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함만으로 충분한가?
어느 순간부터 ‘느슨한 연대’, ‘느슨한 공동체’라는 표현이 빠르게 퍼지고 유행하기 시작했다. 개인이 자기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무게가 점점 무거워질수록, 사람들은 관계만큼은 가볍기를 바라는 심리가 작용한 것일까. 과거 공동체가 상징하던 끈끈함이나 강한 결속은 이제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피해야 할 요소로 여겨지곤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일면 우리 사회가 만들어 온 ‘공동체’ 경험에 기인한다. 학교, 회사, 군대처럼 사실상 사회의 일부라 불러야할 조직들이 한국에서는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관계보다 규칙과 규율이 우선되는 경험을 강요해왔다. ‘가족’ 역시 예외는 아니다. 경쟁 중심의 사회 구조는 가족을 생존을 위한 재생산의 기지로 만들었고, 구성원은 서로에게 최선을 강요하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 형제는 멀리 있을수록 사이가 좋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회자되는 이유다.
‘느슨하다’는 말은 원래 줄이나 끈이 헐겁게 풀려 있는 상태를 뜻하는 형용사다. 이 단어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묘사하기도 한다. 사전에는 ‘마음이 풀어져 긴장됨이 없다’는 뜻도 함께 실려 있다. 여기서 ‘긴장됨이 없다’는 표현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느슨한 연대’나 ‘느슨한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도 어쩌면 이 ‘긴장 없음’일 것이다. ‘연대’나 ‘공동체’보다는 ‘편안함’과 ‘여유’에 방점이 찍히는 셈이다.
개인에게 가혹할 만큼 많은 짐을 지우는 한국사회의 특징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늘 긴장 속에서 버텨야 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있는 관계와 공간을 원한다. 이미 주어져 선택할 수 없는 가정, 학교, 회사 등의 공동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선택해 들어가는 관계나 모임만큼은 그 ‘느슨함’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터 이 '느슨함'이 너무 많은 가치를 괄호치고 포괄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과거에 공동체라 불리기 어려운 조직들이 공동체로 괄호쳐졌듯이 느슨함이라는 말이 공동체의 모범 모델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느슨함만으로 충분한가?"
느슨함은 유행일까? 아니면 현시대 공동체를 정의하는 언어일까? 비전이나 지향일까?
나는 이에 대답하기를 노력하기 보다는 차라리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단단한-느슨한의 이분법이 아닌 '탄력적 공동체'에 대한 상상을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