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추구했던 지혜에 대한 고찰
인류가 살아온 역사에서 '지혜(Wisdom)'라는 개념은 가장 오래된 철학적·윤리적 화두였다. 문명을 막 일구기 시작했던 태고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좋은 삶이란 무엇이며, 그 삶을 가능하게 하는 통찰은 어디서 오는지 깊이 고민했다. 왕이나 사제처럼 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지닌 이들이든, 평범한 백성이든, 더 나은 판단을 하고자 하는 욕망과 불확실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열망은 늘 존재했다. 이러한 지혜의 전통은 서로 다른 문화권, 시대, 그리고 학파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근본적 물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그 지향점은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어도, 불확실성과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 정신의 힘으로서 '지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한결같았다. 오늘날 우리가 맞이한 인공지능 시대는, 바로 그 오래된 지혜의 물음을 가장 절실하게 되살려야 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지혜를 둘러싼 논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풍부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고 강조하며, 무지(無知)의 자각이야말로 참된 지혜의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그의 유명한 선언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I know that I know nothing)"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확신에 찬 독단을 경계하고 끊임없는 탐구를 촉구하는 지혜의 방법론이었다.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를 인식하는 철인(哲人)을 지혜의 구현체로 보았다. 그의 『국가(Republic)』에서 제시한 철인왕(Philosopher King) 개념은, 지혜로운 통치자만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정치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천적 지혜(Φρόνησις, phronesis)라는 개념을 깊이 탐구하였다. 그에게 지혜는 단순한 이론적 지식(episteme)을 넘어서서, 구체적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능력이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한 지혜는 논리와 사유를 통해 도달되는 높은 경지이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윤리적 삶과 공동체의 질서에 직결되는 실천적 힘이었다. 이들은 지혜를 "개인적 행복(eudaimonia)과 공동선 실현을 위한 가장 탁월한 정신적 능력"으로 여겼다.
동양권에서도 지혜는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유가(儒家) 전통에서 공자는 "인(仁)을 실천하고 예(禮)로써 질서를 잡는 것"을 강조하면서, 군자가 지혜를 갖추면 세상에 조화가 깃든다고 역설하였다. 『논어』에서 그는 "지자불혹(知者不惑)"—지혜로운 자는 미혹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지혜를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는 나침반으로 보았다.
맹자나 순자 역시 인간의 본성과 사회 규범을 논하면서, 바른 마음과 올바른 행동을 이끌어내는 통찰을 지혜의 핵심으로 삼았다. 특히 맹자의 "양지(良知)" 개념은, 인간에게 내재된 도덕적 직관이 지혜의 근원이라는 사상으로 발전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통해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혜의 궁극으로 보았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인연으로 얽혀 있다는 공(空)과 연기(緣起)의 이치를 체득하여 중생(衆生) 구제를 실현하는 지혜였다. 이는 개인적 해탈을 넘어서는 자비와 연민의 실천을 포함한다.
도가(道家)에서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원리에 순응하고, 인위적 욕망을 비워내어 자연스러운 '도(道)'에 합치되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고 여겼다. 노자의 "지자불언(知者不言)"—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은 진정한 지혜가 과시나 논쟁이 아닌 겸손한 실천에 있음을 시사한다.
근대 유럽에 이르러, 이성(理性)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사조가 부상하면서 '지혜'보다 '합리적 지식'이나 '과학적 방법'이 더 큰 관심을 끌었다. 과학혁명을 거치며 인류는 우주나 자연현상을 수학·실증적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역설적으로 지혜와 학문의 전통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스피노자나 칸트 같은 철학자들은 여전히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칸트의 "실용적 이성(praktische Vernunft)"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도덕 법칙을 확립하여 지혜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삶의 기술과 통찰"이라는 지혜 개념이 학문 체계의 주류에서 점차 밀려나는 경향을 보였다.
어떤 시대나 학파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혜의 특징들이 있다:
첫째, "지혜는 지식 이상의 것"이라는 인식이다. 지식이 단편적인 사실이나 정보를 뜻한다면, 지혜는 그 지식을 맥락 안에서 통합하고 응용하며, 윤리적·정신적·실천적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현대의 DIKW 피라미드(Data-Information-Knowledge-Wisdom)에서 지혜가 최상위에 위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지혜는 인격적 수양과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혜는 단순한 인지적 능력이 아니라 정서적 조절(emotional regulation), 관점 수용(perspective-taking),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tolerance for uncertainty) 등을 포함하는 복합적 역량이다. 책이나 강의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지혜가 존재하며, 삶을 직접 체험하고 고난을 이겨내며 깨우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사하게 나타난다.
