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주신 분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을 떠올리며

by Rani Ko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아이였다.


1학년 때는 한글을 깨치느라 바빴고, 2학년 때는 곱셈구구를 외우는 데 온 힘을 쏟던 시기였다. 요즘처럼 선행학습이라는 개념은 없던 때였고, 당시의 나는 현행 진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한 번 배운 것은 쉽게 잊지 않고, 여러 번 곱씹어 끝내 내 것으로 만드는 편이었지만, 그 과정에 시간이 걸리는 아이였다.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러다 국민학교 4학년이 되던 해, 평생의 은사이신 진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세대였다. 선생님은 삼남매를 훌륭히 키워내신 분으로, 은퇴를 앞두고 계셨다. 이미 자식들을 모두 키운 뒤라 마음에 여유가 있었고, 그 여유는 고스란히 반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바라보며,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당시 교실 바닥은 콘크리트였다. 선생님은 매일 직접 대걸레를 빨아 교실을 닦으셨다.
“흙먼지는 결국 너희들 코와 입으로 다 들어가니까, 매일 닦아주는 게 좋아.”
그 말은 생활지도의 말이었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만의 태도이기도 했다.

반에서 특히 산수를 어려워하던 친구가 있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자주 남겨 따로 지도해 주셨다. 지금으로 치면 ‘부진아 지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에는 낙인도, 조급함도 없었다. 기다려주는 어른의 시간이 있었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국민학교 시절 광복을 맞으셨다고 했다. 본인이 온몸으로 살아낸 한국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셨는데, 그 이야기가 얼마나 생생하고 흥미로웠던지 우리는 늘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아침 자습 시간에는 한자도 매일 몇 글자씩 익히게 하셨다. 나는 한글 교육이 강조되던 시기에 자라 한자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4학년 때 배운 그 한자들이 훗날 수능 언어영역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은 이미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에

“우리 어휘의 70퍼센트 이상이 한자어야.”
라고 말씀하시며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대를 앞서가신 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선생님을 평생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선생님은 나라는 사람을, 아이 하나를, 매우 존귀한 존재로 대해주셨다.

너는 뭐든지 잘할 수 있는 아이라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너처럼 특히 책을 좋아하고 글을 잘 쓰는 어린이는 반드시 크게 된다고, 아낌없이 말해주셨다.

그 말들은 칭찬을 넘어, 한 아이의 중심을 세워주는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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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현직 초등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 글쓰기를 통해 또 한 번의 성장을 꿈꿉니다. 교육대학교 졸업 및 동 대학원 수료. 2025 브런치 "작가의 꿈 1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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