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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YA CONDIOS!

"신과 함께 가라"를 보고

by 페이지 성희

"신과 함께 가라!"

스페인어로 이별할 때 쓰는 인사말이지만,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는 영화 제목이다.


2002년에 제작된 독일 영화로 우리나라에서 2003년에 개봉했다.

영화는 신을 믿는 방법을 소재로 한 로드 무비로, 신앙과, 사랑 그리고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디.

헝가리계 독일인 졸탄 슈피란델리 감독 작품이다.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일의 브란덴부르크주 아우스 부르트 수도원에는 네 명의 수도사들이 고립되어 살고 있다.

이곳 칸토리안 교단은 "성령은 목소리와 함께 하시며 찬양으로 신께 다가갈 수 있다"라고 믿는 교파다.

그 때문에 1693년 교회에서 파문당한다.

이제 이곳 독일과 이탈리아의 몬테 게볼리 수도원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두 수도원은 교단 규범집의 소유 문제로 오랫동안 다퉈 왔다. 책에는 찬양을 중시하는 "교황 우르반의 규범"이 담겨 있다.


수도원에는 고지식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원장 수사, 서고에서 규범집을 연구하고 있지만 왕년에는 좀 놀아본 벤노 수사, 전반적인 수도원의 재정 살림을 관리하고 요리 담당인 시골 농부 같은 타실로 수사. 아기 때부터 수도원에서 자라

타의에 의해 수사가 된 미소년 아르보 수사다.


어느 날 수도원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었던 은행직원이 찾아와 교황청이 이 카토리안 교단을 인정하지 않으며 대출금도 갚지 못하니 수도원을 폐쇄시키겠다고 한다.


수도원장은 걱정과 충격으로 쓰러지고 만다. 임종이 다가옴을 알게 된 수도원장은 마지막까지 기도와 찬양으로 버텨보려고 했지만 이제 수도원이 폐쇄되니 세 수사는 저당 잡힌 책 가운데 교범집만을 가지고 몬테 볼리의 수도원으로 떠나라고 유언을 남긴다.


아르보에게 네가 크는 모습을 보게 된 게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다며 소리굽쇠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고 회한이 가득 찬 눈을 한 채 숨을 거둔다.


세 수사들은 이탈리아로 가는 동안 도착할 때까지 침묵수행을 약속하고 도보로 먼 길을 떠난다.


오랫동안 속세와 떨어져 살던 그들은 중세시대에서 걸어 나온 수도사의 모습이다.


지나가는 기차를 세우려고 손을 흔들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가 갑자기 나타난 수도사를 보고 놀라 작은 사고를 일으키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수도사들과 동행하게 된다.


기자인 키아라는 불법폐기물을 방류하는 현장을 몰래 찍다가 업자들에게 들키고,

쫓아오던 이들을 수도사들의 도움으로 따돌리게 된다.



기도시간이 되자 수도사들이 동굴과 바위 앞에서 성령을 찬미하는 찬송가를 부른다.

키아라는 절벽을 울리는 찬송소리에 아주 특별한 감동을 받으며 수도사들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차에 기름이 떨어지자 함께 노숙을 하기로 한다.



모닥불 옆에서 처음으로 밤을 맞이하면서 키아라는

늘 도시의 소음에 젖어 잠들었는데 숲 속의 적막감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아르보는 숲도 수많은 소리로 결코 조용하지 않다며 귀를 기울여 보라고 한다.


다음날 아침 두 수도사가 기름을 구하러 가는데

주유소 사장은 어떤 차종이냐며 묻는다.

두 사람은 목소리로 차의 엔진 소리를 정확하게 흉내 내어 무연 휘발유를 산다.


그사이 아르보와 키아라는 수사들을 기다리며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서로를 찍는다.

아르보는 쉽게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 언제 눌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르보에게는 키아라를 보는 이 순간, 순간이 바로 지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라 했다.



"주님은 늘 기적을 행하고 계시는데 키아라가 찍어준 내 사진을 보니 키아라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한다.


아르보의 순수한 사랑 고백은 키아라의 가슴을 벅차 오르게 했고 자연스레 키스로 이어진다. 아르보는 난생처음 사랑에 빠졌다는 몰랐지만 둘은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타실로 수사는 지도를 보다가 근처에 자신의 고향이 있다며 들러보자고 한다.