셋째, "지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와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개인이 뛰어난 지식을 가져도, 그것이 사회적·도덕적 선(善)과 연결되지 않으면 '참된 지혜'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생각이 오랜 지혜 전통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특정 학파는 지혜를 '초월적 세계(이데아, 도, 깨달음 등)'를 인식하는 영적인 능력으로 간주하기도 했고, 다른 전통은 '합리적 사유와 대화 속에서 발견되는 실천적 기준'으로 삼았다. 혹은 '내면의 평화와 자족'을 강조하는가 하면, 반대로 '사회 개혁과 정의 실현'을 지혜의 최종 목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혜를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본질적으로는 "인간이 좋고 행복한 삶을 살고, 동시에 공동체를 번영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안을 찾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혜는 단지 자신만을 위한 이익 추구나 세속적 권력과는 달리, 인생의 보편적 가치와 도덕적 측면을 함께 포함한다. 그래서 지혜롭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함께 살피는 시선, 세상 이면을 통찰하는 안목, 자신의 판단이 초래할 결과를 책임지는 용기를 갖추었다는 뜻이 된다.
인류 문명에서 이노베이션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다, 사회는 기존 체계가 뒤흔들릴 정도의 대격변을 경험했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전기화, 인터넷과 같은 혁신들이 그러했지만, 특히 인공지능 이노베이션 플랫폼은 이전과 달리 '지적 능력' 영역까지 깊숙이 파고든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이 예상된다. 이러한 대격변 시기마다 인류가 직면했던 불확실성은 각 시대의 여건에 따라 서로 달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 또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기술이 가져온 새로운 힘'을 인간다움과 공동체적 가치로 조화시키려는 공통된 노력과 갈등이 있었다. 각 대전환 시기별로 어떠한 불확실성이 떠올랐고, 인류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지혜를 추구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고대 인류가 불을 발견해 활용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시급한 불확실성은 생존 그 자체였다. 야생동물의 위협과 자연환경의 험난함 속에서, 불이 가져다준 온기와 조리는 엄청난 이점이 되었지만, 동시에 화재나 화상 등 위험이 뒤따랐다.
최근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불의 통제는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서서 사회적 협력의 혁명을 가져왔다. 불 주위에서 이루어지는 공동 취사와 야간 활동은 언어 발달과 집단 결속을 촉진했으며,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인류 종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사람들은 불을 잘못 다룰 때 생길 대형 재난과, 불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느냐에 따른 권력 불균형을 우려해야 했다. 이때 인류가 선택한 지혜는 "공동체 협력과 규범"을 통해 불을 안전하게 관리·공유하는 방식이었다. 단순히 불씨를 기술적으로 유지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불 사용에 관한 규칙, 화재 예방, 분쟁 방지 등에 관한 '사회적 약속'이 공고해졌고, 이로써 개인의 욕심이 전체를 위협하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었다.
농업혁명 시기로 넘어가면, 정착 생활과 잉여 생산물이 가능해지면서 불확실성의 양상이 크게 변했다. 농사를 통해 비교적 안정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나 병충해, 수해·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지속적인 불안 요인이 되었다. 또한, 인구 증가와 사회 조직의 대형화로 계층 구조가 생겨나면서, 소수 지배층이 권력을 독점할 위험이 커지고 사회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졌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초기 농업 사회에서는 공동 저장고 시스템과 재분배 메커니즘이 발달했다. 터키의 차탈회이크(Çatalhöyük) 유적에서 발견된 공동체 구조는, 농업 잉여물을 개인이 독점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관리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이는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집단적 지혜의 구현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부 사회에서 지배 집단이 농업 지식을 독점하거나 종교적 권위를 활용해 백성을 통제하면서, 불확실성을 오히려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신관들이 달력과 관개 기술을 독점한 것이 그 예다.
