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번외 1. 공백기간
퇴사 후 7개월의 공백기간을 가졌다.
처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은.
가장 첫 번째로 시작한 취미는 피아노였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꽤 오래 쳤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날수록 그 비용은 급격히 증가했고,
감당할 만큼 천부적인 재능도 미칠듯한 노력도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아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말 생각이 안 날 줄 알았는데.... 살면서 중간중간 생각났다.
"내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을 때, 어떤 걸 느꼈었더라?"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학원을 등록했다.
손이 많이 굳어 있었다.
손을 다시 풀어주기 위해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곡들을 치며 연습하였다.
기계도, 물건도 너무 오래 쓰지 않으면 낡아진다고
그러니 너무 아끼지 말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감정도 그렇더라,
그동안 나의 감정은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직장인이 되고, 회사를 다니고 하루 살기에 바빠지면서 내가 언제 즐겁고 언제 기쁜지 잘 몰랐다.
특별한 취미랄 것도 없이 휴일에는 그저 쉬기 바빴다.
경직된 나의 감정을 풀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며 새로운 감정들을 느껴보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화남, 불안함, 부끄러움, 질투 등의 감정을 배워나가 듯 말이다.
두 번째로 시작한 취미는 뮤지컬이었다.
먼저 TMI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나름 마음속에는 연예계의 꿈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는 못생겼다. 태어난 순간부터 대학 졸업 순간까지도 외모에 대한 비난을 받았고,
그때 들었던 말들은 깊은 상처로 남아, 때로는 날 움츠러들게 한다.
물론 예쁘고 잘생긴 배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라면 포기하지 말지 그랬어?'라고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사실 그렇다.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그 길을 나아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비난들은 어린 사춘기가 견디기에 너무 버거웠다.
사람들은 때로는 과거의 경험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선택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나는 내 선택의 전부가 과거에 붙잡혀있었다.
'혹시 내가 못생겨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즉, '외모콤플렉스'에 나는 묶여있었다.
시작하기까지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뮤지컬 동호회에 신청을 하고 내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은
'저 정말 못생겼는데 배우 할 수 있나요?'였다.
그리고 괜히 물어봤다는 천백번의 후회를 하던 그때,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하고 싶은 역할 모두 가능하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 말 한마디가 꺼져가던 불씨를 살려주었다.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괜찮다는 말.
뮤지컬 취미는 그 이후로도 꽤 오래 했다. 그리하여 총 5 작품을 연기했다.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난다는 거,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더라.
마지막으로 다양한 경험들을 찾아 나섰다.
와인동호회, 전시회, 페스티벌 같은 곳들도 갔다. 방송댄스도 배웠다.
세상에는 실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여러 직업이 존재했다.
그렇게 온전한 나의 시간을 약 4~5개월 정도 가졌다.
하지만 더 긴 시간을 가질 수는 없었다.
경제활동의 압박과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나도 내 커리어를 열심히 쌓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2~3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직활동에 들어갔고,
난 나의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