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꽃이 피는 게 달갑지 않을 때가 있다. 문득 스스로가 밉고 원망스러울 때. 그럴 때는 꽃이 피든 봄이 오든 상관없었다. 매 순간 동굴 속에 갇혀 있었다. 빛이 들어오는 저 터널 끝에 꽃이 핀다 한들 내겐 아무 소용없었다. 나는 봄을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꽃이 만개하고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하던 날, 나와 동문인 대학생 손님이 찾아왔다. "오늘 수업 들으러 안 가셨어요?" 자체 휴강했다며 웃는 손님은 꽤나 신나 보였다. '자체 휴강'이라는 말을 들으니 나의 대학 시절이 생각났다. 요즘 유현이가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예전 생각이 자주 난다. 우리 학교에는 잔디밭이 많았다. 친구들과 틈만 나면 돗자리를 깔고 앉아 놀았다. 우린 도대체 뭘 하며 놀았을까. 들떠 보이는 손님의 아우라를 보며 기대가 됐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글을 쓰기로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키보드 타자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너무 몰입해 시간을 못 봤나 싶어 잘 돼가냐고 물으니, 아직 남았는데 시간이 없느냐며 난처해했다. "괜찮아요. 다음 예약 손님이 없거든요. 저도 제 할 일 하고 있을 테니까 다 쓰고 나면 말씀해 주세요." 손님이 내 눈치를 보지 않게 노트북 앞에 앉아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멍하니 일하다 보니 어느새 타자 소리가 멈췄다.
읽어보니 손님의 글은 스물두 살 대학생의 글 같지 않았다. 그 나이 때는 매일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것 또한 왜곡된 내 편견이었나 보다.
글 안에는 22년 인생을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들이 적혀 있었다. 마땅히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순간. 누군가를 질투했고, 그 질투심 때문에 미워했던 마음. 능숙하지 못하고 서투른 스스로를 볼 때마다 무너지는 자존감.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아렸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마음의 상처가 다 아물어서 잊고 살았나 보다. 서투르고 부족한 사람으로 산다는 건 매 순간 괴로움이었다. 나 자신이 미울 때는 아무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 어떤 위로도 들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비참한 모습. 그런 모습으로 다른 사람의 동정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