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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버지 Aug 30. 2024

5편, 인도 출장 아닌 출장

종합상사, 미생과 정말 같을까요?

"기안 84의 태계일주 2" 방영 당시, 프로그램 여행지였던 인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꽤나 화제였다. 기안 84가 난데없이 갠지스 강물을 마시고, 옆에서는 망자들의 화형식이 동시에 진행되는 장면에 사람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인도는 정말 그런 나라였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들이 적응기를 마치고 각자의 부서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즈음, 2년 차 사원들을 대상으로 5명씩 한 조로 하여, 해외법인이 있는 국가를 각자 선택하여 5박 6일의 출장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중국 상해, 카자흐스탄 알마티, 인도 뉴델리, 베트남 호치민 4개의 선택지 중에서 우리 조는 앞으로 살면서 굳이(?) 가볼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인도를 골랐다.


미생 웹툰에서는 요르단 중고차 수출 사건 이외에 특별히 해외출장에 대한 이야기가 드물었던 것 같다. 무역 종합상사의 영업직에 근무하게 되면 자신이 담당하는 아이템과 수출 국가에 따라서, 해외 출장을 자주 가게 된다. 다만, 나와 같이 지원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소송이나 해외 중재와 같은 분쟁 이슈가 발생하거나 JV(조인트벤처) 설립과 같은 특별한 사항이 아니면 해외 출장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좀 적다. 그런 해외 출장의 목적도 결국 거래를 이어나가기 위한 것이었고 출장지에서 숙소에 들어가면 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피곤함에 쓰러지곤 했다지만, 영업 부서에 있던 동기들이 해외 출장을 오가는 것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큰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가게 된 첫 해외 출장지 인도는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서던 나라였다. 보통 인도 거래선은 계약서에 정해진 L/C 개설도 항상 늦었고, 대금 지급이 제 때 되는 건 거의 보지 못했다. 독촉 이메일을 보내면 회신도 늦었고, 대금지급이 늦어지는 이유는 관공서의 문제라는 등의 핑계는 거의 공식이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인도로 향했고, 다음날 뉴델리 지사에 도착하여 실제 지사에서 이루어지는 사항들에 대한 업무 관련 회의를 간략하게 진행했고 회사의 거래선에 방문하여 설비를 둘러보는 등의 일정으로 2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잔여 일정은 각자 자유 일정이었기 때문에, 우리 조는 뉴델리를 떠나 아그라 인근의 타지마할에 방문하기로 했다.


거래선에 적치되어 있던 냉연 코일(이었던 것 같다)


뉴델리에서 아그라로 이동하는 와중에 조금이나마 인도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차를 이용하여 아그라에 가자는 의견을 내었지만,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그 생각 자체가 정말 허황되고 멍청한 소리였던 걸 깨달았다. 이미 기차는 출발 예정시간과는 전혀 무관하게 제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행여나 기차로 이동한다 해도 5월 무더위에 1차적으로 쓰러질 것이며, 게다가 그 당시 인도에서 종종 발생하던 외국인 테러는 기차나 대중교통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던 선택지였다.


기차역 예매공간의 풍경


인도의 인프라는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다. 인도의 최대 도시 뉴델리에는 지하철도 운행을 하고 있었으나, 유명무실한 존재라고 하였다. 시내 교통은 대부분 오토바이나 릭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우리는 뉴델리 지사의 도움으로 밴 차량과 운전기사분을 섭외하였고, 차량을 타고 약 3~4시간 정도면 아그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지하철역과 릭샤의 오묘한 조합


뉴델리 중심과 그 외 지역의 빈부격차는 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그라로 가는 길은 이곳이 정말 인도 최대 도시 뉴델리의 인근 지역인가 싶을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고, 힌두교에서 숭배하는 소들이 지나갈 땐 차량 모두가 멈추어 서서 소의 이동을 지켜보았다. 결국 도착한 아그라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타지마할을 영접했다.


압도적 균형감과 웅장함을 가진 타지마할


멀리서 보는 타지마할과 실제 들어가서 겪는 타지마할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자신들의 위대한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벗고 신발망 같은 걸 신어야 했고(그마저도 유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더욱더 발바닥이 타 들어가서 제대로 유적지의 숨결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인도에 또 언제 내가 여행 또는 출장으로 방문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회사 입사 전에 인턴으로 인도 뭄바이와 첸나이에서 몇 년간 일했던 동기 형이 인도는 일단 한 번 방문하면 죽기 전까지 3번 방문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우리들에게 끔찍한 말을 전했다.


벌써 약 13년 전의 인도 출장이었기에, 현재 2024년의 인도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인들이 흔히 보이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에 비해 절대적으로 낙후된 인프라와 지연이 반복되는 행정 프로세스는 3번은커녕 2번조차도 인도에 재방문하고자 하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5월의 무더운 기후와 심각한 하수도 오염으로 양치조차도 생수로 하였으나 델리 벨리(Delhi Belly)의 악명을 우리도 피해 갈 순 없었다. 결국 5명 모두가 설사로 인해 화장실을 수없이 들락날락했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약 몇 십 년 만의 심각한 폭우가 쏟아진다며 비행기는 12시간 이상 지연이 되더니 경로 수정(Diverted)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뉴델리 공항 밖으로 보이는 장면은 우리가 보기에 그저 한낱 바람이 좀 부는 장맛비 수준이었다. 결국 해가 뜨고 아침이 되어 지연된 비행기의 승객들은 공항 인근의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가지고 점심이 돼서야 귀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아침해가 떠도 보이지 않았다.


짧았던 기간에 비해, 정신없고 지쳐버렸던 인도 출장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완전한 업무 출장이 아니었기에, 그래도 조금의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곳곳에 변수들이 존재하던 인도는 우리에게 절대 한 시도 틈을 주지 않았다. 높은 직급의 상사를 모시고 중요한 거래 건으로 인도 출장을 가실 상사맨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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