산업혁명은 증기기관과 기계화, 대량 생산 체계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경제 성장을 가져왔다. 하지만 불확실성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가파르게 커졌다. 공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도시 인구가 밀집하면서, 농촌 인구가 급격히 이주해 빈민가가 형성되고, 실업·노동 착취·도시 위생 악화 등 복합적 문제가 불거졌다.
19세기 맨체스터의 상황을 기록한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12시간 이상의 노동, 아동 노동, 산업재해 등이 일상화되었고, 도시의 대기 오염과 수질 오염은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을 확산시켰다.
사회는 "기계화의 물결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인간 노동은 완전히 기계에 종속되는가," "하층 계급과 상층 계급의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겠는가" 같은 질문에 직면했다.
여기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지식과 과학"을 통해 더 효율적인 생산과 합리적 조직을 추구하려 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이나 포드의 대량생산 시스템은 이러한 접근의 대표적 사례다. 기술 발전에 열광한 일부 자본가와 계몽사상가들은 "과학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 믿으며, 기계와 제도의 합리성만으로 혼란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실상 노동자의 근로 조건은 열악했고, 아동 노동이나 극단적 빈부 격차라는 사회불안이 만연했다. 이 때문에 등장한 또 다른 흐름은, "사회 개혁과 인권" 측면에서의 지혜였다. 노동조합 운동, 사회주의 사상, 복지 제도의 태동 등은 기계화에 편중된 경제 발전이 초래한 불확실성을 제어하고, 인류가 인간성을 지키며 성장을 지속하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영국의 공장법(Factory Acts) 제정 과정은 이러한 지혜의 구현 사례다. 1833년 공장법은 9세 미만 아동의 공장 노동을 금지하고, 13세 미만 아동의 노동시간을 하루 9시간으로 제한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선 인도주의적 가치를 법제화한 것이었다.
전기가 상용화되면서, 인류는 24시간 가동되는 현대 도시 문명을 열었다. 공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전등과 전자기기를 활용하게 되면서, 전기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운영하느냐가 새로운 불확실성의 핵심이 되었다.
1977년 뉴욕 대정전 사태는 전기 의존도가 높아진 현대 사회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25시간 동안 지속된 정전으로 약탈과 방화가 발생했고, 경제적 손실은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인류는 전력 시스템의 안정성과 보안에 대한 새로운 지혜를 개발해야 했다.
이 시기 인류가 추구한 지혜는 "전기의 안전 법규"나 "도시 인프라 계획"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전기 사용이 가져올 생활방식 변화—야간 생활 문화, 거리 조명, 공장 근무체계 확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이루어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가면, 불확실성은 디지털 공간에서 급증한다. 2024년 현재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는 53억 명을 넘어섰고, 매일 생성되는 데이터량은 2.5퀸틸리언 바이트에 달한다. 지식·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위정보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한 가짜 뉴스 확산이나,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에서 보듯이, 디지털 플랫폼의 파워는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MIT 연구에 따르면, 가짜 뉴스는 진실한 뉴스보다 6배 빠르게 확산되며, 특히 정치적 가짜 뉴스의 경우 그 속도가 더욱 빠르다.
이에 대응해 인류는 개방·공유 정신에 기반을 둔 오픈소스 운동, 디지털 윤리, 개인정보 보호법, 사회운동과 시민단체의 감시와 같은 시도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공공선"을 지키고자 했다. EU의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이나, 위키피디아의 집단지성 모델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노베이션 플랫폼이 도래할 때마다 불확실성은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났고, 인류가 추구한 지혜는 이에 대응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1. 불과 농업혁명 → 생존과 공동체 규범
불확실성: 자연의 위험, 식량 부족, 야생동물 위협, 기후 변동 등
지혜: 협력·규범·의례를 통해 불을 안전하게 공유하고, 농작물 재배를 체계화하여 잉여 생산을 관리.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자 도덕과 종교적 질서를 발전시킴.
2. 산업혁명 → 과학·합리성과 사회개혁의 균형
불확실성: 도시화, 노동 착취, 빈부격차, 대량생산에서 비롯된 환경파괴와 사회 갈등
지혜: 과학기술의 발전에 더해, 노동법·복지·교육 확대 등 윤리·사회제도 혁신을 모색. "지식(기술)"만 강조하면 사회문제가 심해지므로 "인간성·정의"에 기반한 개혁이 요구됨.
