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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월 Aug 24. 2024

동경

수도를 뜻하기도 하고, 어떠한 것을 동경한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그 단어.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넌 윗 지방에 가서 살 생각 있어?"

나는 대답했다.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근데 부럽긴 해. 부럽다. 이 정도지. 내가 가서 살아야겠다. 이런 의지는 전혀 들지 않아. 왜냐하면 전혀 다른 곳이라고 생각이 들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죽었다 깨어나도 거기서 내 집을 마련해서 가정을 꾸리고 그렇게 살 수 없을 거란 거지. 일자리도 그래. 대학도 똑같아."

나는 덧붙여서 말했다.

"헛된 꿈. 헛된 희망."
"서울은 사람 살 곳이 아니야."

친구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래도 일자리는 거기로 파견될 수도 있지."

"그렇지. 근데 살아야겠다 이 마음은 없어."

친구는 공감한다는 듯이 말했다.

"응, 나도 비슷해. 좀 치열한 듯."

나는 조금 분한 듯이 말했다.

"숨이 붙어 있느니 사는 거지. 뭐, 대충 살아도 숨은 붙어 있잖니. 나는 그게 싫어. 죽고 싶은 건 아니야."

친구도 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러게. 축복 아니냐."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막 살아도 숨이 붙어 있는 건 어쩌면 희망 고문 아닐까."

친구는 우스운 듯이 말한다.

"그런가."

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지만 또 한편으론 어떻게든 살아라. 이런 느낌이야. 사는 것 자체가 강압적이야."

나는 다시 한 번 더 강조했다.

"그렇다고 죽고 싶은 건 아니야."

친구는 고민하듯이 말했다.

"흠,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게 사람마다 주어진 뭔가 있지 않겠어. 이유 없이 태어난 건 없지만."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사명 말하는 거니?"

친구는 무엇인가 감추듯 말했다.

"응, 그렇지."

나는 조금 유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역시 너는 종교를 가지고 있으니 더욱이 그런 생각이 들겠구나."

친구는 "그런가?" 하고 시치미 떼듯이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게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야. 그저..."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무종교로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거니?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 같다거나."

나도 시치미 뚝 떼듯이 말했다.

"뭐, 그렇다고 봐야지."

친구는 "아하" 하고 짧게 감탄한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듯이 그 말을 되풀이했다.

"태어났으니 사는 거고, 숨이 붙어 있으니 사는 거고."

친구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는 이유는 만들어 가는 거야. 동시애 살아가게 되는 이유도 만들어가는 거야. 사명이랄까 소명이랄까 딱히 그런 건 느껴지지 않지만..."

친구는 웃으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말했다.

"그래도 운명은 믿어. 그 운명은 인과응보의 결과이자 자업자득으로 인한 것이니까. 그래서 내 좌우명이 그거잖니. 인과응보, 자업자득."

친구는 내 말을 확인하듯이 말한다.

"응. 운명이 인과응보의 결과구나."

"적어도 난 그리 생각해" 하고 말하니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선택하는 삶인데 그렇지."

나는 이제 그녀의 말과 무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 이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려 1년 전 친구의 대화라니. 당치도 않다. 저런 대화를 나눴구나, 하고 감탄했던 건 임시저장글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게 발단일 뿐. 그러나, 내가 저런 대화를 나눴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친구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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