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모나에 머무른 지도 벌써 3일째. 아침 햇살이 창문 너머로 따스하게 들어오는 오늘, 현진 씨는 입학시험 준비 때문에 학교에 가야 한다며 일찍 집을 나섰다. 평소에 함께 다니던 동행이 없어서 조금은 허전했지만, 나는 집에서 가만히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나만의 작은 모험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이름난 대형 슈퍼마켓, 엑셀룽가(Esellunga)를 가보기로 했다. 집에서 5분에서 10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도보로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크레모나의 엑셀룽가는 생각보다 더 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넓고 깔끔한 내부, 알록달록 정돈된 과일과 채소, 그리고 향긋한 빵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나에게는 이탈리아를 느낄 수 있는, 묘하게 사람 냄새가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오가며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나에게는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새로운 환경에 긴장도 됐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서툰 이탈리아어였다. 나는 아직 몇 가지 기본적인 인사말과 숫자 정도만 익혔을 뿐이다. 게다가 마트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은 익숙지 않아서 처음부터 약간의 난관이 예상됐다. 장은 봐야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어는 어렵다...
장을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신선한 야채와 과일 코너였다. 바질 잎이 신선하게 빛나고 토마토는 탐스럽게 빨갛게 익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각 물건에 붙은 이름표들이었다. ‘Ciliegia?’, ‘Melanzana?’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구글 번역기를 열어 각 단어를 하나씩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 체리와 가지였구나. 그런데, 가격표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헷갈리게 했다. "킬로그램당 가격이 맞나?" 하는 생각에 나는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Scusi... Quanto costa questo?"
내가 어색하게 질문하자, 직원은 웃으며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그의 빠른 말은 내 귀에 그냥 흘러가 버렸다. 당황한 나는 구글 번역기를 다시 꺼내 보이며, “글로 보여주실 수 있나요?”라고 손짓으로 설명했다. 다행히 그는 이해하고 가격을 써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자신감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이것도 해낼 수 있겠어"
(일주일 뒤)
시간이 지나며 나는 이곳이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장소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빵 코너에서 갓 구운 치아바타의 냄새를 맡으며 빵을 고르고, 치즈 섹션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치즈가 나를 유혹했다. 나는 모짜렐라 치즈와 고르곤졸라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고기를 구매할 때는 조금 더 고생했다. 원하는 부위를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직원에게 고기 진열대를 가리키며 손짓으로 설명했다. 그는 친절히 몇 가지 부위를 추천해 주었고, 나는 구글 번역기로 그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결국 만족스러운 선택을 했다.
장을 모두 보고 계산대에 섰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계산대 직원이 나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지만, 나는 그저 미소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내가 장을 보는 동안 느꼈던 긴장감, 어색함, 그리고 성공의 작은 기쁨이 모두 스쳐 지나갔다.
엑셀룽가는 단순히 쇼핑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작은 창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음식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문화까지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부족한 이탈리아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친절함 덕분에 무사히 장을 볼 수 있었다.
엑셀룽가는 단순한 슈퍼마켓이 아니라 나에게는 또 다른 세상을 탐험하는 시작점이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도 따뜻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