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를 보다보니 거지가 된다
안녕하세요.
지난 번에 말씀드린 어느 거지 할아버지와의 또 다른 에피소드 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지난 몇년 후 저는 상하이에서의 짧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현지에서 사회초년생을 맞이했습니다. 일본기업이었지만 회사는 카리스마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사와 다국적 선배들과 어울리며, 불편하지 않는 생활 속에서 그저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만이 가득찬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거주지인 아파트 앞에는 상가가 있었고 상가에 있는 자주 가는 편의점 앞에는 거지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매일 밤 계시지는 않았지만, 가끔 나타나시는 밤은 늘 싱글벙글 미소 지으시며 행인께 인사하며 숫가락으로 리듬타며 깡통을 치며 구걸하는 저에게는 신기한 거지 할아버지. 저는 술에 취하면, 가끔이지만 할아버지랑 담배한대 피며 대화를 나누는 밤이 있기도 했습니다. 술기운이라 무슨말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뭐 인사하는 사이가 되기는 했죠.
어는 날은 할아버지한테 어디서 사느냐고 물어보았는데, 뒤편에 아파트단지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기서 산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어요. [저 산이 내꺼라 믿으면 내꺼 인거고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그저 내 산이라 생각하고 행복할 수 있다...] 였나.... 혹시 들어보신적 있나요? 어찌됐건 아마도 할아버지는 저쪽 동네 홈레스라는 뜻으로 말씀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거지 할아버지와 친해졌지만, 난 단 한번도 아저씨 깡통에 돈을 넣은 적은 없었답니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편견인지는 모르겠으나, 거지가 배고파서 구걸을 한다면 돈을 줄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줘야한다는 생각이었죠. 어느날 맨정신에 집에 가는데 거지 아저씨의 리듬이 들려왔습니다.
땡- 땡- 때때 땡-땡-
오늘 우리동네 출근하셨나보다.
평소보다 용기있는 그날 나는 늘 해보고 싶었던 걸 도전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도시락을 드리는 것.
나는 할아버기가 어디론가 가시기 전에 도시락을 드려야한다는 생각에 재빨리 편의점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도시락을 골랐습니다. 열심이. 아니 아주 열심히. 근데 도시락 고르기가 너무나도 어려운거에요.
첫째: 너무 좋은 걸 사다 드려서 입맛이 좋아지시면 어떡하지?
둘쨰: 너무 싸구려를 사서 무시한다 생각하시면 어떡하지?
셋째: 주는데로 고마워하시겠지 그냥 아무거나 사다드릴까?
넷째: 매운거 싫어하시면, 아니 소화하는데 불편하실려나?
지금 생각해봐도 별생각을 다하내요. 난 무난하게 밥과 고기반찬이 있는 도시락을 골라 계산을 마치고 할아버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도시락을 드렸고, 할아버지는 엄청 기뻐하셨지요. 나는 기뻐하시는 할아버지가 너무 좋았고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방으로 돌아가 궁금했습니다. 내가 드린 도시락을 할아버지가 잘 드시고 계실까? 무슨 여자친구한테 요리를 선보인 것도 아니고 뭐가 그리 궁금한지 저는 아파트 창문 넘어 보이는 편의점 쪽에 거지 할아버지를 멀리서 처다보고 있었습니다.
땡- 땡- 때때 땡-땡-
식사때가 아니신지 아직 도시락에 손을 안대십니다. 언제 식사하실려나?
그러다 거지 할아버지는 도시락을 들고 편의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더니 편의점 점원에게 뭔가 말을 건내시듯 하셨고,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할아버지가 도시락을 점원에게 건내주고 편의점 안쪽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거지 할아버지는 점원에게 뭐라고 했을까요?
거지 할아버지는 왜 도시락을 점원에게 돌려줬을까요?
나는 갑자기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락을 현금으로 바꾸려하시는 건가? 아니면 다른 걸로 바꾸려는 건가. 분명 담배는 아닌 것 같고. 거참 편의점 점원에게 미안하게 되었내. 아니, 근데 아무리 거지라도 사람이 준 도시락을 멋대로 바꾸려 든다니 너무한거 아닌가?
혼자 오만가지 상상에 혈압이 상승하며, 다시 할아버지가 보였습니다.
