 넥스트쳅터>로 이어진다. 노년에 접어든 친구들은 어쩌면 함께 여행할 시간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한다.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이번 생은 여기서 끝인 것이다. 그래서 거침이 없다. 오늘이 마지막일 것처럼 산다면  사랑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며 이해하지 못할 것이 무엇일까.


나에게도 25년째 매월 만나 먹고, 기도하고, 수다 떠는 일곱 명의 친구가 있다. 40대 초반에 만나 어느새 60대 중반을 바라보는 친구들이다. 우리가 얼마나 더 같이 여행하고 밥 먹고 수다 떨며 함께 할 수 있을까. 5년? 10년? 생각해 보면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북클럽>은 나에게 내 친구들에게 그리고 모든 노년들에게 너 자신을 더욱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제는 그래도 될 나이가 되었다고 격려한다. 또 그런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으니 무엇도 포기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더욱 즐겁게 본능에 충실하며 살아보라고 말한다.


그러니 노년들이여 우리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내자.

‘카르페디엠’

그리고 메리크리스마스!!!

한 살 더 늙을 2025년을 위해 해피뉴이어!!!

60대 중반을 넘어가는 나의 친구들을 응원하며       2023in B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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