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진짜 사우나에 있었던 거 맞아? 목욕탕에 6시간이나 있는다고?"
도저히 믿지 못하겠으니 사실을 말하라고 전 남친이자 현 남편이 채근했다.
목욕탕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특히 사우나에 들어갈 때 따끈, 습한 공기가 묵직하게 몸을 감싸고 안팎의 온도차이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순간이 좋았다.
5분,10분,15분이 지나면 뜨거워진 공기가 타이트하게몸을 죄어옴을 느낀다. 모래시계을 뒤집어 놓고 다시 5분을 죽기 살기로 버틴다.
처음 15분 보다 마지막 5분이 더 견디기 힘들다.
혓바닥 아래까지 뜨겁게 달궈진 공기를 후~후~
뱉어내고 당장 손잡이를 잡아 밖으로 나가려는
손을 허공에 휘둘어 스트레칭을 한다.
왠지 옆 사람보다 먼저 나가면 지는것 같다.
잔뜩 성난 위쪽 공기보다는 아래쪽이 견딜만 해 바닥에앉아서 스트레칭을 해본다. 옆 사람이 더 이상 못견디겠다는 듯이 수건을 휙 들고 기권을 외치면
나는 다시 후~ 하고 길게 숨을 내시고 속으로 60초를 세며 발을 동동거린다.
뜨거운 시간을 인내했으니 차가운 상을 줄 차례.
냉탕에 조심스레 다리부터 집어넣는다. 아차 하는 순간이 지나면 찬 기운에 섣불리 몸을 넣기 어렵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몸에 뜨거운 열기가 가시면 다시 사우나로 간다.
이번에는 온도가 조금 낮은 곳이다.
냉탕에 찬 기운으로 사우나 안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고 완전히 이완된 신체는 하품으로 반응한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졸음이 살살 온다. 졸면서 사우나를하다가 배드에서 한바탕 낮잠도 잔다.
이 행위를 몇번이고 반복한다.
내가 다니던 목욕탕은 찜질방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 탈의실에서 라면, 구운달걀, 식혜를 팔았다. 찜질방에 가지 않더라도 사우나를 하면서 간식을 먹다보면 시간이 쏜갈같이 지나갔다. 휴대폰은 옷장안에 있으니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물론 한번씩 확인하긴 했다.)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자유를 느끼며 한주간의 피로를날려버릴 수 있었다.
임신을 하고부터는 목욕탕을 갈 수 없었고 출산 후에는 더더욱 가기가 힘들어졌다.
간혹 여행지에서 숙소 사우나라도 갈라치면 아이가 넘어질까 붙잡고 있느라 욕탕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애꿎은 사우나만 아쉽고 서운만 마음에 노려 볼 뿐이었다
지난 주말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숙소 목욕탕에 노천 사우나가 있었다. 당연히 가고 싶었지만 아이와 가봤자정신사납고 신경쓰는 것이 힘들어 포기하고 있었다.
집으로 출발하는 당일 이른 아침, "애들은 내가 준비시킬테니 목욕탕에 다녀와. 어제 내가 가보니까 좋더라.
1시간이라도 하고와" 라는 남편 덕에 홀몸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혼자만의 목욕탕이라니..
매표소에서 부터 나는 수증기 냄새, 다들 아는 그 목욕탕 냄새에 들어가기 전부터 심신이 이완됐다.
목욕탕 규모는 작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단정한 느낌을 줬다. 더군다나 사람이 별로 없어 조용한 욕장은 마음에 쏙 들었다.
통창으로 보이는 눈쌓인 산은 얼마나 멋스러운지..
밖은 겨울바람에 눈조차 녹지 않았는데 알몸으로
창문 앞에 서있는 것이 우쭐하기까지 했다.
내게 주어진 1시간이 너무 아쉽지만 알차게 쓰기위해 머리를 굴려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택도 없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나만 신경쓰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것이. 내 몸 하나만 씻으면 된다는 것이.
오랜만에 사우나에 들떠 있다가 이제서야 몇 안되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행지라 그런지 대부분 표정이 좋다.
이번에 알게된 사실인데 신기하게도 가족은 얼굴 뿐 아니라 몸도 닮았다. 얼굴을 보고 모녀지간이구나 하고몸을 보면 종아리가 뻗은 모양, 엉덩이의 곡선 , 젖가슴의 모양새가 닮아있다.
다만 한쪽은 젊고 탄력있는 몸이고, 다른 한쪽은 세월의 무게로 늘어져 있는 몸이다. 저 늘어져 있는 몸도 한때는 옆의 몸처럼 희고 매끈했을텐데..서글픈 생각이 든다.
아이가 좀더 커서 함께 목욕탕에 가면
다른 사람들도 늙은 몸의 나와, 생명 그 자체인 젊은 몸의 아이에게서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겠지.
늙어감이 아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