30년 만에 찾아간 고향집에는 어머니가 홀로 살고 계셨다. 어머니는 수도사들을 보자마자 30년 전에 집을 나간 아들을 알아본다. 반가움에 부둥겨 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가 새아버지와 재혼한 후 타실로 수사는 15살에 집을 떠나 수도원으로 오게 되었다.

어머니는 새아버지와 살면서 한 번도 아들을 찾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남편이 아들의 존재를 싫어하기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에 묻고 그리움의 세월을 보냈다.



지나간 사진첩을 꺼내 보여주며 어머니는 어린 아들이 세월을 건너뛰어 갑자기 찾아온 게 기적이라 생각하고 또다시 아들을 놓쳐버리고 싶지 않아 한다.

늙고 병든 어미 곁에 있어 달라고 그를 잡는다. 마음이 여린 타실로 수사는 며칠 더 머물겠다고 한다.


그러자 벤노수사는

"평생 울타리나 손보고 돼지나 키우라고 아니면 지금 떠나야 해!"

라고 외친다.

그러자 타실로 수사는

"우린 자네와 원장님 때문에 망했어. 돈을 아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고매하신 두 분은 오래된 희귀 악보를 구한다며 다녔지."


"먼지 낀 서가에 박혀있던 자네만큼
염소젖 짜던
나도
주님 가까이 있었네"


결국 타실로만 남은 채, 벤노 수사와 아르보 수사만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향해 출발한다.

아르보는 벤노수사에게 묻는다.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알까요?

바로 알게 되지.



벤노 자신은 친구와 같은 여자를 사랑했고, 여자가 자신을 더 사랑했기에 친구가 아직도 약 올라 있을 거라고 말하곤 자신만의 인생 팁을 알려준다.



인생사 문제에 맞닥뜨릴 때
수사로 살고 싶은가! 아닌가!



이렇게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한다며 아르보에게도 그리 하라고 조언한다.

키아라는 중앙역까지 바래다주고 아르보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아르보가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며 요즘엔 다르게 사는 수도사도 있다고 함께 할 여지를 남기고 아르보의 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두 수사는 거리에서 노숙자들과 노숙하기로 하는데 우연히 옛 친구인 신학교 교장을 만난다.

그는 벤노의 연적이었던 클라우디어스였다.

벤노와 아르보를 자신의 학교 기숙사로 데려간다.


클라우디어스는 대화에서 서로 반대 교단이란 걸 알게 되고 벤노가 갖고 있는 교범서를 빼앗으려 계획을 세운다.

벤노를 오래된 희귀 악보 연구자로 추천하고 거주지와 조수를 두 명이나 붙여주겠다고 한다.

옛 친구의 호의에 벤노는 좋아한다.


낡은 수도사복을 깔끔한 양복으로 갈아입고 몬테 게볼리로 갈 계획을 잠시 멈춘다.

언제부터인가 학교 안에서도 벤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벤노에게 희귀한 악보와 극진한 대우는 놓치기 아까운 유혹이었다. 고립된 시골 수도원이 아닌 화려한 도시의 신학교 도서관에는 그가 보고 싶어 하던 책이 넘쳐났고, 굶주림과 낡은 수사복을 입지 않아도 되었다.


사실 벤노가 가져온 교범 안에는 예수회 시조를 비난한 내용이 있었다. 교장은 이런 이교도를 걸러내 버리며 예수회 교단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벤노를 잡으려 했던 거다.


아르보는 어서 이탈리아로 가자고 재촉하지만 벤노는 이런 기회가 아쉽다며 도서관의 여러 자료를 둘러보고 조금 더 머물다가 가자고 한다

아르보는 무언가 잘못되어 감을 느낀다.

그것은 타실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성당에서 기도를 하던 아르보는 한 수도사를 보는데 아무도 없는 성당에 몰래 들어와

성모 마리아의 발에 마치 연인에게 하듯 수없이 키스를 하는 기괴한 모습에 경악한다.

아르보는 벤노 수사에게 셋이 찬송예배를 드린 지가 언제인지 모르며 성당에서 본 수사 이야기를 꺼낸다.


벤노는 모든 게 타실로가 없기에 과 같지 않은 거라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한다. 수도원이 망한 거는 원장 탓이며 친구 클라우디스를 만나 자신의 초라한 몰골에 자존심이 상했으며, 타실로가 어머니를 이유로 고향에 머문 것과 같이 우리 교단은 끝났으며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주님의 뜻이니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구나 예수회 수사의 기괴한 행동에 대해서는 주께 이르는 길이 다양한 것이라고 예수회를 두둔하기까지 했다.


