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걸레
정글같이 험난한 곳에서 일하다가 작년부터 중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제부는 의원면직 하려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남은 자율연수 휴직도 긁어 써보고 정 안되면 병가라도 쓴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느냐, 이만큼 안정적인 직장이 어디 있으며 월마다 따박따박 예측가능한 수당이 들어오지 않느냐, 그리고 내가 납득할 수 없는 한 가지.
‘대체 얼마나 힘들길래?’
하.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내가 겪은 각종 민원부터 시작해 손댈 수 없는 아이들 지도까지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실타래로 동동 떠오른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아 ‘그래 이해가 안 될 수 있어지’로 슬쩍 넘어갔다.
누구나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프다. 하지만 나는 내 것을 늘 남의 것과 비교했다. ‘고작 가시일 뿐인데 이 정도 아픔쯤은 참자’며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아 거세게 다독였다. 가슴에 말뚝이 박힌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이 정도 수고로움과 아픔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너무 나약한 것이지. 참자. 그러다 보면 익숙해지고 날 선 마음이 동글동글해져 편안함에 이를 거야. 손톱 밑에 여러 개의 가시가 파묻혀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살아왔다. 더 들어갈 곳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가시를 빼는 선택지도 있음을 알았다.
하루는 동생이 제부의 상황을 전해주었다.
“언니, 남편이 이제 언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겠대. 언니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겠다고 매일매일 말해.”
음? 제부는 현재의 직장에 충분히 만족하며 사는 듯 보였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이해하는 거지? 알고 보니 최근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밤 12시에도 걸려오는 민원 전화가 있다고 했다. 관리자의 도움이 뒤따르고 있지만 그는 이미 물기를 다 짜낸 마른걸레였다. 누구에게라도 조언을 듣고 싶어 아는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그분 또한 교권침해로 현재 2개월째 병가 중이라는 소식. 서늘하다. 마음을 졸이며 12월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던 제부는 결국 다음 해 한 학기 휴직을 택했다. 마른걸레를 계속 쥐어짜 내면 결국 찢어지게 되어있다.
초등에서 이런 일은 꽤 흔하다. 견디지 못한 교사들은 나처럼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교사들은 나름의 대처방안을 고안하고 방어한다. 비상식적인 민원과 교권침해에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대처할 수 있다. 교사 커뮤니티에는 그런 방안마저 꿀팁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민원에는 이렇게 대응하세요’, ‘이런 학생에게는 이렇게 지도하세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가 아니다.
그 사례들이 이제 졸업을 하고 중등, 대학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 초등교사에게 이젠 익숙한 일들이 서서히 중등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고쳐쓸 수는 있다. 그러나 고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으면 그대로 쭉 갈 수밖에. 이제 대학교, 직장 등 다양한 조직 사회에서 더욱 기상천외한 사례들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젯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몇 년 전 학부모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애가 이러이러하여 마음을 다친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느냐는 민원성 전화였다. 꿈속의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학생을 떠올리며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 무엇을 놓쳤지? 하며 가장 먼저 내 탓을 하기 바빴다. 자기 검열이 상당한 성향의 사람들이 보통 교사가 된다. 그들은 결국에 자신을 부정하기까지 이르곤 한다. 내가 잘못된 것 아닐까? 나만 없으면 상황이 정리되지 않을까... 끝까지 나는 나를 놓고 싶지 않다.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늪에서 나라도 내 손을 꼭 잡아끌어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