3. 전기화·정보화 → 안전성과 공공성의 확보
불확실성: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안전, 정보 과잉, 프라이버시·빅데이터 독점, 가짜뉴스 등
지혜: 디지털 윤리·규범·공유 문화(오픈소스), 공론장 형성, 개인정보 보호 법제화 등을 통해 혼란을 줄이고, 기술을 공공선에 활용.
각 시기의 공통점은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주는 기회와 위협"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협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인류는 협력·규범·윤리·제도적 보완이라는 지혜적 접근을 통해 불확실성을 완화하려 했다.
차이점이라면, 시대가 발전할수록 기술이 더 복잡해지고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혜가 점차 학제적·세계적·복합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농업혁명 시대의 지혜가 주로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면, 정보화 시대의 지혜는 국가와 국제기구, 다국적 기업이 협력해야 하는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 교훈은 유효하다. 불확실성은 과거보다 더 거대하고 상호연결적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능력마저 대체 또는 증폭할 수 있기에, 부·권력·정보 독점이 극단화되거나, 일자리 재편과 사회 분열이 가속화될 위험이 높다. 즉, 어느 시기보다 "윤리·협력·제도의 지혜"가 많이 필요하고, 동시에 "인공지능이 만들 수 있는 긍정적 혁신을 어떻게 최적으로 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창의적 통찰도 요구된다.
근현대 이전 인류가 지혜를 학문과 교육, 철학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는 것은 여러 동서양 문헌과 전통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유럽, 유가나 불가, 도가 전통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어떻게 공동체를 조화롭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학문의 핵심이었다.
중세 유럽의 자유교양 교육(Liberal Arts)은 이러한 전통의 대표적 사례다. 3학과(문법, 수사학, 논리학)와 4과(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로 구성된 7자유교양과는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갖춰야 할 지혜"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특히 신학이 "학문의 여왕(Regina Scientiarum)"으로 불린 것은, 모든 지식이 궁극적으로는 신적 진리와 인간의 구원이라는 지혜의 차원에서 통합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과거제도(科擧制度)는 단순한 암기나 기술 능력이 아니라, 경전에 담긴 지혜를 체득하고 이를 현실 정치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했다. 『대학』에서 말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 → 성의정심(誠意正心) → 수신제가(修身齊家) →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과정은, 개인적 지혜의 완성이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유교적 이상을 보여준다.
지혜란 곧, 단순 지식이나 기술만이 아니라 인격 수양과 도덕적 가치,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통합적으로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인류는 자연현상과 세계를 규명하는 지식(knowledge) 추구에 주력했고, 이것이 물리·화학·생물·의학 등 과학 분야에서 폭발적 발전을 이끌었다.
17세기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은 이러한 전환의 결정적 계기였다. 갈릴레이의 망원경 관측, 뉴턴의 『프린키피아』, 데카르트의 방법론 등은 수학적 정밀성과 실험적 검증을 통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지식이 곧 힘(Knowledge is Power)"이라는 선언은 이 시대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력 증대와 부의 축적, 기계화와 전력 사용, 그리고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르는 전 세계 식민지 확장 등은, "더 많은 지식을 확보한 집단이 더 강력한 권력과 부를 얻는다"는 등식을 굳히게 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기술·산업·군사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 지식·과학·연구를 장려했고, 학교와 대학이 성장하여 과학기술, 실용적 학문을 강조했다. 독일의 훔볼트 대학 모델은 연구 중심 대학의 원형이 되었고, 이는 전 세계 고등교육의 표준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통적 의미의 지혜—개인의 수양과 사회윤리, 궁극적 가치에 대한 통찰—는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다. "왜 살아야 하는가"보다는 "어떻게 더 정확히,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것인가"가 근현대 학문·정책의 주된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근현대의 지식 중심 문화가 가져온 성과는 엄청났다. 과학·산업화 덕분에 인류의 평균수명은 1800년 28세에서 2020년 73세로 늘어났고, 절대빈곤율은 1820년 90%에서 2018년 10% 미만으로 감소했다. 교통·통신·의료의 획기적 발전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기후위기와 전쟁·핵무기, 정보 격차, 감시사회, 경제적 양극화 등이 심각해지면서,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인간적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반성이 커졌다.
