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모나에서 온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다. 우리에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해주신 악기선생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악기 선생님과 정이 들었는지 돌아가시는 악기 선생님이 가시는 모습을 한참을 보았다. 한국에 가면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선생님은 가셨다.
현진 씨는 요즘 입학 준비가 한창이다. 입학시험까지 앞으로 한 달이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내가 봐도 정말 바빠 보였다. 가끔은 우리 집에서 다른 입학준비생들과 같이 연습을 하고 어느 날은 어느 입학준비생집에서 밤늦게 까지 연습을 하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나는 현진 씨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집안 청소와 그녀를 위해 요리를 해주었다. 오늘은 우리 집에 오전부터 입학준비생들이 모였다. 거실에선 바이올린, 비올라의 선율이 울리고 준비생들의 진지한 연습장면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기분이 갑자기 이상함을 느꼈다. 왜 인지 나만 그들의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소외감이 들고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신나서 연습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내가 만든 파스타를 정신없이 먹고는 다시 연습에 들어갔다.
연습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났다. 오늘은 마트에서 장 볼게 많아서 현진 씨와 같이 장을 보러 갔다.
나: "미안하지만 오늘은 장 볼 게 너무 많아서요 같이 보러 가요."
현진: "무슨 소리예요~안나 씨 덕분에 오늘 점심도 맛나게 먹고 요즘 저 때문에 집안일도 도맡아 하고 있잖아요ㅜㅜ너무 고마워요 안나 씨. 오늘저녁은 제가 쏠 테니 안나 씨 먹고 싶은 거 마음껏 골라요!"
나: "와 감사해요."
요즘 기분이 울적해서 인지 도수가 높은 술이 마시고 싶었다. 아니 그냥 맥주, 와인 가리지 않고 마시고 싶었다. 취하고 싶었다.
저녁은 샐러드와 스테이크 그리고 감자샐러드를 먹고 안주로는 살라미, 치즈, 블루베리, 포테토칩을 준비했다. 현진 씨가 날 위해 거하게 사주셔서 저녁이 풍요로워졌다. 저녁식사를 한 후 현진 씨는 피곤했는지 그대로 침대로 가 잠들었다. 나는 오늘따라 잠도 안 오고 기분이 센티해져서 인지 더 취하고 싶었다. 독한 술을 한잔 두 잔 마시고 나니 시간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끼-익... 뚜벅뚜벅 현진 씨가 조심히 나에게 다가왔다.
현진: "안나 씨 혹시 무슨 일 있어요? 새벽 3시인데 아직도 안 자고 있던 거예요?"
나: "그게..."
나는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렸다.
나: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현진 씨. 술이 많이 취해서 인지, 요즘 부모님이 더 보고 싶어서 인지 솔직히 요즘 너무 우울하네요."
현진: "안나 씨, 지금 술이 많이 취한 게 아니라면 제 얘기를 들어봐요. 지금은 당장 여기서 취업을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여기서 저만 챙겨주며 지내는 건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요. 안나 씨도 이탈리아 까지 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갖지 못한 쉽지 않은 기회를 지금 안나 씨는 가지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안나 씨가 그동안 정말 하고 싶었던 거 생각해 봐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요."
순간 나는 머리가 하얘졌다. 현진 씨의 그 말이 내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정말 이상한 마음이었다. 고맙고, 원망스럽다고 느꼈다. 갑자기 이제와 서라는 기분이 들었다.
나: "결정이 나면 말할게요... 생각해 주어서 감사해요."
분명 감사할 일인데 고마워할 일인데 그 말이 나는 아프고 더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