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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Nov 21. 2024

크레모나 -1

드디어 라면을 먹었다.

현진 씨와 나는 로마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크레모나에 도착했다. 크레모나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작은 음색처럼, 바이올린으로 유명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현진 씨는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사람이라, 이곳에 오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 만큼 그는 도착하자마자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들뜬 얼굴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나 역시 마을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햇살은 따스하게 거리를 감싸고, 오래된 벽돌 건물들이 나지막이 이어진 풍경은 묘하게 아늑하면서도 낭만적이었다. 마을에는 크레모나만의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조용히 바이올린 선율이 배경음악처럼 깔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크레모나의 중심지>




우리는 마을을 천천히 구경하며, 우리가 살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집은 현진 씨가 한국에서 만났던 악기 판매 일을 하시는 분께 소개받은 곳이었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특히 시골인 크레모나에서는 집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들었기에 그분의 도움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분은 우리가 편히 머무를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집은 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시내에서는 도보로 20분, 지하철역에서는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조용한 주택가였다. 이탈리아의 오래된 건물 특유의 매력이 묻어나는 집이었다. 4층이라 올라가는 데는 조금 힘이 들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대신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크레모나의 붉은 지붕들과 멀리 보이는 성당은 이곳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거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실 한쪽에는 주방이 자리 잡고 있었고, 주방 옆으로는 아담한 방 두 개와 화장실이 있었다. 집은 생각보다 아늑하고 따뜻했다. 우리가 머무를 공간이 이렇게 마음에 들 줄은 몰랐다. 현진 씨는 벌써부터 어디에 무엇을 두면 좋을지 상상하며 설레는 듯 보였다.





집 구경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라면 얘기를 꺼냈다. 먼 곳에서 이렇게 새로운 공간에 도착했으니 따끈한 라면 한 그릇이 간절했다. 집을 소개해 주신 분께 라면을 끓여 먹어도 되겠느냐고 여쭤보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작은 주방에서 라면이 끓는 동안 집 안에 퍼지는 고소한 냄새가 너무나 반가웠다. 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자, 현진 씨와 나는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제 과음으로 인해 속이 너무 안 좋았는데 진짜 속이 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집주인 분은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일주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이 집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했다. 보증금은 2000유로, 월세는 420유로. 이탈리아에서, 특히 크레모나처럼 평화롭고 매력적인 도시에서는 매우 괜찮은 가격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 집에 대해 점점 더 만족스러워졌다.
게다가, 이분은 떠나시기 전까지 우리에게 크레모나의 이모저모를 알려주시고, 마을에 사는 다른 한국 사람들을 소개해 주신다고 했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었을 일들이었다. 이분 덕분에 크레모나는 단순히 우리가 사는 공간이 아니라, 특별한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길 잘했다는 내 선택에 확신이 들어 더더욱 기쁘고 설레었다.





현진 씨와 나는 따뜻한 라면 국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우며 서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의 생활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우리의 이야기가 이곳에서 얼마나 따뜻하게 채워질지 기대됐다. 크레모나에서의 첫날밤, 우리 둘의 설렘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도 그 맛이 그리운 고향의 맛이 낫던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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