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히 생각하니 내가 거지내
안녕하세요.
거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을 떠오르시나요? 2000년대 초반, 20대였던 저는 중국 대도시 상하이에 있었고 크게 부족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며 사회초년생을 맞이했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이따금식 보이는 거지들은 나의 미래일 수 있다는 공포와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어떡해 살아야할까? 난 가족을 만들 수 있을까? 지금처럼 돈을 계속 벌 수 있을까? 실력도 카리스마도 넘치는 회사 선배들을 보며 불안함이 더 컸으며, 퇴근 길엔 늘 술에 취해 귀가하곤 했죠. 아파트에 살았는데, 앞엔 작은 상가건물이 있었어요. 1층엔 편의점, 미용실, 옷가게가 있었고 귀가길에 아파트가 보일 때면 가끔가다 상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어요.
땡- 땡- 때때 땡-땡-
리듬미컬한 그 소리는 어느 거지 할아버지가 자신의 깡통을 숫가락으로 치면서 구걸하는 소리였습니다. 상하이의 거지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기도하며 심지여 돈을 주지 않으면 따라오는 거지도 있었어요. 굳이 글로 남기고 싶지 않은 무서운 일들도 그당시에는 많았죠. 근데 이 할아버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리듬을 타며 미소지으며 구걸을 한답니다. 상상가세요? 요즘같으면 SNS에 동영상이 올라올듯한 분이셨어요. 항상 밝은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면서 때론 발게 인사까지 하면서 구걸하는 거지 할아버지.
몇일이 지났을까 난 또 다시 술에 취했고, 조금 달랐던건 용기가 있었다는 것.
저는 늘 거지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내보고 싶다는 생각을했으며, 오늘밤이 그날이라며 마음 먹었지요.
땡- 땡- 때때 땡-땡-
아파트에 다가갈 수록 들려오는 깡통 소리. 빨라지는 발걸음과 내 심장소리. 그리고 조심스럽게 거지 할아버지와 나란히 안잤보았습니다. 몇초가 몇분처럼 길게 느껴지며 모든게 어색한 가운데, 난 할아버지가 흡연자인 것이 생각났고 가지고 있던 담배를 하나 드리고 라이터를 찾던 중에 할아버지가 불을 피워주셨습니다.
거지가 라이터도 있구나.
지금 뒤돌아보면 평견이라 해야할까요?
거지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밖에 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둘이 나란히 안자 담배를 한대 피는데,
나는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 난 지금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어떡해 보이고 있을까....
용기내어 말을 걸어보기로한 나였지만 중국말도 서투르고 쉽게 입이 때어지지 않았습니다.
딱봐도 다국적의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상하이, 저는 의문점이 하나 떠올라 물어보았습니다.
[할어버지, 어느 나라 사람이 돈을 가장 많이 주나요? 중국사람? 한국사람? 일본사람? 미국인?]
거지 할아버지는 뭐라고 했을까요?
할아버지가 나를 신기하게 처다보며 이렇게 말했지요.
錢就是錢 不管是谁給的小錢是錢 大錢也是錢我很感激
[누가 주더라도 돈은 돈이다, 적건 많건 고마울 뿐이다]
외국인이라고 다 돈주는 것도 아니고, 좋은 옷을 입었다고 다 돈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다 똑같이 대하고 똑같은건 누가 주더라도 돈은 돈이라는 것. 돈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것이 고마운거라고 뭐 그런걸 뭇는냐고 깔깔 웃었습니다.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보통 돈을 준사람이 고맙지, 돈한테 고마워한다는게 말이 되나요?
평소 돈 생각이 많으면서도 돈에게 고맙다는 발상이 없는 나에게 할아버지의 말은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어릴때 부모님이 돈을 주시면 부모님께 고맙다기 보다 돈이 반가워서 인사까지 했던 것도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돈은 나의 욕망을 채우기위한 도구라는 인식밖에 저에게는 없었던 거죠.
아니 근데 정말 돈이 고맙다고?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듭니다.
돈이 고맙다는건,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환경이 고맙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쉽지만 현대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 모두가 부자가 되지는 않잔아요? 야근수당을 다 받는다는 법도 없고, 주말출근하여 충성해도 승진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눈 앞에 지나가는 외재차를 보면 난 왜 차살 돈도 없는지 기죽기도하며 없는 돈 쫏다보니, 가진 돈도 안보이는 나날입니다. 그러니 고맙다는 발상이 생길리가 없지요. 꽃다발보다 돈다발을 찾는 이성들. 꼬리가 꼬리를 뭅니다. 돈을 고마워한다니.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어느 부자가 재미있는 말을 했던게 생각나네요. 당신이 돈 입장이면 당신 곁에 있고 싶겠냐고.
당신 곁에 갈때마다 당신이 필요한걸 위해 자신을 떠 넘기는데 그 돈이 당신에게 다시 찾아가겠냐고.
시집못보내는 딸처럼 두고두고 쌓아둔다고 돈이 당신을 좋아할까? 그런 질문을 던지며 그 부자는 평소에 외식을 할때도 내가 니(돈) 덕분에 오늘 맛있는 밥을 먹는다고 고마워하며 떠나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돈이 다시 자기 곁으로 찾아온다고.
그날 이후로 가끔 생각해봅니다.
난 돈을 고마워하고 있을까? 그리고,
내가 돈이라면 내 곁에 있고 싶을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지 할아버지에게 돈을 던지는게 아니라 어쩌면 돈이 할아버지 곁에 가고 싶어 행인들 주머니에서 탈출하여 날아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소 웃음이 나기까지 합니다.
나는 왜 이 거지 할아버지가 자꾸 신경쓰였는지 그때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할아버지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부러움이었던 같아요. 나에게는 할아버지가 행복해 보였던 것이지요.
난 내가 직장이 있으며 매달 통장에 꼬박꼬박 돈이 들어오고 불안함 속에서 먹고 싶은걸 먹고 술을 퍼마시면서도 눈 앞에 거지보단 잘산다고 자신을 달래는 마음 가난한 청년이었고, 그래서 였을까요? 화들짝 웃고 리드미컬하게 깡통을 치며 돈을 받는 할아버지가 부러웠나 봅니다.
나는 그후 몇번 이 거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눠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주 당연한, 일상속에서 잊고 있던 것들이 생각나고 생각해보게 되는 할아버지와의 대화. 그리고 나도 모르게 때처럼 찌든 편견들을 닦으며 마치 스님이라도 만난 것처럼 아주 조금 철학을 느끼곤 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하이 밤하늘 어느 거지 할아버지와 담배를 피며 (원)] 이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마음속 BGM: Mo' Better Blues
추신: 난 거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어떤 사람을 떠오르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돈이라면 당신 곁에 돈이 있고 싶을어할지, 언젠가 당신과 만나는 날이 있다면 주변에 돈이 자주 찾아오시는 분의 이야기도나누며 소주 한잔하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