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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한동산 Nov 16. 2024

3부. 봉칠이 와 종갑이

빨간 대문의 낡은 주택

3부. 봉칠이 와 종갑이



순하고 착한 봉칠이는 어떤 고난의 순간이 와도 삐뚤어지지 않고 평범하기 위해  평범하지 않은 그 자리를 지켜냈다.

어른들은 말했다.

조금 모자란 듯 모른 척하는 게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퇴근길 버스를 내려 집으로 돌아오며 걷는 짧은 10분을 좋아한다. 어김없이 데레사 씨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 뭐 해?"

"그냥.. 멍청~하니 TV 보고 있었지!"

"좋네ㅎㅎ"

"봉칠이 기억나지? 봉칠이 결혼했다.

공장 다니다가 전문대 들어가서 공부도 하고 그랬단다. 잘 자라줘서 얼마다 다행인지"

"우와~~  너무 기특하다. 진짜!".


엄마와의 대화는 늘 잊고 있던 기억으로 나를 소환한다.

사실 봉칠이 소식을 알고 있는 게 더 신기했다.

엄마는 사람들이 잊히지 않게 툭 연락해 안부를 묻는 사람이다. 그 또한 내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문득 사십 살 넘어 엄마라고 부르고 반말하는 게 좀 그런가? 나이들은 내가 나이 많은 엄마에게 여전히 "엄마"라 부르고 반말하는 게 나는 너무 좋다. 그냥 그러고 싶다.


그나저나 엄마 입에서 30년 만에 봉칠이  이야기가 나오다니 놀라웠다. 빨간 대문의 주택에서 태어나고 같이 자란, 나보다 2살 어린 남자아이(지금 나이야 어떻든 내 기억엔 아이니까) 봉칠이 이야기를 들으니 반갑고 잘 커주어서 감사했다.  빨간 대문의 줄줄이 비엔나 단칸방 하나에 살던 봉칠이네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삶이 녹록지 않음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건 그때였다




"봉칠아 안녕"

"안녕"

 

나보다 한 살 적은 봉칠이는 인사를 건네면 늘 수줍게 가슴께로 올린 손을 보일 듯 말 듯 흔들며 작은 목소리로 답인사를 건넸다


"어디가?"

"할머니집에.."


봉칠이 할머니는 동네에서 고물상을 했는데 온 가족이 할머니 고물상에 가서 밥을 먹고 함께 일을 했다.

봉칠이에게는 삼촌이 여럿인데 초등학교 중퇴에 누구 하나 사람구실 하는 사람이 없다고  그나마 봉칠이 아빠가 결혼하고 젤 사람답게 산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항상 덩치 큰  막내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봉칠이 할머니는 키가 크고 말랐지만 단단해 보이는 몸에 허스키한 목소리로 큰 소리를 내며 빨간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너네 엄마는 일하러 갔나? 얼마 번다고 자꾸 싸돌아다니니? 엄마 오면 할머니집으로 오라고 해라. 할 일이 많다."


'마귀할멈 같다.'라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가난한 집에 줄줄이 낳은 아이들에 정상적이지 않은 막내아들을 업고 함께 생존하기 위해 고물을 줍고 아이들에게도 고물을 줍게 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자는 억척스럽고 표독스러운 할머니가 되었다.

그녀의 눈빛과 표정, 손에서 몸 전체에서, 걸음걸이에서 목소리에서 그녀의 삶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전투를 해 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마귀할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현실을!


조금, 아니 많이 모자란 막내 삼촌은 할머니와 살면서

항상 말없이 웃으며 온 동네를 부지런히 돌며 고물을 주웠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야기를 하기로는

저 불쌍한 막내를 노예처럼 부려먹고 온 가족이 고물상에 빌붙어 산다고 했다.

동네 소문이니 남의 가정사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모두가 진실로 여겼다.

멀쩡한 정신을 가진 형들은 혹독한 현실에 정상적이지 않은 난폭하고 비열한 인간들이 되어 맑고 순수한 막내와 엄마한테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봉칠이가 막내삼촌처럼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막내삼촌처럼 바보는 아니지만 너무 순하고 착해서

열심히 일하고 남들 좋은 일 하며 사는 건 아닐까 싶었다.


봉칠이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이름은 종갑이고 그와는 두 살 차이가 났다.


"히야. 히야. 오늘은 할머니집 가지 말자."

"할머니집 가야 밥 먹지~ 배 안 고프나?"

"할머니 싫다. 무섭다. 가면 일 시키고! 그냥 집에서 놀자"

"그래. 집에서 놀자"


둘은 저녁이 다되도록 온 동네를 뛰어놀다 찾으러 온 할머니한테 이끌려 고물상으로 가곤 했지만 대체로 둘이 밤늦도록 시간을 보냈다.


엄마 아빠가 일하러 밤늦게 빨간 대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둘은 서로 의지하며 붙어 지냈다.


어렸을 때는 늘 한결같은 평범함이 싫어 특별한 무언가를 쫓고 꿈꿔왔는데 그 평범함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살면서 신이 내린 축복인지 모른다.


지금은 월드컵경기장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우리가 욱수골짜기라 부르던 계곡이었다.