손에는 맥주를 들고 계셨고, 제 머리는 헐 헐 헐! 이었지요. 내가 드린 도시락을 맥주로 교환해?
이거 나가서 한마디 하고 싶은 생각도 있으나 내 부족한 중국어 실력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편의점 점원이 도시락을 할아버지에게 돌려주었고, 맥주값을 내시는지 돈을 지불하고 계셨습니다. 거지 할아버지는 젓가락도 챙기셨고, 편의점을 나와서 뜨거운지 조심스럽게 도시락 뚜겅을 열고 따듯한 반찬을 후후 불며 한입 드시며 멀리에서도 보일정도로 큰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맥주를 한모금. 카아------- 하는 뭔가 맛있는 한잔을 하시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어찌나 기쁜 표정을 하시는지 늘 싱글벙글이시지만 표정이 영화배우급입니다.
그리고 창문에 비취진 내 얼굴이 거지였죠.
예, 참... 거지였지요.
저는 위선자입니다. 거지에게 도시락을 주는 착한 마음을 가진 20대 청년이라 스스로가 선인이라 생각하는 위선자. 제가 정말로 할아버지한테 식사 한끼를 드리고 싶었다면 도시락을 당연히 대폈어야 했고, 젓가락은 물론 생수하나 붙이는 센스는 있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매운걸 먹고 탈나면 어떡하나? 그런 고민은 발꼬락내나는 개그었던 것. 난 그냥 순수100% 위선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조금 내 마음가짐에 대한 반성을 했어요. 그리고 조금 더 깊히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후로 일이 바쁘고 거지 할아버지도 우리 동네로 출근을 안하게 되셨습니다.
어느날 옆동네에 놀러갔는데 그 소리가 들립니다. 그 리드미컬한 소리.
땡- 땡- 때때 땡-땡-
나는 반가운 마음에 뛰어갔어요.
그랬더니, 그 거지 할아버지가 계셨죠.
난 반가워서,
할아버지---!! 라 외치며 뛰었고.
날보고 당황하던 거지할아버지는 급기야 뛰어 도망가셨습니다.
다른 할아버지였나? 난 쫏아가는데 할아버지는 도망갑니다.
상하이에선 길거리에서 거지보이면 피하는 일이 있습니다.
거지가 날 보고 도망가니 내가 거지내요.
처음으로 거지 할아버지와 담배를 핀날.
나는 담배를 한대 할아버지에게 드렸지만 불을 피운건 할아버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지할아버지는 받는 준비가 된 거지 할아버지 였습니다.
받는 준비라는 건, 준사람을 기뻐하게 하는 기술.
준사람을 기뻐하게 하면 또 받을 일이 생긴다는 것.
아... 하지만 오늘 애피소드는 주는법을 배웠다는 이야기이니 반대이기는 하내요.
저는 이 거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눠 비슷한 경험을 몇번 더 하게 됩니다. 아주 당연한, 일상속에서 잊고 있던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 거지 할아버지와의 애피소드. 그리고 나도 모르게 때처럼 찌든 편견들을 닦으며 마치 스님이라도 만난 것처럼 아주 조금 철학을 느끼곤 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하이 신입사원 때 만난 어느 거지 할아버지 (투)] 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추신: 거지 할아버지가 나타나지 않고 거의 잊어갈 때쯤. 우연히 편의점옆 미용실 직원이 앞에서 담배를 피고있었다. 같이 담배한대 피며 요즘 거지 할아버지가 안보인다 했는데, 깔깔 웃었다. 미용실 직원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할아버지 정말로 거지일까? 편의점 앞에서 악기처럼 깡통치며 구걸하는 그 할아버지가 왜 단 한번도 쫏겨나지 않았을까? ] 난 도통 무슨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 할아버지는 여기 건물주라는 소문이 있어. 심지여 건물은 여기만 아니고 옆동네도 가지고 계시고, 저 뒷편에 아파트도 몇채 가지고 계신다 하더라] 취미로 퍼포먼스 거지를 하는 부자도 있다고 한다. 그때서야 난 한가지 늘 느겼던 어색함의 정채를 알 것 같았다. 내가 거지 할아버지한테서 느낀 어색함은 냄새. 거지 할아버지는 거지라고하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무향이셨다. 중국에서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일도 많지만, 정말....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정체는...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