2024년 현재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1°C 상승했고, IPCC는 1.5°C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3% 줄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지혜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또한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도 심화되고 있다. UN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37%인 29억 명이 여전히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개발도상국과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의 혜택이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이노베이션 플랫폼은 이 문제를 더 극적으로 보여준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압도적 효율을 내지만, 만약 잘못 설계되거나 악용된다면, 오히려 인간다운 가치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
2025년 글로벌 인공지능(AI) 시장은 약 2,941억 6,000만 달러 규모로 평가되며, 파일럿 단계를 넘어 전사적 규모로 확대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생성형 AI, AI 에이전트, 소규모 언어 모델(SLM) 등이 핵심 트렌드로 부상하며 산업 전반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AI 연관 산업을 포함한 전체 생태계의 경제적 가치는 훨씬 더 방대하다. 2035년까지 AI는 전 세계 경제에 약 14조 달러의 추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기존 경제 성장률을 1.7%p가량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2035년 38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고,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30배 폭증하는 등 AI가 파생시키는 인프라 및 연관 서비스 시장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향후 10년간 AI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지속하여 2030년경에는 1조 8,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더 나아가 2035년에는 인간 지능의 1만 배에 달하는 인공초지능(ASI)의 등장이 예견되는 등 기술적 특이점이 가시화되면서, AI는 단순한 산업 도구를 넘어 인류의 삶과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2035년 AI가 이끈 산업별 총부가가치 예상]
하지만 이와 동시에 AI로 인한 위험도 급증하고 있다.
AI 편향(Bias) 문제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Amazon의 AI 채용 도구가 여성 지원자를 차별한 사례나, 미국 법정에서 사용되는 COMPAS 시스템이 흑인 피고인에게 더 높은 재범 확률을 예측하는 문제 등이 그 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AI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인간의 가치관과 윤리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블랙박스(Black Box)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가장 발전된 대규모 언어모델들조차 그 내부 작동 원리를 완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OpenAI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GPT-4도 33%의 확률로 할루시네이션을 보이며, 이는 이전 모델들보다 오히려 높은 수치다.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위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3년 AI 안전성 서밋에서 350명의 AI 연구자들이 서명한 성명서는 "AI로 인한 인류 멸종 위험을 줄이는 것이 팬데믹이나 핵전쟁과 같은 사회적 규모의 위험과 동등한 우선순위를 가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위험도 보다 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인류사의 다른 이노베이션 플랫폼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들, 인간의 지식적,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게 할 뿐아니라 인간의 지적, 인지적 능력을 월등히 초월하는 것, 그것을 인간이 그것도 개인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위험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구동되는 자율 무기 시스템(Autonomous Weapons System, AWS)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목표를 식별하고, 교전하며,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무기 체계다. 이는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지만, 동시에 인류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가장 큰 위험은 제어 불능(Uncontrollability)의 가능성이다. 정교한 AI 알고리즘이라 할지라도 소프트웨어 결함, 예상치 못한 환경 데이터, 혹은 적의 해킹이나 스푸핑(spoofing, GPS 신호 교란 등)에 의해 아군과 적군, 혹은 군인과 민간인을 오인하여 공격할 수 있다. 한번 오작동이 시작되면, 인간의 개입 속도를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로 확산되어 되돌릴 수 없는 대규모 살상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깜짝 전쟁(Flash War)과 과잉 대응(Over-escalation)의 위험이 존재한다. 수천 개의 드론이 벌떼처럼 군집 비행하며 하나의 목표를 공격하는 ‘드론 스워밍(drone swarming)’ 기술은, 국지적인 분쟁을 단 몇 분 만에 전면전으로 비화시킬 수 있다. 한쪽의 AI 무기가 위협을 감지하고 선제 타격하면, 상대방의 AI 무기 역시 즉각적으로 보복 공격에 나서는 초고속 연쇄 반응이 일어나, 인간 지도자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외교적 해법을 찾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세계 각국은 AI 군비 경쟁(AI-inspired arms race)에 뛰어들고 있다. 시장 가치가 1조 8천억 달러 규모로 예측될 만큼 이 분야의 잠재력은 막대하며, 이는 국가 간의 비밀 개발과 복제,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초자율 무기의 위협은 기존의 ‘지식과 제도’ 중심의 규제만으로는 막기 어렵다. 전통적인 군축 조약이나 전쟁법은 ‘인간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의 책임과 판단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AI 무기는 누가, 언제, 어떤 논리로 공격을 결정했는지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극히 어렵다. 지식만으로는 AI의 복잡한 알고리즘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으며, 제도로는 빠르게 변이하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자율 무기 통제는 기술적 지식을 넘어, 지혜로운 윤리적 프레임워크(ethical framework)와 국경을 초월한 다층적 협력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 없이는 불가능하다.
