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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구 Aug 23. 2024

여행이 주는 단순함을 사랑한다.

눈부신 햇빛이 나뭇가지 그늘 사이로 쬐어올 때즈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타이파 빌리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경사 높은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조그마한 가게들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 동네 마트로 보이는 곳에 살 것도 없는데 일부러 들어가 본다던가, 웨이팅이 걸려있는 식당 앞에서 알아보지도 못하는 광둥어로 쓰인 메뉴판을 본다던가, 우연히 발견한 마카오의 미용실은 한국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퍼즐 맞추듯이 찾아보았다.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당과 꽃집, 미용실, 동네 마트가 해외에서는 왜 이리 특별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마트에서 빙그레 딸기맛 우유를 발견한 것도,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김치를 제공해 주신 것도. “아, 저 미용실은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는 곳이구나. 아, 저 꽃집에는 처음 보는 꽃의 종류가 참 많구나.”


나는 고작 20살인데 여전히 세상이 새롭다. 나의 세계는 여태껏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만 국한되었다. 하지만 여행이 별 거 아닌 현지인들의 일상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이런 작은 것에 감사하고 아끼는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만 봐도 나에겐 꿈을 꿀 희망이 있다.

나는 마카오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세나도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조금 있어서 시내로 나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축축한 습기와 툭툭 멈추지 않고 흐르는 땀줄기 때문에 옷깃을 펄럭이며 더위를 가셨다. 마카오에서는 홍콩 달러를 사용할 수 있지만 홍콩에서는 마카오 파타마를 사용할 수 없다. 홍콩 달러의 환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따로 환전하지 않고 홍콩 달러로 6 MOP를 맞춰서 버스 동전 투입구에 넣었다.

세나도 광장은 아마도 마카오에서 가장 유럽 스러운 곳이 아닐까. 도착하자마자 잘 가꾸어진 분수대 안에 거대한 지구본을 중심으로 모여 세차게 뿜어내는 물줄기, 바닥에 깔린 물결무늬 타일 보도, 진한 초록색의 물감으로 덧칠한 듯한 나무, 주변에 둘러싸인 유럽풍의 건물들. 분명 여기가 마카오란 것을 알고 있는데 이러한 풍경이 ‘나’를 끊임없이 유럽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수많은 인파를 뚫고 중국 최초의 교회 건축물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성 바울 성당 유적에 도착했다. 성당을 더욱 가까이서 보기 위해 66개의 계단에 올랐는데, 숨이 차서 신음을 하면서까지 겨우 올라갔다.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포즈를 내고선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방이 계단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아 나는 인상이 좋으신 중국인 분에게 사진을 부탁드렸다. 주머니에서 작은 필름 카메라를 한 손에 쥐고서는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나머지 손가락으로 옷 끝을 잡으며 꼼지락거렸다. 머리칼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뭐가 그리 신났는지 바보같이 가장 순수한 웃음을 띠었다. 들고 있던 휴대폰 사이로 중국인 분의 미소가 멀리서까지 느껴졌다.

주변을 정처 없이 걷다가 발견한 어느 거리. 몇 분 전만 해도 많았던 유럽풍의 건물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아, 마카오는 홍콩과 포르투갈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구나. 좁고 울퉁불퉁한 도로, 빼곡히 에워싸있는 최신식 간판, 한 명도 들어가기 힘들 것 같은 손바닥만 한 상점, 기다란 대나무로 한창 공사 중인 주택, 위태롭게 고정되어 있는 철봉. 이곳에서 잠시 나는 경찰 663이 되어 "California Dream"를 귀가 찢어질 정도로 틀어놓고 신나게 춤을 추며 셰프 샐러드를 만들고 있는 <중경삼림>의 페이를 바라보고 있는 상상을 했다.

나는 근처에 있는 식당 <마카오 너티누리스> 향했다. 현지인 평점도 좋고 마침 내가 있는 곳에서 5분 거리로 가까웠다. 가게 외관은 아담하고 은은한 노란색으로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는데 내부에는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힙한 분위기의 네온사인과 수많은 종류의 술병들이 일렬로 있었고 벽에는 심플하게 글자만 강조되어 있는 디자인 사진이 걸려있었다.


나는 창밖의 풍경이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시그니처 폭립 하프랑 볼로네제 파스타를 주문했다. 바싹 익힌 폭립을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뼈와 살을 분리하려는데 손쉽게 떼어져서 놀랐다. 방금 막 조리해서 나와서 그런지 뜨거웠다. 야들야들한 살의 촉감과 뿌려져 있는 달달한 소스가 잘 스며들어서 계속 먹는데 질리지가 않았다.


볼로네제 파스타는 마카오에서 처음 먹어봤는데 면이 잘 익혀서 쫄깃했고 매콤함의 정도도 간이 딱 맞아 남김없이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휴대폰 카메라로 얼굴을 보니 입가 주변에 폭립 소스가 가득 묻혀 있었다. 나는 휴지 두 장을 뽑아 빡빡 문질러 닦았다. 계산을 다 한 뒤 감사 인사를 드리니 직원분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마지막까지도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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