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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9

아... 돈!

by 김지현

교사 월급명세서를 살펴보면 다달이 ‘기여금’이란 이름으로 꽤 많은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엔 이게 뭔데 내 코딱지만 한 월급에서 흘러나가나, 싶었다. 알고 보니 내가 늙어서 받을 공무원연금이었다. 만 62세 이후부터 따박따박 받을 수 있는 연금 덕분에, 게다가 어지간해서 짤리지 않기 때문에 철밥통이라 불리는 교직공무원. 내가 늙어서 받을 연금은 잘린 도마뱀꼬리보다 더 짧았고(앞으로도 연금개혁은 또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짤리기도 쉬워진 세상이 되었다. 취업사기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교직이 매력적인 이유는 안정성에 있으니까. 요즘은 ‘침몰하는 배’라는 애잔한 직업.


교직공무원은 일반 회사원이 퇴직할 때 받는 퇴직금이 없다. 대신 '퇴직수당'이라는 이름의, 약간의 위로금이 있다. 공무원연금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조회해 보니 16년 근무한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눈물 나게 짰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자신을 갈아 넣어가며 일하는 교사들은 부디 본인의 퇴직수당을 한 번 검색해 보고 워라밸을 맞춰가도록 하라! 이럴 줄 알았다면 밤새 수업자료 만드느라 가위질하진 않았을 텐데! 20년까지 참지 않고 지금 그만두기로 한 나 자신이 대견할 정도였다. 돈 때문에 선택한 일은 아니지만 돈으로 보상받고 싶은 심리는 필연적이다.


연금을 받는 방법도 선택해야 한다. 지금 당장 일시불로 받을래, 늙어서 다달이 쪼개어 받을래? 아니면 절반은 지금 받고, 절반은 늙어서 쪼개어 받을래? 세 가지의 방법이 있다. 당장의 빚이 있는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시불’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이 선택에는 교사들의 평균 수명이 짧다는 통계가 힘을 실어주었다. 늙어 받아서 뭐할겨.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받아 뭐라도 땡기자! 내가 이렇게 도박을 즐기는 도파민형의 인간이었던가. 당연히 나 혼자 결정한 것은 아니고 가족의 동의가 있었다.


공무원연금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오늘’ 당장 의원면직 할 경우 내가 받을 수 있는 퇴직수당과 연금을 조회해 볼 수 있다. 다만, 이것저것 온갖게 튀어나와 한참을 들여다봐야 내가 원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시불을 받고 싶은 나의 경우, 나머지 불필요한 정보들을 다 걸러내어 총합을 계산하니... 아, 이 돈을 위해 내가 여태 자아의탁 해가며 일을 했던가 싶다.


교사에게 더 이상 사명감만을 요구하지 말아라! 그 사명감도 생선과 떡과 포도주가 있을 때야 나올 수 있는 것이지 마른걸레를 쥐어짠들 악에 받친 무기력만 나온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요즘 교사들은 그냥 직장인이야' 아니 뭐요. 뭐 어쩌라고. 누가 나를 성직자로 만들어놓았나. 나도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인데! 퇴직수당과 일시불 연금 앞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떼어갈 땐 악착같이 떼어가면서 돌려받을 땐 내가 알아서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퇴직수당과 연금 등은 의원면직일자 이후 5년 안에 신청하지 않으면 먼지처럼 사라진다고 했다. 내가 낸 돈인데? 누구 맘대로? 나라 맘대로!(찡긋) 이것도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낸 것이다. 정말 이놈의 교직, 들어갈 때도 마음대로 못 들어갔는데 나갈 때도 힘겹네. 내 발로 나가는데 바늘구멍이야!


앞으로 교사의 면직률은 조금씩 늘어날 것이다. 나처럼 버틸 수 없는 교사들이 튕겨나갈 것이며, 조금이라도 적성에 맞는 사람들이 남겠지. 워낙 면직률이 낮아 관리자조차 그 절차를 모르는 정말 특이한 직종. 제 발로 나갈 때 더욱 힘 빠지는 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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