AI 생성 미디어(synthetic media) 기술의 핵심인 딥페이크(deepfake)는 음성, 얼굴 표정, 신체 동작을 실시간으로 정교하게 위조하여, 현실과 거짓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는 단순히 흥미로운 기술을 넘어, 사회적 신뢰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딥페이크의 위협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정치적 무기화(Weaponized Politics): 선거 기간 동안 특정 후보가 하지 않은 말을 한 것처럼 조작된 영상이 유포된다면, 유권자들의 판단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다. 2024년 미국 대선 기간에 생성된 가짜 영상은 유권자의 77%에게 노출되었으며, 그 여론 조작 능력은 기존의 텍스트 기반 가짜뉴스보다 6배나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 사기(Fraud via Cloned Voices): 기업 CEO의 목소리를 딥페이크 기술로 복제하여 재무 담당자에게 거액의 송금을 지시하는 범죄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한 암호화폐 기업은 이 수법으로 25억 원에 달하는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사생활 침해와 인격 파괴: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체 딥페이크 영상의 96%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얼굴을 합성한 포르노그래피 제작에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흉악한 범죄이지만,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온라인상에서 무한히 복제되어 완전한 삭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위협에 맞서 ‘어떤 정보가 진짜인가’를 가려내는 사실 확인(fact-checking) 지식만으로는 역부족이다. AI가 만들어내는 가짜 정보의 양과 정교함은 인간의 검증 속도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딥페이크 방어는 단순한 정보 검증 기술을 넘어, 사회 구성원 전체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를 강화하고, 나아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집단적 지혜 플랫폼(collective wisdom platform)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AI는 사이버 보안의 지형 또한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방어자가 공격자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었지만, AI는 공격자에게 훨씬 더 강력한 무기를 쥐여주었다.
자동화된 맞춤형 공격: 과거의 피싱(phishing) 메일은 어설픈 문법과 부자연스러운 내용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었지만, 이제 GPT와 같은 언어 모델은 개인의 소셜 미디어 정보까지 분석하여 수백만 건의 완벽하게 맞춤화된 피싱 메일을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다.
새로운 유형의 공격 등장: AI는 데이터셋의 일부 정보만으로 전체 개인정보를 추론해 내는 ‘멤버십 추론 공격(membership inference attack)’과 같은 새로운 해킹 기법을 가능하게 한다. 한 연구에서는 AI가 특정 인물이 특정 단체(예: 정당, 동호회)에 가입했는지 여부를 95%의 정확도로 추론해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격의 대중화: 과거에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해커들만 가능했던 랜섬웨어나 와이퍼(wiper) 악성코드 제작을, 이제는 코딩 지식이 거의 없는 ‘스크립트 키디(script kiddie)’조차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쉽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AI를 활용한 공격은 그 속도와 규모, 정교함 면에서 기존의 방어 체계를 무력화시킨다. 보안 패치를 적용하고 방화벽을 쌓는 전통적인 보안 ‘지식’은, AI가 실시간으로 새로운 공격 코드를 만들어내고 시스템의 제로데이(zero-day) 취약점을 찾아내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사이버 보안은 이제 사후 대응이 아닌, 지혜에 기반한 위협 인텔리전스(threat intelligence)와 국가 및 기업 간의 협력적 방어 거버넌스(collaborative defense)가 필수적인 영역이 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생명공학(biotechnology)은 인류의 질병 치료에 혁명을 가져왔지만, AI와의 결합은 이 기술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와 같은 단백질 구조 예측 AI나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신약을 개발하는 동시에 인류를 위협할 맞춤형 병원체(custom pathogens)를 설계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AI는 특정 인종에게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설계하거나, 기존 백신을 무력화하는 새로운 변이 경로를 찾아내거나,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강력한 독소(toxin)를 합성하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다. 이는 고도의 전문 지식을 가진 생화학자뿐만 아니라, 악의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생화학 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문턱을 극적으로 낮춘다.
