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당신에게
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는 기도를 들어주는 자인가, 시련을 주는 자인가? 아니면 그저 지켜보는 자인가. 당신은 신을 원망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럼에도 감사하고 있는가. 원망하고 있거나 감사하고 있거나 그 이유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원망하거나 감사한다.
삶에 대한 목적을 잃거나 심각한 권태감과 우울감을 가질 때가 있다. 신은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 끝나지 않는 고통과 권태의 연속, 이렇게까지 안 풀릴 수가 있나 싶은 인생. 사람은 이런 상황에 놓이면 살기 위해서 신을 원망한다. 이 모든 게 자기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당장 목숨을 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외부적인 요소 때문에 그런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역시 이때도 신을 원망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 우리에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어떤 상황에서든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있다. 앞으로 그에 대한 길잡이를 해주고자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이야기할 것은 우리의 인생이 꼬일 때마다 하늘에 대고 한탄하는 그 신. 우리가 그와 비슷한 존재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셀프 허그를 통해 나를 챙기기 시작했을 때 샀던 식물 이야기를 해보겠다. 이 작은 식물들은 원망이나 감사 같은 걸 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에게 있어 나는 신과 같은 존재다. 이 녀석들은 내가 물을 주지 않으면 죽고 빛을 보여주지 않아도 죽는다. 시기에 맞게 분갈이를 해주지 않으면 성장하지도 못한다. 내 손에 이들의 생명이 달려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나를 신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부터 마음의 동요가 시작된다. 이 식물들은 내가 없으면 죽는다. 오직 나만을 바라보는 이 식물들을 위해 내가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
식물로는 별 감흥이 오지 않는가? 그렇다면 동물은 어떤가. 현재 우리 집엔 청개구리가 한 마리 살고 있다. 얼마 전 겨울잠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보이는 청개구리를 우연히 만나 집으로 데려왔다. 그냥 자연에 두려고 했지만 계속 마음에 걸려 사육 환경을 만들어 집 안에서 키우고 있다. 봄이 오면 마당의 텃밭에 풀어줄 생각이다. 이 녀석에게도 나는 신과 같은 존재다. 하늘의 덮개가 열리면 먹을 것들이 떨어지고 촉촉한 비가 내린다. 그러나 그 덮개를 열어줄 내가 없으면 역시 죽을 것이다.
신이 되면 귀찮은 일이 많다. 대상이 식물이라면 때에 맞게 물을 줘야 하고 계절에 따라 잘 관리해주어야 한다. 대상이 동물이라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내 손에 달려있다는 뜻으로 더욱 책임감이 크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에 신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수많은 부모들은 어째서 무너져도 바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그들 또한 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신과 같은 존재다. 아이를 위해 부모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쓰러져도 금방 털어낼 수 있다.
나는 부모가 아니기에 그 감정을 식물과 동물에게 느꼈다. 처음 느꼈던 건 알에서부터 부화시켜 닭을 키웠을 때다. 닭은 배가 고프면 내 주변에서 발톱으로 바닥을 긁어댔다. 마치 제물을 가져다 놓고 의식을 치르듯 말이다. 그럼 난 사료가 든 통을 손에 든다. 그때, 달려오는 닭을 보고 느꼈다. 이 녀석은 내가 신이라고 생각하겠구나.
마침 무기력에 빠졌을 때인 나는 그 사실을 알아채고부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기도를 올리는 그 신이 무기력에 빠져있으면 얼마나 절망스럽겠는가. 그래서 난 닭을 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신이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물론 가볍게 생각할 일은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용기가 없다면 작은 식물부터 시작해 보면 된다. 식물 하나가 생겼을 뿐인데 가슴 한 구석에서 작은 일렁임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식물도 살기 위해 빛이 있는 쪽으로 몸을 기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식물에게 물을 줄 수 있는 건 당신뿐이다. 그러니 내일도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영화를 봤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주인공이 신의 전지전능함을 가지게 되며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 처음엔 초능력을 사용하며 재미를 본다. 가게에서 수프를 시켜놓고 그 수프를 모세의 기적처럼 반으로 가르며 신의 힘을 몸소 체험한다. 그러다 계속 머리에서 울리는 사람들의 기도 소리에 짜증을 느껴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지게 해 버린다. 그로 인해 무언가 잘못되어 폭동이 일어나고 주인공 브루스는 혼란스러워하며 신을 찾아간다. 아래부터는 신과 브루스의 대화 내용이다.
브루스 사람들이 원하는 걸 모조리 들어줬어요.
신 그래,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알고 소원을 비는 걸까?
브루스 제가 어떻게 해야 되죠?
신 수프를 가른 건 기적이 아니야. 속임수 마술이지. 두 가지 일로 허덕이는 미혼모가 아이를 축구 수업에 보내려고 없는 시간을 짜내는 것이 기적이야. 10대가 마약 대신 학업에 열중하면 그게 기적이야. 사람들은 기적의 능력을 갖고서도 그걸 잊고 나한테 소원을 빌어. 기적을 보고 싶나? 스스로 기적이 되어봐.
영화에서 신이 말하는 기적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기적은 우리 삶 속에 셀 수 없이 있었다. 그리고 신 또한 우리 삶 속에 셀 수 없이 있다. 아이를 축구 수업에 보내기 위해 없는 시간을 짜내는 미혼모처럼 말이다. 누군가 내게 신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영화의 대사를 살짝 각색하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이를 축구 수업에 보내려고 없는 시간을 짜내는 미혼모가 신이다. 10대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게 인도해 주는 참된 어른이 신이다. 신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스스로 신이 되어보길 바란다. 그때부터 당신은 무기력에 빠져도 금방 나올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