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28
쓰는 손이 자라면, 마음도 함께 자랍니다.
소근육이 약한 준이와 1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우리는 작은 미션 하나를 정했다. 학교나 학원 숙제는 아니었지만, 두 달 가까운 긴 방학 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정한 목표는 **‘매일 필사’**였다. 손이 작고 악력이 약해 글씨가 자주 삐뚤빼뚤하던 준이에게는 손 운동이자 집중력 훈련이었다. 게다가 좋아하는 책의 문장을 따라 쓰는 동안 내용도 자연스레 스며들 테니, 일석이조의 학습이었다.
하지만 필사라는 게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초등 1학년에게는 얼마나 지루하게 느껴질까. 그래서 나는 필사할 책을 준이가 직접 고르도록 했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 함께 동네 중고서점에 갔다. 칸칸이 꽂힌 책들 사이를 돌아다니던 준이의 눈이 번쩍였다. 김영진 작가의 그림책과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 그 두 권이 준이의 선택이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와 함께 책을 읽었다. 그림을 보며 이야기하고, 장면마다 준이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그 다음은 음독, 소리 내어 읽기였다. 그리고 세 번째부터는 자유롭게 읽도록 했다. 때로는 그림만 바라보고, 또 어떤 날은 묵묵히 글자만 눈으로 따라 읽었다. 책 읽기를 억지로 규칙화시키면 흥미가 떨어질까 봐, 나는 굳이 제재하지 않았다.
방학 초반에는 mama당과 짧은 여행을 다녀왔고, 그 뒤로 아침마다 필사를 시작했다. 아직 띄어쓰기가 서툴러 12칸짜리 공책을 골랐다. 매일 책 한 장 분량을 쓰는 게 목표였다. 첫날은 한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몇 번이나 딴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걸 50일 동안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암담했다. 그래서 계획을 살짝 수정했다. 주말은 쉬고 평일만 필사하기.
일주일쯤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글을 쓰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제 30분이면 충분했다.
손의 힘도 붙고, 지렁이처럼 기어가던 글씨가 조금씩 단단해졌다. 그렇게 준이의 1학년 겨울방학은 필사로 채워졌다.
다른 아이들이 영어, 수학 특강으로 바쁜 시간이었다. 하지만 준이는 느리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필사라는 작은 목표를 꾸준히 지켜냈다. 그 경험은 2학년의 새로운 도전, **‘독서록’과 ‘일기 쓰기’**로 이어졌다. 독서록은 학교 숙제로 매주 두 편씩 제출해야 했다. 반면 일기쓰기는 엄마와의 비밀 과제였다.
언어치료를 받던 시기, 치료 선생님께서 늘 하시던 말이 있다.
“일기를 써보세요. 하루를 돌아보고, 있었던 일을 차근히 말로 정리하는 과정이 아이의 표현력과 화용력을 길러줄 거예요.”
그래서 시작했다. 1학기에는 받아쓰기와 독서록으로 바빴지만, 2학기에 들어서면서 조금의 여유가 생겼기에 가능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준이는 스스로 일기쓰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림까지 그리면 좋겠지만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글만 쓰는 형식으로 했다. 주로 주말, 주 1~2회. 식탁에 나란히 앉아 하루를 이야기하며 글로 옮겼다. 그 과정에서 눈 맞춤의 시간이 많아졌다. 서로의 표정과 감정을 읽으며, 우리는 ‘언어’보다 더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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