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 끝에 우리는 어제 크레모나에 도착했다. 어제 맛있게 국물까지 드링킹 했던 탓인지, 아침이 되어 서로를 마주한 현진 씨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지금 거울 안 보고 나와도 되는 얼굴인가?” 현진 씨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나도 손으로 퉁퉁 부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사실 나갈 수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정신부터 차려봐요. 밖에 나가면 공기가 우리를 살릴 거예요.”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우리는 숙소의 발코니로 나섰다.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크레모나의 아침 풍경은 천국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맑고 투명한 하늘 아래 새들이 선회하며 지저귀고, 멀리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에 머리도 마음도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매일 아침을 맞으면 영혼도 건강해질 것 같아,” 내가 감탄하며 말하자, 현진 씨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곳에서는 그냥 숨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요.”
오늘은 우리가 머무는 집을 소개해 주신 악기선생님이(*지칭하는 이름이 없어 악기를 팔고 거래를 하는 일도 하시는 분이라 악기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동네 구경을 시켜주시기로 한 날이었다. 그는 이 지역의 숨은 매력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여기서 5년을 사셨다고 한다. 그래서 크레모나에 거주하고 있는 몇몇의 한국 사람들을 알고 있다고 하셨다.
아침 일정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간단히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카푸치노와 브리오쉬. 이탈리아 사람들이 흔히 아침으로 즐긴다는 조합이었다. 갓 구운 브리오쉬는 버터 향이 진하고 속이 부드러워 한 입 먹는 순간 황홀해졌다. “현진 씨, 이때동안 내가 먹은 빵은 빵이 아니었어요,” 내가 감탄하며 속삭이자, 현진 씨도 브리오쉬를 한 입 베어 물며 미소를 지었다. “이건 진짜… 맛있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아침 식사 후 첫 목적지는 크레모나의 자랑인 두오모였다. 높이 솟은 종탑과 화려한 외벽은 한눈에 봐도 웅장했다. 종교를 크게 믿지 않는 나조차 두오모 앞에 서니 마음 깊은 곳에서 묘한 경외감이 솟아났다.
“크레모나의 가장 자랑거리가 이거예요,” 현진 씨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이라더니, 진짜네.”
“내일은 안쪽도 들어가 봐요,” 내가 대답하자, 현진 씨가 눈을 반짝였다. “좋아요, 꼭 들어가 봐요.”
두오모를 뒤로하고 우리는 피아차 가리발디로 향했다. 작은 상점들과 카페가 줄지어 있는 거리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고,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가득했다. 한 골목길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어?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바르게 생긴 한국 사람처럼 생긴 청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원래는 연락드리고 뵙기로 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다니요. 역시 크레모나는 생각보다 좁다니까요! 선생님 잘 지내고 계셨죠?”
청년이 말했다.
“우연이 만나니 더 반갑네요. 저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먼저 연락드리고 소개를 시켜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요. 인사해요 여기는 준빈 씨라고 여기 크레모나의 현악기제작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이탈리아 말도 잘하시고 학교 정보도 받을 수 있으니 친하게 지내봐요." 악기 선생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진이라고 합니다. 한국사람을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반갑네요. 저는 올해 여기 학교 입학하려고 왔어요." 현진 씨가 말했다.
"잘 부탁드려요. 저는 안나라고 해요. 이탈리이가 처음이라 현진 씨랑 같이 왔어요."
수줍게 나는 말했다.
"우리 이번주에 약속 잡아서 만나요! 할 얘기가 많을 거 같으니 다음에 많이 얘기해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준빈 씨는 아쉬운 얼굴로 서둘리 사라졌다. 급한 일정이 있구나 짐작했다.
악기선생님은 동네의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었다. 작은 골목마다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약국, 우체국, 은행 등 당장 생활 할 때 필요한 상점들을 알려 주셨다. 작은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신선한 채소, 크레모나의 특산 치즈, 이탈리아 햄 그리고 와인 한 병까지. 저녁 식사는 음악선생님이 알려주는 레시피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 오늘은 간단히 저녁거리만 사고 집 앞에 대형마트는 다음에 가봐요. 오늘 저녁은 여러분의 손에서 이탈리아가 완성될 겁니다,” 악기선생님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 실패하면 안 되겠네요. 아저씨도 오셔서 같이 드세요,” 내가 초대하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제가 와인 한 병 더 가져오지요.”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거리에서, 우리는 크레모나의 하루를 온전히 느끼며 그렇게 새로운 추억을 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