이러한 위협 앞에서 감염병의 확산 경로를 예측하는 역학(epidemiology) 지식이나 새로운 항체를 설계하는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는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변이를 시뮬레이션하여 우리의 예측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 안보(biosecurity)는 지식을 넘어, AI 기술의 이중 사용(dual-use) 가능성을 통제하기 위한 국제적 윤리 협정(ethical conventions)과 과학계, 산업계,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집단적 지혜를 통해서만 지켜질 수 있다.
인공지능의 고도화가 인류에게 이전에 없던 장밋빛 기대감을 주는 것 이상으로 이렇듯 현실화된다면 너무나 끔찍한 위험들이 현실로 발생할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지식을 발전으로 통해 인류에게 닥쳤던 문제들을 해결하고 위험요소를 줄여왔던 과거시대에 익숙한 인류에게는 이렇듯 지식의 발전으로 더 이상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과 위험의 등장은 패닉을 불러오기 충분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쩌면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잠재력을 지녔다"라는 점이 해결의 실마리 일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인류 문명의 재편 과정에서 지혜 추구의 필요성을 부각한다고 믿는다. 기술적 접근, 지식적 접근이 아닌 지혜를 기반으로 인류가 추구해 온 인류 보편적 가치와 정의, 그리고 옳음에 대한 추구가 더욱 절실해지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 지혜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공지능은 지식 추구를 최적화하는 도구이지만, 그 지식의 쓰임새, 방향성과 가치판단을 완결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그 인간적 의사결정의 기준이 바로 지혜여야 한다.
최근 연구들은 AI 시대에 필요한 "지혜 2.0(Wisdom 2.0)"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복잡성 관리 능력(Complexity Navigation): 다층적이고 상호연결된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능력
2. 불확실성 수용(Uncertainty Tolerance): 완전한 정보나 확실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3. 윤리적 추론(Ethical Reasoning): 기술적 효율성과 인간적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능력
4. 협력적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집단적 지혜를 구현하는 능력
5. 장기적 사고(Long-term Thinking): 단기적 이익을 넘어 미래 세대와 지구 전체를 고려하는 능력
이는 과거의 지혜 전통이 강조했던 개인적 수양과 공동체적 책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지혜 구현을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기술 습득을 넘어서서, 비판적 사고, 윤리적 추론, 협력적 문제해결 등을 기르는 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핀란드의 현상 기반 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이나 싱가포르의 21세기 역량 프레임워크 등은 이러한 방향의 선구적 사례들이다. 이들 교육 모델은 지식의 암기보다는 복합적 문제 상황에서 다양한 관점을 통합하여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
거버넌스 차원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AI 기술의 발전과 확산이 소수 기업에 의해 주도되는 현재 상황에서, 공공의 이익과 민주적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EU의 AI Act나 미국의 AI Bill of Rights 등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지만, 여전히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 개발 과정 자체에 윤리적 고려와 사회적 참여를 내재화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근현대 이전까지 인류는 지혜를 학문의 가장 높은 목표로 삼았고, 근현대에 이르러 지식 위주의 과학기술 발전이 문명을 도약시켰으나,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에 기반한 가치들이 뒤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었다.
인공지능 시대는 인류에게 지혜를 다시금 최우선 목표로 불러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제기한다. 과거 이노베이션 플랫폼마다 인류가 보여준 협력, 윤리, 제도, 도덕적 성찰, 공공선 추구와 같은 지혜의 흔적을 성찰하면서, 오늘날 이미 시작된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훨씬 더 복합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인간 삶의 근본적 가치와 의미를 재정의해야 한다.
그것이 곧 "지식 추구를 넘어 지혜 추구로의 회귀"이며,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불확실성과 위험, 그리고 거대한 기회를 인간답게 활용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극도로 확장된 이 시대에, 우리는 기계와 데이터를 제어하거나 협력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다움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지혜는 과거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전례 없는 도전에 맞서는 새로운 형태의 지혜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혼탁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나갈 우리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