한편 타실로가 일상의 농장일 대신 수행에 몰두하자 어머니는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숨만 쉬고 있다며 비난한다. 기도와 찬송, 묵상, 단출한 식사를 하던 수도사가 아닌 그저 돼지나 키우는 시골생활에 허리 두께는 늘어가고 마음은 공허해져 갔다.

어머니는 아들의 고통을 알아채고 이제 다시 만나지 못할걸 알면서도 그의 뜻대로 보내준다.


교범집과 벤노 수사의 수도자복을 챙겨서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온 아르보는 키아라에게 연락하지만 만나지 못한다. 거리에서 만난 또래 젊은이들에 놀잇감이 되고 길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쓰러진다, 강제로 먹인 술에 정신을 잃은 후 다음 날, 노숙자 수용소에서 깨어난다.

눈앞에 그리운 키아라가 있었다. 둘은 함께 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타실로 수사는 아르보와 키아라와 신학교로 향하고 벤노 수사를 데려올 계획을 세운다.

그의 신앙심을 끌어올리려 미사 때 합창이 아닌 중창으로 셋만이 찬송가를 부르게 만든다. 그러나

세 수사가 여정을 이어가고 신학교를 빠져나오게 한 거룩한 "그레고리오 성가"는 키아라가 아르보를 떠나는 계기가 된다.



'주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자'란 제목의 찬송가 내용은 -노래하고 기도하며 신과 함께 가라-란 신의 말씀을 담고 있었다.

영혼을 울리는 화음이 성당 안에 울려 퍼지자 카리아의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이 이 성스럽고 아름다운 영혼의 수사가 가야 할 길을 방해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도망치듯이 아르보를 남겨두고 떠난다.

아르보는 미친 듯이 키아라의 차를 쫓아간다. 키이라는 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아르보의 마지막 모습조차 보기 힘들었다.


뒤에서 벤노 수사가 아르보를 잡았다. 우리는 수사의 삶을 선택한 거라고 말하는데, 아르보는

난 당신들처럼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한 게 아냐.
애당초 다른 가치를
선택하거나 가져본 적이 없어.

벤노 수사는 일단 교범서를 몬테 게볼리 수도원에 가져다주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 설득한다.

마침내 예수교 교단 사람들을 벗어나서 밀라노행 기차를 타고 몬테 게볼리로 향한다.



다행히 몬테 게볼리 수도원에는 네 분의 수사가 있었고, 이들은 힘든 여정을 마친 세 수사를 환대해 주었다. 고대하던 교범을 받아 들고 이제 이곳 수도원이 보관하게 된 것에 안심한다.


수도원은 활기가 넘쳤다. 일곱 명의 수사들의 성령 가득한 합창이 매일마다 울려 퍼졌다.



그러나 아르보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겉으로 보이는 일상은 예전과 같았지만 아니었다.


한편 잠시의 일탈로 여기며, 남자친구에게 돌아가

여행을 떠나려 한다. 키아라는 공항 검색대에서 가방 안에 발견한 쇠붙이를 보자 아르보가 마음 깊숙이 머물러 있음을 확인한다. 아르보의 존재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아니, 무신론자인 그녀에게 전하는 신의 뜻이 무엇인지 소리굽쇠가 말해주고 있음을 믿게 된다.



어느 날 수도원으로 소포 하나가 도착하고 아르보는 키아라가 돌아왔음을 알고 뛰쳐나간다.


키아라가 아닌 우편배달부였음을 알았으나 소리굽쇠가 아르보에게 온 뜻이 자신이 선택할 시간이 왔음을 의미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용기를 낸다.

당장 키아라를 안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나는 키아라를 선택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녀는 나의 삶에
선택이란 기회를 주었다.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아르보는 키아라를 만나러 가는 버스에 오른다.


소리굽쇠는 인간에게 소리를 들려주는 도구다.

인간이 꼭 들어야 하고 알아채야 할 진짜 소리가 있다. 바로 신이 알려주는 내 마음속 소리다.


영화는 세 분의 수도사의 인생 여정을 보여주며

인간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

그리움의 대상은 누구인가!

용기 있는 선택이란 어떤 것인가!

한 편의 영화가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올해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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