매년 학교 소풍을 갔고 심심하면 돗자리 들고 수박  한 덩이 들고 시원한 계곡에 수영을 하곤 했다.


봉칠이 아빠는 곧잘 아이들을 데리고 낚시를 갔다. 종갑이와 같은 나이인 내 동생은  봉칠이 종갑이 형제를 따라 함께 낚시를 하곤 했는데 그날은 많은 피라미와 개구리를 잡아와 처음으로 개구리 튀김을 먹은 날이었다.


봉칠이 엄마는 보글보글 끓은 팬에 튀김옷 입은 피라미와 잘린 개구리를 넣어 바삭바삭하게 튀겨내면 옆에 빨간 대문 안  아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날름 집어먹었다.

개구리는 징그럽지만 튀김옷 입은 개구리는 징그럽지 않고 물고기보다 담백하고 맛있었다.


종갑이와 내 동생이 5살, 봉칠이 가 7살, 내가 9살, 언니가 11살이던 빨간 대문의 주택은 평화롭고 웃음이 넘쳤다.


 "봉칠이 히야"하면서 쫓아다니며 봉칠이 옆에서 해맑게 웃던 종갑이가 형을 "야"라고 부르고 아빠를 경멸하기 시작한 것은 종갑이가 6학년이 될 때쯤이었다.


장난기 가득 찬 눈을 가졌던 종갑이는 그 눈에 분노를 가득 실어 아버지를 바라봤다.


술 먹고 들어와 폭력을 휘두르는 봉칠이 아빠 때문에 봉칠이 엄마가 멍들고 입술에 피를 머금고 비명 지르며 집에서 도망쳐  나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빨간 대문 안에서의 큰 소리는 함께 공유되었다.

칠이네 집에서 일어나는 소리는 어린 나에게 충격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소음이었다.


아저씨가 술 마시고 돌아온 저녁에 큰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엄마에게 묻곤 했다.

"엄마, 봉칠이 아빠는 왜 저래? 아줌마처럼 착한 사람한테. 봉칠이랑 종갑이 불쌍해"

"인생이 힘들어서 그렇겠지"하며 대답한다.

남의 집 일에 한없이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버려 두다가도 소리가 커지고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으면 엄마는 문을 열고 나가 봉칠이네  전쟁에 참전하여 중재를 했다.


"봉칠이 아빠! 동네사람 다 듣네! 그만하게! 봉칠이 엄마는 이리 나와서 나랑 얘기 좀 하자.

봉칠이 종갑이 밥 안 먹었지? 아줌마네 가서 밥 먹자."

하면 타인의 말은 잘 듣는 아저씨는 "네, 죄송합니다"하며 꼬리를 내렸다.


"저 사람이 왜 저러나 몰라! 아침에 일어나면 후회할 거면서.. 애들 보며 맘 단단히 먹어!"

 엄마는 봉칠이 엄마 얼굴에 번진 피를 닦고 터진 입술에 연고를 발라주고 봉칠이 와 종갑이는 우리랑 같이 밥을 먹었다.


천천히 꾸역꾸역 밥을 입에 구겨 넣는 봉칠이 와 숟가락도 안 들고 밥을 노려보는 종갑이를 바라보다

종갑이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아줌마는 왜 맞고 살까?

아저씨는 왜 자신을 괴물로 만드는 술을 마실까?


어린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한없이 죄를 짓고 가족들을 살기 힘들게 만드는 아저씨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을 만큼 힘들어 술을 마시고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 바엔 그냥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삶의 생존 의미를 어린 나로서는 찾기가 힘들었다.



아저씨는 다음날도 술을 마셨고 술이 깨면 후회하는 자신이 미워 또 술을 마셨다.


 어느 날 빨간 대문으로 아줌마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남자랑 눈 맞아서 집나 갔다고 동네 아줌마들이 이야기했다.


'잘됐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봉칠이랑 종갑이는 어떡하지?'

나처럼 작은 봉칠이 와 종갑이가 걱정됐지만

종갑이는 엄마가 자신들을 곧 데리러 올 거라고 믿었고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봉칠이는 종갑이 밥을 챙겼다.

"종갑아, 밥 먹어"

"안 먹어. 너나 먹어."

종갑이는 이제 한없이  착하기만 한 형이 미웠고 발버둥 쳐도 시궁창인 현실이 끔찍했고 어찌할 줄 몰라 방황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종갑이는 중학생이 되었지만 학교를 가지 않고 다방 레지를 뒤에 태우고 스쿠터를 몰고 다녔다.


술을 먹고 난동을 피우는 아버지와 방황하며 자신을 밑바닥으로 밀어 넣는 종갑이  사이에서 봉칠이는 어떤 일이 닥쳐도 꿋꿋하게 밥을 먹고 학교를 갔다.


그는 조용히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바다 같았다.


"똑똑한 아가 알 거 다았는데 견딜 수 있겠나?

엄마가 지들 버리고 도망갔는데 아가 모르겠나. 집에 있고 싶겠나? 집안에 멀쩡한 어른이 없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종갑이는 학교에 안 가고 다방에서 일을 하더니 어느 날 엄마처럼 집을 나가서 빨간 대문 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를 찾으러 갔을까?


봉칠이는 집 나간 엄마와 집 나간 동생의 부재에도 묵묵히 집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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